B급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다
B급이란 거, 참 어렵다. 많은 영화 감독, 혹은 감독 지망생들이 B급을 표방한 작품을 만들지만,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는 데 실패한다. 쌈마이 같으면서 장르적 쾌감은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이미 B급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B급을 찾아 극장으로 온 마니아 관객들은 이 작품은 단순히 쉬워보여서 B급을 선택했구나 생각해 실망하고 만다. 그래서 B급이란, 쉬워보이는 가장 고난도의 테크닉을 의미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아마 그 지점에서 생각했을 거다. 왜 B급이어야 하는가. 단순히 저예산 공포여서, 혹은 공포에 코미디적 감성을 주기 위해 B급을 선택하는 건 마니아 관객들에게 금방 간파되고 말거다. 그렇다면 B급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신이치로 감독은 그래야 하는 당위성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상하고 그걸 3장에 걸친 한 편의 영화로 완성시켰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모큐멘터리식 이 영화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좌충우돌 사건 사고를 무사히 넘기고 생방송 원 테이크 좀비 영화 방영을 마쳐야 하는 촬영장. 웃을 만한 요소도 충분하고, 장르적 재미도 충만하다. 하지만 이미 어딘가 익숙한, 다소 클리셰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단편 영화, B급 호러 영화를 찾아 헤매는 관객들에겐 더없이 친숙한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한 번 더 비튼다. 결과물을 먼저 보여주고,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묘사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이 본 ‘결과물’은 다시 한 번 재해석되고, 관객들은 그 정보 불일치를 재탐색하면서 웃을 수 있다. 작품에서 의도된 것들은, 먼저 보여준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날것이 돼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어설픈 구성이나 미묘하게 엇나가는 템포는 다시 반복되는 촬영장의 모습에서 이유를 드러나고, 그 결과 영화 전체가 하나의 세계로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이 같은 방법은 코미디를 유발하면서 작품 자체의 철학에도 힘을 싣는다. 단편에서 명백하게 구제불능인 감독은 사실 소심하고 타협적인 인물이고, 사랑을 나누는 주연 커플은 실제로 대화조차 제대로 나누는 장면이 없는 거만한 스타들이다. 캐릭터와 인물의 불일치, 이는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자아와 실제 자아의 차이와 다를 게 없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그것뿐인가.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 만큼 과정과 결과에 대한 시선 또한 반추할 만하다. 영화는 결코 의도하지 않은 대로 완성되지만, 관객(클라이언트)은 만족한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촬영장의 이들은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런 결말은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단 끝까지 해보자”라는 위로가 되고, 완성된 작품은 결코 우리 손에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따끔한 일침이 된다.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유쾌한 웃음을 동반하면서도 창작자의 고충이 그대로 묻어있는, 동시에 창작에 대한 고민이 낳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웃고 즐겼지만, 이 영화를 다시 설명할 때쯤엔 어쩐지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건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봤을 법한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코미디는 영화가 끝난 후, 상영이 끝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 영화는 약 3천만 원으로 만든 영화가 300억 원의 수익을 남겼지만 제작진 및 배우들에겐 추가적인 수익을 얻지 못했다. 일본 영화계 시스템 때문이다. 영화 결말에서 모든 이들은 화기애애하게 웃었지만, 그들이 그 이후에 어찌됐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의 웃는 모습처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실제 제작진들도 한껏 웃을 수 있었을까 사뭇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