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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n 15. 2024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췌장암 투병기 1

* 변화 1.


나는 췌장암 몸통쪽에서 이상이 생긴 경우라고 들었다.

그 덕분인지, 췌장 머리쪽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처럼 온몸이 노랗게 변하지 않은 채,

꽤 오래 멀쩡해 보이는 모습을 유지했다. 다만 살이 좀 많이 빠진 모습으로.

처음 만나는 의사분들도 오히려 맑아보이는 내 얼굴빛을 보며 건강이 좋아보인다고, 의아해 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 1월 초 이틀정도 조금 비실거린 뒤 일어난 어느날 아침, 

거울 속의 내가 문득 황인종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얼굴도 노랗고, 눈의 흰자위도 노랗게 변했고, 특히 상반신 몸 전체가 노래졌다. 

며칠 뒤에는 하반신도 모두 노랗게 변했다. 진정한 황인종이라하겠다. 옅은 녹색에 가깝다.

항상 하얗거나 약간 붉거나 했던 피부색이 언제 이렇게 노랗게 변했는지, 하루아침에 찾아온

변화가 낯설다. 다시 원래의 피부 색을 되찾을 수 있을까? 


쓸개에서 생성되어 담도를 거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할 담즙이 췌장 머리쪽으로 더 퍼졌을

암세포로 인해 길이 막힌 듯 하다.

담즙 색소성분인 노란색의 빌리루빈이 변으로 배출되지못하고 온몸에 쌓였다는 소리다.

언젠가... 암세포가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가면 그 때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배출되면서 

정상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하지만,  열흘이 지났어도 거울속 모습이 여전히 낯설기만하다. 

화장이라도 해야할까?



* 변화 2. 


23년 1~2월 당시 몸무게가 85kg이었던가 싶다. 현재 몸무게는 51~52kg.  33~34kg이 사라졌다.

작년 초 처음 증상이 시작된 뒤로 지금까지 매일밤 똑바로 눕지못하고 뒤척이며 옆으로 돌아누워잤다.

그것이 이제는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인지 이부자리에 닿는 골반뼈가 저리고, 어깨가 저리고,

고개마저 무겁다. 컨디션이 좋지않아 잠못드는 밤에는 매시간 자다 깨어 화장실에 간다. 소변량이

하룻밤 사이에 1kg이 사라진다. 거기에 뱃속이라도 불편해 한끼라도 건너 뛰거나 부실해지면 여지없이

줄어든 몸무게가 그대로 굳어진다.  이런식으로 차츰 줄어든 것이 50kg에 가까워졌다.


몸이 마르니, 이전에 못입던 모든 옷들이 편하게 잘들어간다. 흉부가 남보다 두터운 편이어서 

조금만 운동을 해도 너무 둔해보이는 것이 아쉽곤했는데, 뭘 입어도 날씬하다. 좋은 점이긴 한데.

날아갈 듯 가벼워야할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빠지는 체중속에는 지방도 있지만 근육량도 포함되다보니

높은 계단이나, 버스 계단을 올라서기가 버겁다. 

매일 뭘 먹여야 우리 아들이 잘 먹고 조금이라도 살이 찔까 노심초사 고민하시는 어머니의 수고로움에

매번 감사함과 죄송함을 느낀다. 그러고보니 몸이 아프고나서는 어머니께 생활속의 많은 것들을 의지한다.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내 입에서는 고맙습니다 어머니~란 감사인사가 늘 붙어있다.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라다. 



* 변화 3. 


작년 23년의 10월 말~11월 초. 드디어 아내에게 투병중인 사실을 알렸다.

영상통화로만 마주보며 자꾸만 내 건강이상을 의심해왔던 아내는 많이 울고, 또 울었다.

멀리 떨어져서 오도가도 못하고 언제나 변명과 핑계, 미안함만 전하던 내 말에 다시 한번 쌓였던 것이

터진 아내는 남편으로서도, 아빠로서도 있으나 마나한 내 역할에 대해 화를 내던 중이었다. 

수 많은 오해들에 대해 더 이상은 둘러댈 말이 없었고, 몸이 너무 아파서 마음까지 더 아프고 힘들었던 그날, 나도 참지 못하고 사실을 털어놓았고, 아내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안그래도 힘든 아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싫어서, 더 나아져서, 얼른 다 낫고나서 알려주고싶었는데. 

참 쉽지 않았다. 이런 내 어리석음에 대해 아내에게 더 많이 미안했다. 


아내가, 그동안의 쌓였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어떻게 삭여냈는지, 수용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 날 이후 두번다시 서로를 힘들게 하는 말들은 나오지 않게되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할까. 오래전부터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던 내 감정이 아내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두터워져만 가던 벽. 그 벽이 사라졌다. 그저 서로 지극하게 그립고 애달파하는 마음만이 자리잡았다.

마치, 다른 생각없이 순수하게 연애를 하고 서로를 보듬어주고싶던 그 시절처럼. 마음을 받아주는 아내로 돌아왔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미안해하는 마음보다 감사한 마음을 더 담고 살기로 했다.

어린 아들은 여전히 아빠가 췌장암에 걸렸음을 모른다. 그저 열심히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해서 살이 많이 빠졌고 최근에는 몸이 좀 불편한가보다...라고 여긴다. 아내 덕분이다.


설에 만나기로 한국으로 다녀가기로 한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더 서둘러 12월에 다녀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내와 아들. 아내는 그저 눈물만 글썽였고, 22년 여름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은 수줍게 웃었다.

그저 감사했고, 행복했다. 아내는 앞으로 자주 한국을 다녀가기로 했다. 아들에게 한국어 공부도 자주 시키겠노라고 약속했다. 



* 변하고 싶은 것 한 가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버티는 게 고작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생존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 견디고 또 하루를 견디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제대로 더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과, 부모님과,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 삶에 의미를 더욱 부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정말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좋으니, 따뜻한 침대위로 자꾸만 쓰러지는 내 몸을 일으켜세우고,  

생기를 부여할 무언가를 오늘부터 하기로 했다. 시작은 오랜만에 다시 써보는 브런치에 생존 기록 남기기.  두어시간이 걸려 글을 천천히 쓰고나니 머리와 어깨가 무척이나 무겁고 저려온다.


브런치에는 앞으로 아주 짧은 메모가 될 지라도 가능한한 계속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고, 점점 더 살아내고자 한다. 


나는 내가 나을 것이라는 것을, 병에 절대 지지않을 것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너무 내 자신을 방관하며 느슨하게 살아왔다. 투병도 일하는 것처럼, 공부하는 것처럼, 돈을 버는 것처럼, 아니 그 무엇보다도 더 치열하게 맞붙어야하는 것인데.  나는 늘 그렇듯 미루고 또 미루는 게으른 습관에

투병마저 놓아버렸었나보다. 

이제, 무거운 몸을 벌떡 일으켜세우고, 다시 삶을 펌프질 할 그것을 시작한다.


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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