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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Feb 02. 2024

영화 <의형제>가 가족의 소중함을 전하는 방식

* 경기도 고양시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 기고한 영화 칼럼입니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영화 장르, 바로 ‘분단영화’다.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피어난 초기 분단영화는 주로 반공적 성격이 강했다. 선과 악의 대립 등 납작한 캐릭터 구축으로 장르의 성장과 퇴행을 거듭했다. 이후 분단영화는 <쉬리>(1999)의 개봉을 통해 변곡점을 맞았다. 북한 여자와 남한 남자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쉬리>의 대중적 성공은 분단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14년 전, 설 연휴에 개봉한 장훈 감독의 <의형제>(2010)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남파공작원과 국정원 요원이라는 적대적 관계를 형제애로 녹였다. 생면부지의 두 남성은 이념을 초월해 피(血)가 아닌 의(義)를 나눈 사이가 되고, 한 집에 살며 일종의 유사가족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의형제>는 남북한 병사들의 뜨거운 우정을 다뤘던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웰컴 투 동막골>(2005) 등의 영화들과 맥을 같이 한다.


국정원 요원인 이한규(송강호 분)는 남파공작원인 그림자(전국환 분)를 잡기 위한 작전을 편다. 이한규는 그 과정에서 부하들을 잃고, 작전 실패의 책임으로 파면된다.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남파공작원인 송지원(강동원 분)은 그림자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이한규와 송지원은 우연히 재회한다. 이한규는 간첩 신고 상금을, 송지원은 배신자의 낙인을 벗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이 같은 설정으로만 재단하면 <의형제>는 ‘버림받은 두 남성’에 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가족과 멀어진 상태’라는 점이다. 이한규는 이혼한 중년 남성이다. 카메라는 이한규가 해외에 거주 중인 딸과 통화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배신자로 낙인찍혀 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송지원은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이산가족인 셈이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이한규와 송지원이 함께하는 작업은 (영화 속 대사를 빌려 표현하면) ‘대한민국의 가정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주로 한국에 시집왔다가 폭력 등 여러 이유로 가출한 동남아 여성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일종의 흥신소 업무다. 이한규가 가출한 여성들을 붙잡아 수갑을 채우자 송지원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한다.


여느 날처럼 흥신소 업무를 하던 두 사람은 한국 남편으로부터 폭행당한 뒤 도망친 베트남 여성 뚜이안(이자스민 분)을 붙잡는다. 뚜이안은 다시 남편 집으로 가기 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와서 결혼한 여동생을 한 번만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같은 한국에 살면서 5년 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자매의 상봉을 주선한다. 뚜이안이 동생을 부둥켜안으며 울자 이한규가 말한다. “그냥 가자.”


서로를 의심하며 이용하려했던 이한규과 송지원은 한 집에서 자고, 먹고, 싸우며 가족이 된다. 가족과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뚜이안 자매의 만남을 도왔던 일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자 당위였다. 국정원 직원들이 송지원을 체포하려하자 이한규가 막아서고, 다시 나타난 그림자가 이한규를 죽이려하자 송지원이 막아선다. 막아선다는 것. 험난한 외풍으로부터 서로를 구원하는 것.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바로 그런 것이리라.


영화 중반부, 새아빠에게 피아노를 배웠다는 딸의 전화에 이한규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생일을 앞둔 딸에게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는 이한규는 전화를 끊고 헛헛한 마음에 송지원에게 문자를 보낸다. “저녁에 나 맛있는 것 좀 해줄래?” 분단영화의 외피를 두른 <의형제>가 진실로 말하고 싶었던 건 남북한의 화해라는 거국적 차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존재에 관한 고마움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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