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 권한을 갖는 체제의 건강함
대한민국 교사는 행정업무를 꽤 많이 합니다. 하루 걸러 쏟아지는 가정통신문, 한주에 한 번은 되는 것 같은 온갖 설문조사와 동의서와 통계를 하다 보면 정신이 없습니다. 아침에 학생들과 책을 좀 읽으려 해도,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신경을 쓰다 보면 책 읽는 교실 분위기를 잘 챙기기 못하기 일쑤입니다. 모든 교사는 자기 반에서 무엇인가 잘해보고 싶지만, 학교 일상의 자잘한 일들에 떠밀리다 보면 어어 하는 사이에 어느새 학기말이 다가옵니다.
학급일을 부서별로 나누어 하면, 담임이 편해져서 학급을 더 잘 이끌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학급일을 부서별로 나누면, 학생들이 학급의 권한을 나누어 갖게 됩니다. 담임이 모든 일을 챙겨서 하지 않고, 똑똑하고 착한 일부 학생에게만 업무 도움을 받지 않고, 반 전체 학생들과 같이 일을 나누어 하는 체제입니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은 누구든 자기 영역에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나서서 일을 하게 되기에 소외감이 줄어듭니다. 어떤 일을 나서서 하다 보면 여러 구성원들의 협조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 자신이 공동체 활동의 어려움을 각자 알게 되어서, 전체 활동에 협조하는 태도가 생깁니다. 부서별로 학생자치 방식으로 학급관리가 되어서, 담임교사가 무척 편해집니다. 한마디로, 부서별 학급자치는 편하고 교육적입니다.
부서는 이렇게 있습니다.
◦청소부 : 청소 정책을 정함. 청소 역할 나누기. 청소 담당을 종례 전에 날마다 알려주기
◦지각부 : 아침마다 지각생 확인. 정해진 시간이 되면 지각생을 모아 담임에게 데려오기. 지각 정책 정하기
◦알림부 : 가정통신문을 공문함에서 가져다 나눠주기. 날마다 공문함을 확인해서 통신문 나누어주기
◦걷기부 : 통계, 설문, 동의서를 걷기.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한 가지씩 나누어 맡아 하기
◦책읽기부 : 아침책읽기 시간에 한 사람씩 나와서 분위기 챙기기. 학급문고 관리
◦공부부 : 수행평가 일정 칠판에 적기. 과제 챙겨서 마감 3일 전에 안 한 사람 담임교사에게 알리기
◦설비부 : 교실 설비, 기자재, 사물함 관리하기
추가로 더 둘 수 있는 부서는 이렇습니다.
- 행복부 : 생일 챙겨주기, 체험학습과 행사 기획 진행
- 신문부 : 신문과 잡지 구독 관리
학급 학생 수를 보고 부서 인원을 정하는데, 보통 4-5명으로 하면 무난합니다. 올해 저희반은 남학생 14명, 여학생 14명이어서 부서별 인원을 남자2, 여자2로 정했습니다. 교사가 칠판에 부서 이름을 크게 적고,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원하는 부서에 이름 쎴습니다. 인원이 넘치거나 모자른 부서가 나옵니다. 인원이 넘친 부서에 이름을 적은 학생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양보하고 다른 부서로 가면 됩니다.
부서로 학급운영을 할 때 장점이 많습니다. 학교마다 보통 1인1역을 정해서 하는데, 이것은 부서로 운영하면 됩니다. 일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부서별로 맡기면 몇 가지가 달라집니다.
1인1역을 개인별로 하면, 학생 개인을 봐야 해서 담임의 관리 부담 높습니다. 업무분담이 개인 단위로 되어서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누군가 궂은일을 많이 하는 학생이 생기는데, 주로 마음이 약하거나 착한 학생이 일을 덮어씁니다. 학급의 권한이 반장, 부반장에게 집중되어서 이 학생들이 인간관계가 상하거나 일이 지나치게 몰려서 부담이 커지게 됩니다. 반면 다수의 다수의 학생들은 자꾸 대상화되어서 지내게 됩니다.
1인1역을 부서로 하면, 학생을 부서별로 보기에 담임의 관리 부담이 적어집니다. 모둠으로 움직여서 소외되는 아이가 줄어듭니다. 부서별로 학급일을 하기에 궂은일이 골고루 잘 배분됩니다. 학급의 권한을 구성원들이 소집단으로 일부분씩 갖고 행사하기에, 권한을 많이 행사하는 학생에게 불쾌감이 생기지 않고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참고로, 앉는 자리도 부서끼리 앉습니다. 부서 안에서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자리를 바꾸어 앉아도 되지만, 부서끼리는 두 달 정도 함께 앉게 합니다. 일이 손에 익고 소통과 협력이 잘될 때까지 물리적으로 가깝게 있는 게 필요합니다. 교실 청소는 부서별로 돌아가며 합니다. 주번은 2명씩 두고 칠판 관리를 일주일씩 돌아가며 합니다.
담임이 어떤 일을 맡길 때 부서장에게 말하면 부서장이 부서원과 상의해서 일을 나누어서 하는 방식으로 반이 돌아갑니다. 학급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부서장을 모아서 의견을 나누면, 적절하게 전체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전달내용이 있을 때도 부서장들을 불러서 이야기하고, 부서장들이 부서 친구들에게 알려주게 하면 훨씬 전달이 잘됩니다.
학기말에 학생생활기록부를 쓸 때 부서에게 비포종이를 한 장씩 주고, 상의해서 의견을 알려달라고 하면 좋습니다. 청소부에게는 청소를 열심히 한 학생들을 알려달라, 지각부에게는 한 학기 동안 지각을 한 번도 안 한 학생을 정리해달라, 책읽기부에는 책을 반에서 잘 읽는 학생들을 뽑아달라, 걷기부는 자신이 가져와야 할 서류를 잊지 않고 잘 내준 학생들을 기억해달라, 공부부에게는 공부를 진짜 성의 있게 한 친구 명단을 적어달라는 식입니다. 부서별로 의견을 상의해서 이 내용을 쓰기에, 이 문서는 신뢰도가 높습니다. 담임교사가 본 학생들의 모습이 친구들이 본 게 있는데, 동료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를 담임교사가 참고할 수 있습니다. 부서마다 한 장씩 의견이 걷히기에 상당히 보기가 편합니다.
이 체제는 손발이 머리가 되고, 머리가 손발이 되어서 조직이 건강해진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누군가는 계속 시키고 감독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지시에 주로 따르는 조직은 구성원들이 심리적 건강함을 잃기가 쉽습니다. 공동체 생활은 각자가 남의 말을 들은 만큼 자신도 나설 때 마음이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