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아직 타보지 않았지

by 이다지


너의 1년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이 글들이 어느새 1년을 훌쩍 넘기고 있어


생각을 글로 써서 먹고사는 일을 하는 탓일까


왠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름 공개적인 것에 적는다는 게

괜히 어색한 거 있지


(그런데 왜 여기에 쓰냐고..? 그러게. 그래도 좋은 점은 있어. 나중에 네가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번은 생각을 정제해서 남겨둘 수 있다는 점. 그건 좋은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는

편안하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가볍기 기록해두려고 해


목적은 결국

너를 남겨놓는 것이니까


너에게 베베핀을 꾸준하게 보여주고 있어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늦추고 싶지만

매일 드레싱을 해줘야 해서 사실

별 다른 방법이 없더라


그래도 새로운 자극은 적게 받길 바라는 마음에

우린 거의 같은 영상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그중에 하나가

잠들기 전 베베핀 시리즈야


그 영상에는 잠에 들기 위해

무언가를 타고 별나라로 가는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

(보여주는 건 엄마 담당, 네가 보는 동안 드레싱은 아빠 담당이라 아빠는 한 번도 그 영상을 보진 못했어)


언젠가 말로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너는 그 장면에서 늘 이렇게 웃으며 말했지


‘나는 아직 못 타봤지’


엄마와 아빠는 그런 널 보며

그래 그래 못 타봤지 하며 웃곤 했어


영상의 대사에 혼자서 대답하는 네가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런데 어느 날은

그 뒤에 한 문장을 더 말하는 거야


‘나도 크면 유니콘 탈 수 있지’


마치 유니콘이 버스나 전철처럼

당연하게 탈 수 있다는 듯 또 웃으면서 말이야


드레싱을 하다가 그 말을 듣는데

아빠는 잠시 눈물이 핑 돌았어


뭐든 탈 수 있었는데

뭐든 될 수 있었는데

아빠도 어릴 땐 그랬을 텐데

싶기도 했고


동시에

유니콘을 타겠다는 내 아이에게

유니콘까지는 아니어도

가고자 하는 마음만 확고하다면

그곳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단단한 발판이 되어주고 싶기도 했거든


그런데 발판 얘기가 나와서 생각이 났는데

너는 요즘 엄마와 아빠를

사다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허벅지며 팔뚝이며 배 위까지

발로 밟고 다 올라서려고 하거든


너도 이젠 꽤 커서 처음엔 꽤 아프더라


그런데 아픈 건 아픈 건데

하다 보니까 좋아 요즘엔


뭐가 그리 즐거운 지

아빠 배 위에 올라서서

생글생글 웃으며

아빠를 내려다보는 네 얼굴


아픈 건 잠깐이지만

너의 그 얼굴은 아빠에게 영원일 거 같아서.


그래 아무래도

내일부터 복근을 더 길러야겠다 아빠는.




















작가의 이전글EP.11 아빠의 엄마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