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페이지 Aug 12. 2020

읍천리 382

2020. 8. 10. 월 / 237 days

밤잠에 들기 전에 늘 울며 보채서 아빠나 엄마가 아기띠로 안고 둥기둥기해야 잠들던 우리 다인이가 요즘 들어 조금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8시쯤 잠자리에 눕히면 칭얼거리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굴러다니다가 벽을 타다가 엄마를 잡고 올라서는데 그러면서도 안아달라고 울며 보채진 않는다는 거지. 다인이가 뒹굴거리는 옆을 누워서 지키다 엄마가 먼저 잠들어버렸는데 자정이 되자 아빠가 엄마를 깨웠어. 편히 자고 오라고.


많이 잔 덕분일까. 엄마는 오늘 컨디션이 괜찮았어. 그래서 이유식을 먹인 후, 밖에 비가 그친 걸 확인하곤 아빠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지. 아빠도 흔쾌히 받아주었어.


서울 이모에게 보내려고 벼르던 옷가지를 챙겨 들고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왔어. 집안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바깥은 보기보다 후텁지근한 상태라 밖에 나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엄마는 외출을 후회했단다. 아빠한테는 티를 내지 않았어. 후후.


우체국에서 택배를 보내고 평소 다니던 길과는 다른 골목길을 택해 걷다가 우연히 새로 생긴 가게를 만났어. 읍천리 382라는 이름의 가게는 원룸촌에 있기엔 생경한 재질이었어. 음식점일까 카페일까 궁금해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곳이더라. 산책 한 바퀴를 마치고 오는 길에 들릴 생각에 살짝 신이 났어.


코너를 돌아 놀이터를 지나 산책을 이어가려는데 습한 날씨에 짜증이 났는지 다인이가 힝구 힝구 칭얼거리기 시작했어. 너의 울음은 우리의 산책이 끝남을 알리는 알람 같은 거지. 집에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아쉬운 마음에 조금 전에 봐 두었던 카페로 향했어. 얼핏 보았던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궁금했거든.


읍천리 382는 대구에서 유명해진 카페라고 해. 매장 수를 늘리다 보니 구미에도 체인점이 들어서게 되었나 봐. 인테리어를 할 때 가게의 이름처럼 구수한 콘텐츠를 끼워 넣었는데 그 모양이 제법 세련되게 빠져서 매력적이었어. 한쪽 벽에 놓인 아날로그 텔레비전에는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오고, 그 아래에는 란마 1/2 비디오테이프가 놓여있어 향수를 자극했지.


읍천리 커피라는 메뉴가 시그니처인 것 같아 아빠가 마시기로 하고,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엄마는 밀크티를 골랐어. 며칠 전 커피라운지에서 밀크티 봉인해제를 선언한 후로 카페에서 밀크티 정도는 마시기로 했거든. 그리고 와플 하나 추가. 주문을 마치고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않았어. 아기의자를 가져와서 다인이를 앉혀보았는데 이제 허리 힘이 많이 좋아진 다인이는 의자에 잘 앉아있더라. 엄마는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는 걸 느꼈어. 7개월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우리 다인이를 데리고 카페에도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들었거든. 다인이의 간식을 가져 나오지 않아서 그리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그게 어디야.


카페에 머무는 동안 다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 집에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자 거짓말처럼 비가 다시 그쳤어. 빨리 집으로 돌아가 다인이를 목욕시키고는 잠들기 전까지 다인이의 무한 반복되는 벽 잡고 걷기를 지켜봤어. 얼마 전까지는 벽에 매달리는데 집중하더니 요즘은 팔힘이 늘어서 벽을 잡고 몸을 뒤로 빼기도 하고 코너에 가서는 한쪽 팔로 벽을 잡고 몸을 뒤집어 등을 벽에 대고 엄마를 보기도 해. 그것만도 신기한데 의사표현도 하나 늘었단다. 한참을 걷다가 응응응하고 불만이 섞인 콧소리를 내며 팔을 엄마에게 내밀어. 한쪽 팔을. 엄마가 그 팔에 안기듯 몸을 기울이면 다인이는 엄마를 잡고 바닥으로 내려온단다. 내려가고 싶다는 뜻을 명확히 알려줘. 대단하지? 그런데 내려오자마자 다시 벽을 향해 돌진할 거면 왜 내려달라고 하는 거니? 귀엽게.


그나저나 비가 참 오랫동안 내린다, 다인아.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우리 다인이는 또 제법 자라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쉽지 않은 것도 같아.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