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고 집요한 전략적 독서에 대하여
한때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부터 그저 버릇처럼 책을 사곤 했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에 위안을 받으면서 내 방에 쌓여 있는 책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쌓아 둔 책을 안 꺼내 읽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야금야금 책장에는 책이 쌓이고, 슬금슬금 좁은 책장 바깥으로 책이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데, 많은 책이 택배 상자에서 책장으로 옮겨온 이후 한 번도 펼쳐지지도 않고 책장에 꽂혀 있었다. 이게 다 무슨 겉멋인가 싶었다.
어쩌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부터 잘 찾지 못하고 있던 걸 수도 있다.
나는 왜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이전에 나는 왜 책을 샀을까? 왜 책이 필요하다고 느꼈을까?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였을까? 책을 사는 게 있어 보이기 때문이었을까? 그저 재미있어 보여서 샀을까? 단지 한 때의 충동구매일 뿐인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가장 만만한 쇼핑 대상이어서였을까? 책이라도 안 사면 내가 뒤쳐질 것 같아서였을까? 뭐 하나 이루어 놓은 거 없이 낙오되는 삶으로 가는 것 같아서였을까?
여러 방향의 불안에 소비는 마취제 역할을 했고, 정신 차리고 보니 허송세월을 한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책을 읽어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하루에 몇 분 이상 무조건 책을 읽자는 나름의 규칙을 정해 보기도 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가방에 책을 넣고 다녔지만 꺼내보질 않았다. 퇴근하면서 카페라도 가봐야지 했는데, 코로나 19가 터졌다. 책상의 중심에 키보드 대신 독서대를 놓아봤지만 어느샌가 독서대는 다시 옆으로 밀려났다.
뭘 해도 일주일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마치 고운 모래를 쥐는 것처럼 내 다짐은 쉽게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그래도 꾸준하고 의식적인 노력이 반복되면 뭐라도 변화가 생긴다. 이제는 한 달이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책을 읽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습관을 유지하려 노력하려고 한다.
매일 책을 읽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을 갔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라고 하지만 마치 옷을 자주 사는 사람이 매일 아침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막상 산 책 중에 읽으려고 보니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예전의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과 지금의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서점에 갔다. 최근에도 서점에는 자주 갔지만 책을 고르기보다는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거나 문구류를 구경하러 갔지 책을 사야겠다고 갔던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뭐라도 읽을 책을 골라야 어렵사리 유지하고 있는 습관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지향점 없이 서점의 서가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어떤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제목만 보고, 내 이야기라고 느꼈다. 바로 샀다.
나는 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
작가가 책에서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은 꾸준함이다. 꾸준함이라는 말이 쉽다는 건 행동은 어렵다는 소리다. 말이 쉽고 행동도 쉬우면 말이 쉽다는 소리를 애초에 안 한다. 그냥 쉽다고 하지.
그다음으로는 책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는 전략적인 접근이다. 목표 없이 그냥 책을 읽겠다고 덤벼들면 꾸준함에도 방해가 되고, 책을 읽은 행동에 대한 보상도 얻기 어렵다. 더불어 책 자체를 너무 떠받드는 것도 좋은 접근이 아니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책을 만든 것은 사람이다.
세 번째는 재미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아예 읽히질 않는다.
네 번째는 책을 잘 골라야 한다. 잘 고른 다는 것의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해서, 자신이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맞는 책을 골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잘' 골라야 한다는 건데,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실패를 경험하면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실패를 덜기 위해 표지, 저자 소개, 목차 등을 보면서, 인터넷 서점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리뷰도 보면서 지금 나에게 이 책이 필요한지 가늠해볼 수 있지만 매번 성공적으로 '잘' 고를 수는 없다. 한 번 실패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자. 야구에서 3할 타자면 잘 치는 타자라고 하는데, 3할 타자란 10번 중에 7번 실패하는 타자다.
다섯 번째는 환경을 잘 만드는 것이다.
책은 일단 사야 읽는다. 자꾸 사야 읽는다.
하지만 잘 버리고, 잘 선택해서 남겨야 한다. 무작정 많이 쌓아두기만 한 책은 쓰레기랑 다를 바 없다.
책을 여기저기 둬라. 그래서 손에 쉽게 닿게 하고, 쉽게 펼쳐볼 수 있게 해라.
내가 책 읽는 사람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가끔은 과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섯 번째는 완독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말고 여러 책을 같이 읽으면 좋다.
물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읽어 나가는 게 중요한 문학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목적성을 가지고 읽는 실용서라면 더더욱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가 없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고, 다른 저자의 책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을 찾아서 읽는 식으로 넓혀 가다 보면 자신 만의 관점이나 통찰을 얻기 쉽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는 메시지 하나를 찾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독서법이다. - p.128
끝으로 집요하게 읽어야 한다.
작가는 카페를 옮겨 다니면서 읽고, 책을 읽기 위해 기차를 타고, 심지어 책을 읽기 위해 야구장까지도 간다고 했다. 다른 건 좀 이해가 되었는데, 야구장에서 책이 잘 읽힌다는 건 좀 이해가 어려웠지만 그런 부분은 개인의 취향이고 개인의 방법론이다. 중요한 점은 집요하게 책을 읽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책을 읽는다는 점이었다.
그렇게까지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지만
그렇게까지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요즘의 환경을 책을 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만해도 쉬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 보내고 있고, 버릇처럼 책 보다 스마트폰에 손이 먼저 간다.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집요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책을 읽기로 했다면,
꾸준하게 읽기로 했다면,
매일 읽기로 했다면 집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책을 읽는다는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만의 독서 장소를 찾길 바란다. 고정된 장소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공간을 독서의 장소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 p.198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무작정 읽는 것이 아니라 '잘' 읽기 위해 독서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사두기만 하고, 손이 가지 않았던 책 중에서도 두어 권을 찾았고, 서점을 다니면서도 몇 권을 골랐다. 그렇게 독서 또는 독서법에 대해 쓴 책들이 여러 권이 손을 뻗으면 바로 닿는 곳에 있다.
이 책은 독서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수필로 풀어놓은 것이기에 좋은 선배와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은 책이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독서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풀어놓았을까? 어떻게 책을 읽는 게 좋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런 와중에 단순히 누군가의 방법을 따라 하는 것을 넘어 나에게 잘 맞는 나만의 독서법을 만들고,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 나도 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