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을 자유를 갈망하며
평생을 모든 것에서, 심지어 내 존재 자체에도 쓸모를 강요하던 나에게 6개월 제주 생활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꽤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어릴 때처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무용한 것'들을 종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2월 어느 날 저녁에는 타고 있는 초를 한참 동안 보다 생각했다.
'갑자기 베란다 문이 열리고 바람이 훅 불어 여기 있던 티슈가 타고 있는 초로 날아가고 불씨가 커져 옆에 있는 책들을 태우고 이 방과 건물을 다 태울 수 있을까?' 하고.
그러다 또 생각했다.
'와 나 부자다!'
종일 지치지도 않고 쓸모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내가 진짜 부자라고.
앞으로도 이렇게 쓸모없을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고.
...
틈만 나면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던 아이가 공상을 멈춘 후 우울이 찾아왔다.
크게 소리 내어 울지 못해 밤마다 입술을 앙다물고 울음을 참던 아이가 우는 법을 잊은 후 우울이 찾아왔다.
몇 년 전부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눈물을 한참 흘리고 난 뒤에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제야 쓸모없는 생각들(실은, 제일 쓸모 있는 생각들)을 한없이 하며 내 안에 꽁꽁 숨어있는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다시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다 떠는 모습이 그려지는 이 집으로 이사하며 이름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무용'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
...
이곳을 찾는 이들 모두,
부디 이곳에서만큼은 쓸모없을 자유를 누리며
삶의 우물을 확장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無用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