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듬 Apr 25. 2021

無用井

쓸모없을 자유를 갈망하며

평생을 모든 것에서, 심지어 내 존재 자체에도 쓸모를 강요하던 나에게 6개월 제주 생활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꽤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어릴 때처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무용한 것'들을 종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2월 어느 날 저녁에는 타고 있는 초를 한참 동안 보다 생각했다.



'갑자기 베란다 문이 열리고 바람이 훅 불어 여기 있던 티슈가 타고 있는 초로 날아가고 불씨가 커져 옆에 있는 책들을 태우고 이 방과 건물을 다 태울 수 있을까?' 하고.


그러다 또 생각했다.

'와 나 부자다!'


종일 지치지도 않고 쓸모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내가 진짜 부자라고.

앞으로도 이렇게 쓸모없을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고.


...


틈만 나면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던 아이가 공상을 멈춘 후 우울이 찾아왔다.

크게 소리 내어 울지 못해 밤마다 입술을 앙다물고 울음을 참던 아이가 우는 법을 잊은 후 우울이 찾아왔다.


몇 년 전부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눈물을 한참 흘리고 난 뒤에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제야 쓸모없는 생각들(실은, 제일 쓸모 있는 생각들)을 한없이 하며 내 안에 꽁꽁 숨어있는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다시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다 떠는 모습이 그려지는 이 집으로 이사하며 이름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무용'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


...


이곳을 찾는 이들 모두, 


부디 이곳에서만큼은 쓸모없을 자유를 누리며 

삶의 우물을 확장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無用井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