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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Apr 22. 2022

예쁜 계절

얼마 전부터 걸어서 출퇴근하는 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년 뒤에는 다시 대전으로 가야 하지만, 찢청이든 반짝이든 파이톤 무늬든 맘대로 입던 연구원과는 다르게 정장 비스름하게 입어야 하는 답답한 동네지만, 심지어 작년부터 과제 인센티브 못 받고 월세 지원금은 연봉에 포함되어서 실질 연봉은 쭉쭉 하락하고 있지만, 


평생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나의 10대 시절 로망-광화문 직장인-이 이렇게 느닷없이 이루어질 줄이야. 


고등학생 때만 해도 대학 졸업하면 당연히 광화문에서 일하는 줄 알았다. 숱하게 마주치는 여의도 직장인은 이상하게 가벼워 보였고, 내 사랑 광화문에서 마주치는 직장인은 품격 있어 보였다.(고딩 주제에 건방)


공대 졸업한 초년생이 서울에서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은 너무 늦게 알았고, 월급쟁이는 여의도든 광화문이든 탕정이든 어디서든 똑같은 좀비라는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알아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좀비라도 내가 좋아하는 동네에서 일하는 좀비는 좀 더 행복한 것 같다. 연봉 좀 깎이면 어떻고 옷 좀 불편하면 어때. 지구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네를 매일 걸어 다니는데. 히히히


문제는 업무 스트레스 없이 슬렁슬렁 논문 읽고, 보고서 훑는 생활을 며칠 하니까 박사 해볼까 하는 정신 나간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는 것. 기왕이면 하와이 가서 미래학이나 스웨덴 가서 정책학 하는 게 좋겠지! 하고는 자꾸 써치하고 컨택할 교수 리스트 정리하다 말고 흠칫 놀라 손을 멈췄다.


보나 마나 코스웍 시작하자마자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아...



정신 차리고 열심히 열심히 놀자. 예쁜 계절이 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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