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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나에게만 속한 시간과 일과 물건들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좋았던 이유

by 쏭마담


새벽. 창밖의 어스름한 빛 뒤로 초로의 남자 하나가 아침을 깨운다.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개고 어젯밤 잠들기 전 읽은 책의 책갈피를 접는다. 이를 닦고, 수염을 다듬는다. 화장실이 따로 있지 않은 좁은 다다미 주택. 개수대에서 간단한 세수를 마친 그는 다다미방으로 다시 올라가 화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물을 준다. 하루의 시작이다.


일터로 나서기 전. 그는 어제 귀가하며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아둔 카메라, 시계, 동전, 열쇠를 챙긴다. 문 밖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다. 집 앞 자판기에서 커피캔 하나를 뽑아 들고 봉고차에 올라탄다. 좌석에 앉아 낡은 카세트테이프를 고른다. 시동을 건다.


그가 도착한 곳은 시내의 공중 화장실. 그는 뒷좌석에서 자신이 손수 만든 청소도구를 챙겨 들고 일터로 향한다. 그의 이름은 히라야마.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맨손으로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꽁초와 세면대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휴지를 줍는다. 변기와 선반을 정성껏 닦고 난 뒤, 보이지 않는 화장실 아래쪽은 반사경을 꺼내 잘 닦였는지 확인한다.


히라야마와 함께 근무하는 오타쿠 청년은 오늘도 지각이다. 10점 만점에 8점이니, 하며 매일 뭔가 평가하는 버릇이 있는 젊은이. 지각할 때마다 요란스럽게 변명을 하고 틈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게 특기다. "히라야마 씨,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어차피 더러워지는데." 오히려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손가락으로 청년이 할 일을 가리킨다.


청소 틈틈이 침범해 들어오는 무례한 취객과 바쁜 행인들에게도 그는 조용히 자리를 내어줄 뿐. 그들이 볼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멀리 흔들리는 산으로, 나무로 시선이 옮겨갈 때마다 그의 옅은 미소가 따라간다.


점심시간. 공원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점심을 마친 후 그는 늘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 한 장을 찍는다.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 실루엣 뒤로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라는 뜻의 일본어)가 어른거린다. 가끔은 산책하다가 나무 사이에 잘못 싹을 틔운 작은 모종을 파내 집으로 가져가는 것도 그의 일과 중 하나다.


일을 마치고 들르는 동네 목욕탕. 몸에 정성껏 비누칠을 하고, 탕 속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푼다. 저녁은 지하철 지하상가. 그곳에 단골 식당이 있다.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식당 주인.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늘 똑같은 인사와 늘 똑같은 메뉴. 그는 종업원들이 TV에서 방영되는 야구 중계를 보며 옥신각신 하는 것을 지켜보며 홀로 저녁을 먹는다. 귀갓길. 다리 위로 다시 도쿄타워가 불을 반짝인다.


저녁의 집은 고즈넉하다. 이부자리를 펴고 누운 남자는 어제 읽다 만 문고판 책을 펼친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이 한번, 두 번 끄덕거리며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면 어느덧 그의 하루도 저물어 간다. 탁상조명을 끄고 편안히 눈을 감는다.




<퍼펙트 데이>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영화다. 원래는 도쿄 올림픽 직전 기획된 도쿄 공중 화장식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디자이너를 기용하여 도쿄 소재 공중 화장실을 리뉴얼 한 뒤, 영화와 사진으로 담아보자는 아이디어. 하지만 세계적인 거장 빔벤더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한 편의 묵직한 영화로 재탄생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내 나이 오십에 청소 알바에 도전하게 된 계기에도 3할쯤 영향을 주었다. 청소를 시작하면서 주인공 야쿠쇼 코지가 입은 올인원 청소복에 꽂혀 한동안 인터넷을 검색하고 다니기도 했으니 말 다했지. (파트너가 우리 몸매에게 올인원은 불가함을 강력히 어필하는 바람에 물 건너갔지만. ㅎㅎ)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재와 소품들은 평범하지만 정감이 넘친다. 디자이너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디자인한 화장실 17곳, 주인공 히라야마의 청소에 임하는 단단하고도 올곧은 자세, 올드팝과 헌책방과 어린 분재와 자전거라는 그의 소소한 취미들. 소재와 소품의 매력 사이로 뭔가 깊은 사연을 품은 듯한 그의 과거가 교차 편집된다. 젊은 시절, 남부러울 것 없는 학력과 지위와 부를 누렸던 잘생긴 주인공. 하지만 그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생의 한 때, 주류에서 밀려난 듯 보인다. 현대사회와 자본주의의 끝자락에서 삶의 덧없음과 허무를 맛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렇고 그런 결말로 자신을 내던지는 대신 다른 대안적 삶-낡고 올드한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구부린 듯싶었다. sometimes I feel so happy, sometimes I feel so sad... but 우리는 오늘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실존적 자각 앞에 맞서 살아남았다. 그도 나처럼, 쉬운 죽음 대신 어려운 삶을 선택했다는... 그런 안도감과 반가움.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다 좋아서,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봤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특별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선반이었다. 현관 입구에 놓인 가슴 높이 정도의 나무 선반. 그는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그 선반 위에 자신의 물건들- 카메라, 시계, 동전, 열쇠를 차례로 꺼내놓는다. 그리고 나갈 때 그 물건들은 다시 고스란히 그의 주머니 안에 담긴다. 급하게 허둥거리고 찾을 필요가 없이,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선반. 그 선반이 그리 좋았다.


결혼 후에도 나는 청소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남자 인간 셋에 수컷 개 한 마리와 동거 중인 나의 집. 한 번도 깔끔했던 적이 없었다. 어쩌다 큰맘 먹고 대청소를 해도 수컷 넷이 한두 번 휘젓고 나면 가구의 각은 엇나가고 쿠션과 이불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거실뿐이랴. 식탁과 화장실과 방 곳곳엔 지나간 흔적들로 가득했다. 옷과 양말, 음식 그릇과 찌꺼기, 읽다 만 책과 먹다 만 과자 부스러기와 배변 패드와 털... 작은 인간 둘이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그 뒤치다꺼리가 20년 가까이 내게 부여된 임무였다. 늘 남편과 아이들과 심지어 개의 뒤꽁무니를 좇아다니며 남들이 어지른 것을 치우며 살았다.


아이가 생긴 뒤, 오롯이 내게 속한 것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모든 시간은 아이의 등원과 하원 시간에 맞춰 있었고, 모든 수입은 아이 양육과 교육에 맞춰 있었다. 아이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고, 쓰다 버린 이어폰을 썼다.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갈 때에도 내 가방에 내 물건은 없었다. 여분의 아이들 옷과 신발과 기저귀와 물티슈와 간식만으로도 늘 짐은 한가득이었으니까. 독서모임도 연말모임도 제일 먼저인 적이 없었다. 친구와의 약속은 아이들과 남편의 스케줄이 잡힌 뒤 남은 자투리 시간 안에서 조율되었다. 애써 맞춘 스케줄도 그들의 변동 사항에 따라 다시 어그러졌다. 결혼 후 우리는 한 번도 일 순위인 적이 없었다. 청소를 하고 아르바이트비를 받아도 강남 사모님처럼 우리는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없다. 그게 결혼하고 아이를 핑계로 집안에 들어앉은 후 경단녀가 된 내 주변 여자들의 평균치 삶이다.


히라야마의 나무 선반은 나에게만 속한 어떤 질서 정연한 세계를 의미했다. 내가 해놓은 그대로 나를 기다리는 정돈된 물건의 상태. 나중에 나만의 공간 하나를 갖게 된다면, 제일 먼저 현관 입구에 별처럼 매달아 놓으리라. 그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리라. 누군가에 밀려 늘 뒷전이었던, 오롯이 나에게만 속한 물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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