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의 경계를 허무는 지브리스타일 A.I 열풍
얼마 전 챗지피티가 제공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변환 서비스가 이웃들의 프사를 온통 추억의 애니메이션으로 뒤바꿔놓았다. 실제보다 젊고, 티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에, 미끈한 몸매로 변신한 지인들은 어딘지 그 사람을 닮은 듯하면서도 서로 엇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개성은 좀 모자라지만, 업그레이드된 것만은 확실한! 작년부터 각종 언론에서 A.I의 약진을 예보하고 있었지만 딱히 대중과 만나지는 접점은 없었던 터. 하지만 갤러리에서 사진 한 장만 불러오면 단 한 번의 클릭 만으로 변신하는 이 깜찍한 마법에 모두 기꺼이 무장해제 되었다.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즈음 내가 구독하고 있던 한 유튜버의 콘텐츠 영상. 그녀는 젊은 시절 음주 운전자가 몰던 차량과 부딪쳐 큰 화상을 입은 뒤 그 재활 과정을 공개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화제의 인물이다. 그날 초대손님은 그녀처럼 어린 시절 전신 화상을 입고 지금은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여대생. 두 사람은 지브리풍 커버 이미지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수술로 이식된 피부도, 어색한 입술 윤곽도, 절단된 손가락도 없었다. A.I는 놀라운 기술로 화상을 입기 전, 그 곱고 해맑고 온전했던 모습 그대로의 그녀들을 재현해 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변별력 없는 평범한 얼굴에서 묘한 감동을 받았다.
어딜 가나 자신의 본모습 이전에 화상 환자로 각인되던 그녀들.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아서 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남몰래 기도했다고. "하나님,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몇 년 뒤 코로나가 터졌다며 함께 웃었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특별하고, 남들보다 눈에 띄기 위해 안달한 세상에서 딱 남들만큼만 평범하길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지브리스타일 A.I 열풍 이후 정작 원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AI 기술의 무분별한 운용을 두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2016년 한 다큐멘터리에서 AI로 만든 작품에 대해 "AI가 그린 결과물은 실제 작업하며 만드는 사람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 역겹고 소름이 끼친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나는 과학의 무분별한 발전이 때로 어떤 이들에게는 잠시나마 고통을 경감해 주는 용도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 혼자 조용히 고마움을 느꼈다. 유발 하라리 식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모두 A.I의 미래와 저작권 문제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쏟아놓는 중이니, 나라도 다소 낙관적 전망을 구해보는 방식으로 말이다.
몇 년 전 과학발전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특이점(기술 발전 속도가 인간 집단 두뇌를 넘어서는 지점)이나,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버리는 로봇에 대한 것이었다. 더불어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 사이보그라는 '인간 반 기계 반' 신인류에 대한 상상력도 함께 꽃을 피웠다. 그중에서 인간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는 가까운 근미래 만날 인간이자, 인간의 몸의 고유성에 대한 훼손이 주는 기이한 감각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많이 차용되던 소재. 그때도 나는 지금처럼 한 유튜버의 채널을 애정하고 있었는데, 그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 중에서도 언젠가 꼭 일어나 다시 걷고 싶다는 불굴의 의지를 꺽지 않았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마비 환자들을 위한 아이언맨 슈트 같은 것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과학 기술이 빨리 발전해서 이 청년처럼 앉아만 있던 이들이 다시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뇌에 칩을 심고 몸의 일부가 기계로 대체된다는 데에서 오는 불쾌감 보다 내 몸이 예전처럼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그 감각이 훨씬 더 절실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는 이미 안경을 신체의 보조물로 부착하고 다니며, 심장 안에 박동기를 달거나 인공 관절과 인공 와우를 심고 다니는 사이보그가 아니던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오늘날 막을 수 없는 큰 흐름이 되었다. 과학의 발전은 가치 판단의 문제와 별개로 늘 저만치 앞서 갔다. 가상현실이든 메타 버스든,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은 늘 우리에게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함께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대보다 염려를 앞세운 사람들을 '기득권적인 측면'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어느 시대나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가진 게 많은 사람들보다 변화에 더 열려 있다. 잃을 게 없으니까. 보안이나 제재에 둔감하달까. 개인 정보? 털어가라 해. 가져 갈 것도 없는데 뭐! 현실에서 가진 게 없어서 메타 세계로의 이행에도 유연하다. 우려 보다 기대를 앞세운다.
몇 년 전 메타 버스에 대한 논의가 한창 일 때, 나는 내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는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를 어쩌면 가상의 세계에서는 모두 실현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 나는 큰돈을 들여 비행기 표를 끊을 필요도, 짐을 싸고 또 짐을 도둑맞을 필요도 없었다. 엽서에서 보던 에메랄드 빛과 다른 시커먼 바닷물이 펼쳐진 해변을 보고 실망할 필요도 없었다. 가상의 현실에서는 티 하나 없이 완벽할 것이 분명하니까.
어떤 사람은 잃을 게 없어서, 다른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더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기득 한 사람들이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펼칠 때마다 우리 주위에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더 절실한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 적극적으로 어필해 보는 것도 좋겠다. 보통의 인간이 될 수만 있다면 변별력쯤 잃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우리 주위에는 있는 거다. 규제와 제재 보다 적극적 상상력이 더 필요한 이들이.
[커버 이미지]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작, '마루 및 아리에티', '마녀 배달부 키키,'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 (시계방향으로)
[유튜브] 이지선과 닮은 꼴, 화상 1등 ‘려나’가 남다르게 살아온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idMksXwsf7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