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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모든 곳에서, 언제나, 인간은 보수적이다

예수 죽인 것은 당대 수구 종교 기득권이었다

by 쏭마담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 날. 독서모임에서 만난 이웃들이 가장 먼저 꺼낸 화두는 득표율이었다.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대통령이 비리·부패·주술 의혹에 휩싸인 영부인을 비호하고자 선포한 계엄 때문에 탄핵된 지 2달 후 치러진 선거다. 하지만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국힘당 김문수 후보에 고작 8.27% 격차로 당선되었다. 보수층 1400만명이 국민을 상대로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과 한통속이나 다름없는 보수당에게 또다시 표를 던진 것이다. 그 사실에 우리는 경악했다. 거칠게 말하면 20대 대통령 선거 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 1,640 여만 명 중 고작 100만 명(약 6%)만이 21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에게 돌아섰다. 목사가 자기 마음대로 돈을 착복하고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이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눠도 기존의 자기 신념을 의심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6%도 안 되는 것이다.


모든 곳에서, 언제나, 인간은 보수적이다. - 소스타인 베블런.


모든 인간은 위험을 피하려는 진화적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다. 인류 문명도 결국 안정과 질서를 향한 인간의 오랜 노력과 결과물의 집합체가 아닌가. 어느 뇌과학 책에서 보수 성향을 편도체와 세로토닌 수치로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편도체는 우리 뇌에서 '공포, 불안, 위험'을 감지하는 곳인데, 그 책의 주장에 의하면 보수적일수록 편도체의 회백질 부피가 크다고 한다. 즉,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에 비해 불안과 위험을 훨씬 더 잘 감각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그 감각이 질서와 안전에 대한 추구로 이어질 거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로토닌 수치는 어떨까? 힌트를 드리자면 우울증 환자들은 체내에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면 불안이 높아지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는 약을 처방받아 안정성을 높인다. 그렇다. 세로토닌은 사회적 안정과 질서를 선호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때문에 세로토닌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보수 성향을 띠게 될 거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보수를 '권력과 질서'에 민감하고, 진보는 '고통과 억압'에 민감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확실히 보수는 세상이나 인간에 대해 구체적이고 분명한 질서 안에서 안전하게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합인 것 같다.


그렇게 바라보니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전히 기존의 신념을 유지한 1400만 명의 보수층이 조금 정리가 된다. 불안과 위험을 감지하는 경향이 높은 보수층은 사회 질서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변화에 취약하다. 아니 질서가 흔들리는 걸 원치 않는다. 새로운 사실을 들어와도 자기 신념을 반추하고 검토하는 대신 자신의 기존 견해에 합하는 정보만을 취사 선택한다. 보수는 궁극적으로 기득권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현재의 질서와 가치를 유지하려는 강한 경향성은 필히 사회적으로 이익과 권력을 점유하는 기득권으로 봉착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봉착한 질문은 그런 보수적 성향이 왜 기독교인에게 유독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냐는 것이다. 지금은 보수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전광훈 현상'으로 분류되는 폭력적이고 광신적인 기독교 당에 대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보수 정치권과 손잡고 공산당으로부터 코리아를 구해야 한다는 신념 하에 똘똘 뭉친 일부 교회와 단체들에게는 여전히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광장에서 이스라엘 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흔들고 있을 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교회에 다닌다고만 하면 바로 자기편이라도 되는 양 당 짓기 좋아하는 그들에게. 우리 기독교인이 믿고 따르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냐고. 기독교가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어 전 세계 인구의 30%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는 동안,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스라엘은 여전히 기독교 인구가 2%도 안 되는 이교도 국가로 남아 있다는 걸.


예수 사후 300여 년 가까이 박해를 받던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놀라운 속도로 전파된 복음은 중세를 거치며 유럽 대부분의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었다. 태어나서 영세를 받을 때부터 고해성사와 임종 시 종부 성사까지 그들은 기독교인으로 태어나 기독교인으로 죽었다. 하지만 정작 기독교의 주인공인 예수를 배출한 유대 민족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지 않았다.


예수 사후, A.D 70년에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한 후 전 세계로 흩어졌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박해를 피해 결집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난민을 몰아내고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전까지 그들은 유럽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기반이 없었던 그들은 돈이 돈을 낳는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았고, 그것이 종종 토착민들의 분노를 자아냇다. 하지만 중세 때부터 유럽인들이 그들을 대놓고 마녀 몰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유대인들이 바로 교회의 머리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민족이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예루살렘 중심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황금 사원은 이슬람 사원이다. 그곳은 오래도록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를 위한 성지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를 세운 땅 '팔레스타인' 또한 20세기 초만 해도 대부분 아랍계 무슬림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기존 팔레스타인 토착민들을 무력으로 한데 쓸어 모아 거대한 방벽 안에 가두고 그들의 피눈물 위에 세운 국가가 이스라엘이다. 그나마 방벽 안에 간신히 살아가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 최근까지 폭격을 멈추지 않았던 나라, 이스라엘. 예수를 죽인 민족이었다는 오랜 오명과 국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겪었던 유대인들의 고초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인들의 나라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옹호할 아무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너무 늦게 안 사실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이 오래된 오해라면 정작 예수를 죽인 장본인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먹은 배신의 아이콘, 가롯 유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주일마다 예수를 박해한 주인공으로 고백하는 본디오 빌라도?


아니다. 2천 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들은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정교일치 사회였던 유대인들의 생활 전반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던. 그들은 예수가 회당에서 새롭게 풀어내는 성경 해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의 혁신적 사상이 민중을 일깨워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게 할까 봐. 예수가 진짜인 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의 아들을 외면 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예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 잘못 가고 있는 기존의 전통과 제도에 조금의 균열을 내고 올바른 방향으로 돌이키려던 당대 굳이 말하면 진보적 성향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사회 질서를 흔들면 그동안 자신들이 누리던 특혜를 잃어버리게 될 까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를 죽인 것은 당대 기득권이었다. 진리가 드러나면 잃을 것이 많았던, 당대 수구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참고] 나무위키 :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16,394,815표(48.56%), 이재명 후보는 16,147,738표(47.83%)를 얻어 윤석열 후보가 247,077표(0.73% p) 차이로 당선되었다.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17,287,513표(49.42%), 김문수 후보는 14,395,639표(41.15%)를 얻어 2,891,874표(8.27% p) 차이로 당선되었다.

[참고] 소스타인 베블런 : 자신의 책 <유한계급론>에서 인간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과시적 소비'를 하는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말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해 꼬집은 이 말에도 나는 십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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