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자동차 시승 소설

(단편소설) 

(읽기전 참고) 2016년도 미국 기아 현지법인에서 기아 카덴자를 시승해달라고 소식을 받고 생애  처음으로 시승을 해보았다. 기아 카덴자는 한국에서 K7으로 팔리는 기아차이다.  아래는 시승기를 소설 형식으로 당시 써본 소설이다.  


[카덴자가 무슨 뜻인 줄 알아?]

잔뜩 찌푸린 하늘을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그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생긴 것과 나이에 전혀 걸맞지 않게 클래식 음악을 즐긴다고 차만 타면 바이올린 협주곡을 틀어대는 그에게 지금 하늘만큼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퉁명스럽고도 짧게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나의 직업은 산부인과 레지던트. 인턴보다 나을 줄 알았던 단계에 와서 깨닫는 것이지만 의사가 된다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말라가는 직업임을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에게는 앞으로 편안한 오아시스 따윈 없고 끝없는 사막만이 끝없이 펼쳐진 힘든 미래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요즘 모든 사람에 대한 나의 대답들은 점점 한없이 퉁명스러워지고  쌀쌀맞아지고 있었다.  나의 짧은 대답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악에서 연주자가 기량을 즉흥적으로 뽐내는 화려한 악상의 선율을 카덴자라고 부르지.]

유난히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그의 직업은 장의사다. 음산할 것 같은 작업을 하는 사람 치고는 매일 유쾌하고 깔끔한 옷을 입는다. 오늘도 다크 그레이 계통의 쓰리 버튼 슈트를 멋지게 입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오늘까지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옆집 이웃 친구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장례업을 이어받아 자신도 장의사로 살아가겠다고 일치감치 마음을 잡은 친구였다. 요즘은 장례업이 터부시 되진 않는다 다 과거의 이야기이다. 외로운 세상에 모르는 타인과 끝까지 동행해 주는 건 그들밖에 없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와 장의사라.....

나와 그의 직업이 참 극과 극이란 생각에 작은 미소가 내 입에 걸렸다. 그가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차 이름도 카덴자야.]

의대 공부 때문에 집을 떠나 학교 근처 하숙을 한다고 오랫동안 집에서 떨어져 있다가 레지던트를 시작하는 대학병원에서 우연하게 그와 마주쳤다. 내가 자동차 운전을 겁낸다는 사실을 어디서 들었는지 다짜고짜 나에게 카풀을 제안했고, 난 그의 제안을 억지로 허락했다. 마음속으로는 몇 번 카풀하다가 거절해야지라는 시기를 언제쯤 할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더 이상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의 대답에 그는 연신 싱글벙글거렸고..

카풀을 하기로 한 첫날, 출근시간에 맞춰 집을 나오니 그는 벌써 이른  아침부터 차를 대기시켜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의 첫인상이라고 그러면 웃길지 모르겠지만 카덴자라는 차의 첫인상은 큰 눈에 입을 꾸욱 다문 야무진 진돗개 같은 인상이 풍겼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할 것만 같은 철견이라고 할까.   

차의 뒷부분은 불꽃이 터져 나와 하늘로 날아올라 갈 것만 같은 전투기 같았다. 그래 정말 어디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최근에 구입한  새 차야]

나의 눈치를 살피는지 그는 엉거주춤한 어색한 자세로 차문을 열어주었다.  

나를 조수석에 앉히고 그는 운전석에 앉았다.

차문을 열면서 문에 달린 사이드 미러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리안에 차모양의 아이콘이 그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건 차가 달릴 때 끼어들기하거나 다른 차가 끼어들 때 경고음을 알려주지. 참 편리해.]

그의 설명에 사이드미러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침에 하얗게 깨끗이 면도를 한 그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인생에도 그런 경고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경고음이 전혀 없는 인생이라 나의 짧은 결혼생활도 경고 하나 없이 휙 하고 지나가 버렸다.

문득 버릇처럼 끼우게 된 왼손의 결혼반지가 눈에 거슬렸다.  

카덴자의 바퀴 윌이 묘하게도 해바라기 꽃처럼 보였다.

바다의 신의 딸이 태양의 신 아폴로를 바라보다가 변해버렸다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해바라기. 세상에는 과연 영원한 사랑이 존재할까?

카덴자 차 안의 여러 첨단 장치들을 바라보면서 재미있는 상상이 떠올랐다.   

정부에서 태어날 때부터 DNA 조사와 여러 데이터를 첨단 컴퓨터로 종합해서 적합한 배우자를 법으로 서로 매칭시켜주면 어떨까?

그러면 사랑을 찾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고  

결혼한 상대가 나에게 정부가 보증하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어 결혼생활도 오래가지 않을까?    

내가 이런 상상을 늘어놓으면 분명 전남편은 이렇게 말했으리라...

'어리석기는... 컴퓨터에 바이러스라도 끼어서 매칭이 잘못되면 어떻게 할래? 킥킥 상상만 해도 우습다. 너한테 할아버지나 10살 꼬마가 매칭되면,,'  

어느 틈엔가 차의 시동을 언제 건지 모를 정도로 고요하게 엔진이 돌아가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차의 이름을 잘 지은 것 같아. 카덴자..... 고요한 가운데서 사랑을 화려하게 고백하는 것처럼 이 차를 운전하면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만들어....]

[왜 사랑고백이라도 하시게?]   

나의 시니컬한 물음에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인피니티사와 컬래버레이션 한 스피커에는 은은한 세미클래식이 흐르고 부드러운 가죽 냄새가 촉촉하게 풍겼다. 마음을 부자처럼 만드는 고급 가죽 냄새였다.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오감이 발달해야 한다는 점은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수술이 대부분 산모한테서 아기를 받는 것인 산부인과 의사도 생명 탄생의 세미하고도 정교한 순간에는 나의 모든 오감을 활짝 열어놓고 바짝 긴장해야만 무사히 아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의대 캠퍼스 커플이었던 전 남편은 매번 나의 모든 감각들이 무딘 편이라고 놀렸었다.

나는 자동차를 관능적으로 비유하게 만드는 이유는 비싼 스포츠카 사진들만 모아놓은 달력에 어김없이 서 있는 아슬아슬한 비키니의 금발 여인들로 세뇌되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자동차의 [백미러]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상대편 몰래 힐끔  들여다볼 수 있는 인간 내면 깊숙한 욕망을 이 백미러가 풀어주는  것이다. 순간, 나도 열심히 자동차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그의 옆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그런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밀폐된 차의 공간이 엄마의 자궁 안처럼 아늑하게 고요해졌다.

우드 패널에 달린 LCD 화면을 이리저리 누르면서 차에 관한 그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는  내비게이션뿐만 아니라 말로 명령할 수 있는 음성명령 지원 시스템도 달려있고…. 뭐 이리저리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

왠지 어설픈 차에 대한 그의 설명을 차마 중간에 끊을 수는 없었다. 출근을 앞둔 아침시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느긋해졌고 즐기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패널에 달린 고전 적미가 느껴지는  아날로그시계가 9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예전에 본 [백 투 더 퓨쳐] 영화처럼 저 시계를 돌리면 이 카덴자가 과거나 미래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으로 변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뚱맞은  상상이 마음에  스쳐 지나갔다.  

잘 달리는 영리한 명마의 튼튼한 고삐와 같이 생긴 쉬프트....

자동차가 앞으로 더더욱 테크놀로지가 발달해서 뇌파로도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카덴자의 이 쉬프트만은 운전석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시트와 운전대에 장착된 통풍 버튼과 큼지막한 사이드 브레이크 버튼....

편리한 수납공간과 USB 장착이 가능한 플러그 장치...  

앞뒤 차 간격을 맞춰준다는 크루즈 컨트롤....    

첨단 차선 변경 지원 및 후측방 경보시스템....    

이 모든 첨단 장치들은 카덴자를 시간여행이 가능한 타임머신 같은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을 언제 어디로 갈까?    

힘들었던 학창 시절은 지나  떠나가고 싶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자유롭게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의 그 시간이 될 것이다.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놀던 추억의 골목이 이 카덴자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고 싶은 곳이다.  

사람들은 왜 자꾸 어린 시절로 다들 가고 싶어 할까? 아이들에게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이유가 이미 몸속에 각성효과를 가지고 있는 카페인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카페인보다 훨씬 강렬한 각성의 시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인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처, 미움, 헤어짐이 넘쳐나는 현실은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엎질러진 물이기에 다시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하려는 모든 이에게는 각성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삶을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끝내는 중독 시켜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가는 자살을 택하지만 나에게 각성-깨우침이란 바로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가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자유는 마치 인간의 감정을 최 극대화시켜 자유롭게 표현해 주는 카덴자 형식의 연주처럼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내가 바라보는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고요한 차속에서 이런 울림이 마치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처럼 마음을 울렸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다시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거야.  

[차를 세워줄래?]

차를 세워달라는 나의 요구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길가에 카덴자를 주차시켰다.    

세워진 차속에서 나의 그의 침묵이 흘렀다.

바다같이 깊은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흘렀다.

산부인과 의사가 될 내가 장의사인 그와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 사랑은 보통 평범한 사랑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탄생과 죽음 모두를 아우르는 큰 교향곡 같은 사랑이 될 것 같은 각성이 내 마음에 울려 퍼졌다.

그 숭고한 사랑의 서막은

나의 화려한 고백으로 시작될 것이다

카덴자처럼…

나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카풀 계속해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