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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약사 Mar 26. 2021

같이 먹어도 되나요?

약물, 영양제 상호작용과 약사의 역할에 대하여

DUR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Drug Utilization Review라는 제도인데요. 환자에게 올바른 약물 사용과, 중복 투여, 부작용 등을 예방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도 10~20년 전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 같은 환자가 병원을 여러 군데 들르게 되면 똑같은 약을 처방받는 경우도 많았고요. 일부 약은 같이 먹게 되었을 때 부작용이 생기는 약들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도 허다하였습니다.


그래서 약물 상호작용에 대해 식약처에서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면서 시작한 사업 중 하나가 바로 DUR 시스템입니다. 환자분께서 병원에서 처방을 받을 경우 같은 성분의 약을 드시게 되면 한번 알람이 뜨게 되어있고요. 약국에서 약을 조제할 경우 한 번 더 알람이 뜨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아직 이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더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약과 오늘 처방받은 약이 같이 먹으면 안 되는 게 있을 수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변하면서 약국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데요. 며칠 전에 약국에 오셨던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약국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옵니다. 저희 약국에 이따금씩 방문해 주시는 B 할머니시네요. 7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표정으로 약국에 와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이비인후과에서 어지럼증 약을 받아오셨네요. 어지럼증 약에는 보통 혈액순환제, 어지럼증 완화제, 위장약이 함께 처방이 됩니다.


"오늘은 어지럼증 약을 받아 오셨네요 약은 3일 치..."


설명을 드리려는데 할머니께서 중간에 끼어듭니다.


"근데 내가 관절약을 먹는데 같이 먹어도 되는가?"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약, 영양제를 혼용해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약을 드시는지, 영양제를 드시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지요.


"관절약이라고 하셨는데,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서 드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구매해서 드시는 건가요?"


"아들이 나 관절 안 좋다고 사주더라고, 초록 뭐라고 하던데?"


정확하진 않지만 관절 + 초록~을 조합해 보면 초록입 홍합 영양제를 드시고 계신다고 유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방받으신 약과 상호작용을 고려하니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네 어머님, 정확한 건 제가 어떤 걸 드시는지 봐야 알겠지만, 초록입 홍합이라는 관절 영양제를 드시는 거 같네요. 그 제품은 이 약과 알려져 있는 상호작용은 없습니다. 같이 드셔도 무방할 것으로 보이는데, 혹시나 이상이 생기시면 약 드실 동안만이라도 영양제를 드시지 마세요"


그리고 다시 복약을 이어 나가려고 하는데


"그거랑, 뇌 영양제도 먹는데?"


대화가 이렇게 진행되면 침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져서 환자분을 다그치면 환자분도 기분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죠.


"아, 뇌 영양제도 드시는구나? 그것도 그냥 구매해서 드시는 제품인가요?"


"아니 병원에서 치매 예방약이라고 처방해 주던데? 말랑말랑한 거"


정확하진 않지만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약으로 추측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드시는 약과 상호작용을 고려한 다음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 정도 말이 중간에 끊기고 나니 확실히 확인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님 그러면 지금 말씀하신 게 관절영양제 드시고 계시고요, 뇌 영양제 처방받아 드시는 게 있으시네요. 다른 거 드시는 약 더 없으세요?"


"어데, 많지~ 혈압약, 당뇨약, 콜레스테롤 약 등등 다 먹고 있다이가"


이쯤 되면 이제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됩니다. 혈압약, 당뇨약, 콜레스테롤 약 각각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있는데 모든 것을 다 분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최소한 상품명이라도 알려주시면 확인해 볼 수 있지만 상품명을 외우고 다니시는 분은 굉장히 드뭅니다.


DUR 시스템의 한계가 바로 이런 지점입니다. 비록 전산상으로 체크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일성분이나 많이 알려진 상호작용이 없으면 그 어떤 안내 메시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최소한 환자의 동의가 있으면 드시고 계신 약을 모두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과 영양제의 상호작용은 더 문제입니다. 상호작용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을뿐더러, 양쪽 모두에 걸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약사밖에 없지만, 약국이라는 업무의 한계로 인해 이 마저도 제대로 체크해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드시고 계신 약이 너무 많으시네요. 정확하게 알려드리기 위해서는 다음에 오실 때 드시고 계신 약을 가지고 오시면 제가 한번 확실하게 말씀드릴 게요."


"으응? 그냥 한 30분 시간 두고 먹으면 안 되는가?"


"흡수될 때 상호작용이 있는 약을 제외하고는 복용시간을 띄우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한 것은 제가 한번 체크해 봐야 말씀드릴 수 있어요."


"잉? 그래? 그럼 다음에 한번 들를게"




약물과 약물의 상호작용은 쉽지 않습니다. 많이 알려져 있는 상호작용은 학교 다닐 때 배우게 되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상호작용은 지금도 연구가 되고 있고, 계속해서 공부를 해서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저 역시 학교 다닐 때 보다 졸업하고 나서 한 공부의 양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공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요(사실상 끝날 수도 없습니다)


하물며 약물 - 영양제의 상호작용은 거의 미지의 영역인 부분이 많습니다. 약과 영양소의 부분에 걸쳐있는 가장 전문가는 약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약사들에게 조차 마땅히 참조할 데이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래서 만성질환으로 약을 복용하고 계신 분들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영양제를 무조건 적으로 드시기보다, 드시는 약과의 상호작용을 체크하여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소를 섭취하시는 게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드시고 계신 약, 영양제 같이 먹어도 되는지 궁금하세요? 가까운 약국에 문의하시면 친절하게 상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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