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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약사 Feb 08. 2021

소독약 에탄올에 대하여

지금 와서 말하지만 김상병 미안했어요

코로나 19가 1년 넘게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소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에탄올을 이용하여 생활용품을 소독하는 것은 이제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약국에도 에탄올을 구매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에탄올 한통 주세요."


"네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시나요?"


"뭐, 물건도 소독하고, 상처도 소독하고 하려고요."


하지만 그중에는 상처 소독을 목적으로 에탄올을 구매하려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처 소독에는 에탄올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분들이 단순하게 '소독=에탄올'이라는 것을 공식처럼 기억하고 계신 거 같습니다.


에탄올은 세균,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변형시켜서 소독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구 소독이나, 마른 피부를 빠르고 간편하게 소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있는 부위를 에탄올로 소독하게 되면 소독은 될 수 있지만, 일단 엄청 아픕니다. 상처가 난 조직의 세포들을 에탄올로 지지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처 난 조직의 변성이 일어나면서 상처의 치유가 늦어지거나, 흉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실수로 상처 소독에 에탄올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요. 군대에 있을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2년간 근무하며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 뒤에 입대를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입대를 하여 훨씬 어린 선임들을 상대하느라 항상 긴장하며 지냈었죠.


제가 신병일 당시 옆 생활관의 김상병이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심한 상처라면 의무대로 갔겠지만, 까지고 피가 나는 정도여서 중대 행정반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게 되었죠. 당시 저희 중대에는 의료계열 전공자나 종사자 출신은 저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제가 응급처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대 구급함을 열어봤더니 소독약이라곤 에탄올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에탄올을 거즈에 부어서 상처부위를 씻어(?) 내주었죠


"크아 아악. 이거 원래 이렇게 아픈 거야?"


"조금만 참으십시오 김상병님. 아프다는 건 소독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 아프긴 하지만 약사가 치료해 줘서 그런지 소독이 잘 되는 거 같네. 아야야야."


"조금만 참으십시오. 금방 끝내겠습니다."


관우의 뼈를 깎는 화타의 심정이 이러했을까요. 저는 묵묵히 김상병의 무릎에 에탄올을 들이붓고 있었죠. 덕분에 소독은 잘 되었지만 상처부위에는 커다란 딱지가 생겼고, 그때 생긴 흉터는 김상병이 전역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처가 생기면 일단 이물질의 혼입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드레싱을 해 주셔야 합니다. 드레싱이라고 말하면 어렵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냥 쉽게 흐르는 수돗물로 상처부위를 씻어내는 것입니다. 식염수로 씻어내시는 게 제일 좋습니다만 상처를 대비해서 매번 식염수를 준비해 놓기도 어렵고, 연구자료에 따르면 수돗물과 식염수의 드레싱 효과는 거의 동등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어떤 것을 사용하던지 빠르게 상처부위를 씻어내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다음 상처의 크기나 상태에 따라 소독약을 쓰실 수 있는데요. 보통은 벤제토늄이 들어가 있는 복합 소독약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포비돈을 사용하셔도 소독효과가 뛰어나긴 하지만, 장기간 사용 시 착색이 될 우려가 있고요. 바른 다음 마르게 되면 소독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복합 소독약은 보통 나파졸린 이라는 지혈제와 클로르페니라민이라는 항히스타민제가 들어가 초기 통증, 가려움증을 함께 막아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더 권해드리는 편입니다.


그다음 상처의 상태에 따라 감염증이 생길 우려가 있으면 항생제 연고를 쓰기도 하고요, 아닌 경우에는 재생 연고만 바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새는 하이드로콜로이드 성분의 습윤밴드를 이용하여 흉터가 생기지 않게 상처를 치료하는 게 더욱 일반적인 처치 방법입니다.




소독약으로 에탄올 사러 약국에 가시는 분들. 약사들이 어디에 쓰실 건지 물어본다고 귀찮게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약사들은 여러분들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제품을 권해드리기 위해서, 혹시나 잘 못 사용하셔서 김상병과 같은 통증을 겪으실까 봐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제가 예전에 소독해준 김상병님, 그때는 미안했습니다. 흉터는 좀 연해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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