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벌의 기준이 없는데 뭔 합리냐고
개인의 생각이다. 이것은 경전도 질서도 권유도 명령도 회유도 아닌 찌끄려놓음이다. 가끔 우리 사회는 합리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단다. 사람들 마음속의 합리도 허물어지고 있지. 뭐 대충 합리의 주된 요소는 이성이라는 건데. 개개인의 이성을 판단하는 것은 또 개인의 주관인 점이 우습단다. 진상이 왜 있을거 같니? 진상 본인은 그게 이성적이라 사고하고 행동으로 옮긴거지. 별 이유는 없는 거란다. 진상 본인은 합리적이라 여긴거지.
그러면 사회 구성원 각각의 '이성'범위가 어느 정도는 교집합이 있어야 사회도 적당히 아름답게 굴러가겠거니 생각이 든단다. '신호위반을 하지 않는 교통수단, 보행자' 같은 법령의 질서를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란다. 법제화되지 않은 이성을 얼마만큼 발휘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반사항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얼마나 조성되어 있는지가 아름다움의 척도가 될 수는 있겠구나.
사회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 이성의 기준이 다르다는 건, 일상의 혼돈이 일어나는 것이고. 그 혼돈을 막거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법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단다. 상수원에 똥을 싸면 벌을 받는다는 법은 왜 생겨난 걸까? 그렇다면 당연한 것들이 법제화되어있지 않은 나라가 어쩌면 더 살기 좋은 나라일까? 사회 구성원 개개인 이성의 범위를 조정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행동의 제약, 장려를 위해 상과 벌이라는 수단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상벌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이성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진단다. 사회는 고도화되고 교육의 수준이 상승하면서, 지금의 시대는 이성의 기준도 바뀌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지.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과 벌의 기준도 변화를 겪게 되겠지. 사실은 상을 받아야 하는 일인데, 본인은 그것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아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어떨까. 사실은 그게 벌인데, 본인은 그깟 벌 쯤으로 생각하는 순간은 어떨까. 이런 개인이 많아지는 사회의 순간은 또 어떨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가의 미지불은 곧 벌로 이어진단다. 그게 뭐 대가지. 어느 선행이나 훈훈한 뉴스에 달린 댓글들 중에서는 진급시켜라, 돈 줘라, 역사책에 올려라, 일해라 절해라 등등의 내용이 자주 보인단다. 좋게 좋게 표현하면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은 상에 목마르고, 나쁘게 표현하면 잘한 일인데 뭐 떨어지는거 없냐는 말이지. 사실 국가에서 무의미한(?) 상을 주니까, 있는 애들(?)이 주면 좀 좋냐는 식이기도 하고.
사실 상이라는 건 금전적이 아니라, 어느 작은 명예로 주어져도 괜찮은 것인데 그 명예마저 많이 챙겨주지 못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단다. 그 명예의 대가를 알아보지 않는 사회가 또 대가를 치르는 것이려나. 사실 벌은 사회적 책임인데,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결국 용서가 없는 사회라 그런 거고..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보자.
사회 구성원들은 점점 약삭빨라지고 있는데, 아직도 개인의 양심에 맡긴 사회적 부분이 군데군데 보일 때. 나는 자유의 균열을 상상하곤 한단다. 결국 모든 행동이 법으로 제한된 그런 허울뿐인 자유 속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을 말이다. 늦은 밤 굉음을 내며 오토바이로 골목길을 질주하는 사람이 벌 받는 사회가 그렇겠지. 단속을 하려면 기계에 값을 부여하고, 그 값엔 사람이 연관되어 있겠지. 골목길엔 장비가 설치되겠지. 장비는 정보를 수집하고, 취합하고, 저장되겠지.
굉음에 잠이 깨서 분노에 부들거리며 쓰는 것은 절대 아니란다.. 아무튼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