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on Roa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Apr 10. 2020

탕갈루마 리조트로 가는 길

 

 탕갈루마 리조트 면접날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 그날에 대한 기억들을 쭉 떠올리다 보니 지금은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상상만 해왔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게 믿기지가 않았던, 면접 결과와 상관없이 마냥 행복하고 설레기만 하던 그런 날이었다.

 탕갈루마 리조트로 가는 배 시간이 10시라서 9시 반까지 선착장으로 가면 됐지만 한 시간이나 빨리 도착하고 말았다. 티켓 창구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거기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어떤 나이 좀 있어 보이는 남성이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을 지나쳐 대합실 같은 곳으로 가서 자판기 옆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없이 텅 빈 그곳에서 나는 면접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적어 놓은 종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실 면접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예상조차 할 수 없다지만 조금이라도 더 준비된 자세가 낫겠지.

 너무 집중해서 들여다보느라 아까 지나쳤던 남자가 어느새 내 앞에 서 있는 것도 뒤늦게야 알아챘다. 다짜고짜 자기 손안에 조심스레 들고 있던 새를 나에게 들이미는 바람에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소리부터 지를 뻔했다. 앵무새과의 Lorikeet이라던 그 새는 살면서 처음 보는 새였지만 머리부터 몸통까지 다다른 형형색색을 띄는 신비로움 때문에 한눈에 사로잡혔다. 팀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그 남자는, 선착장으로 오던 길에 새가 어딘가 다치기라도 한 건지 날지도 못하고 까마귀에게 공격받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상처 치료를 위해 섬으로 데려갈 거라고 했다, 섬에 새에 대해 잘 아는 직원이 있다며. 게스트인 줄 알았더니 리조트에서 일하는 직원인가 보다.

 팀은 내 복장이 중국인 게스트 담당 직원들 유니폼이랑 똑같아서 내가 새로 온 중국인 직원인 줄 알았단다. 내가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라고 하자 내가 묻기도 전에 부서와 직원들에 대해 얘기해줘서 벌써부터 긴장감이 누그러들었다. 또, 팀이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나중에 내가 섬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만나는 모든 직원들마다 ‘오늘 면접 보러 온 민지’라며 나를 소개해준 덕에 이미 리조트 직원들 몇 명과도 안면이 트이게 되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던 팀은 내게 딸기 한팩을 건네주고 곧바로 혼자 여기저기 다른 직원들이랑 얘기 나누러 다니느라 바쁜 와중에 배를 타기 직전에도 내게 캐롤라인이라는 직원을 소개해줘서 내가 배에서 그녀와 같이 앉아 가도록  도와주었다. 친화력 넘치고 친절한 팀과 다른 직원들 덕분에 면접을 보러 간다기보다는 즐겁고 특별한 경험을 하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9시쯤 되자 슬슬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배를 탈 때는 배 하나만으로는 자리가 부족해서 나와 직원들은 첫 번째 큰 배가 아니라 두 번째 작은 배에 타야 할 정도로 붐볐다. 원래는 배값이 왕복 80달러지만 면접을 보러 가는 사람은 티켓 창구에서 본인 이름을 말하고 무료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직원들은 대부분 섬에서 거주하므로 당연히 무료가 아닐까 싶어 물어보니 편도는 14달러, 왕복으로는 28달러라고 해서 놀랐다. 원래 가격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혹시 내가 여기 취업한다 하더라도 교통비가 아까워서 육지로 자주 나갈지 의문이 들었다.

 배에 올라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에 내 앞쪽에 서 있던 한국인 커플을 보자마자 엄청 놀랐다. 4일 전 말레이시아에서 골드코스트 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에서 내 뒤에 서있던 커플인 게 생생히 기억나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 골드코스트도 아닌 여기서 우연히 마주친다는 게 신기할 수밖에.

 모튼 섬은 브리즈번에서 배로 75분밖에 안 걸려 가깝기도 하고 돌고래나 고래와 같은 신기한 야생동물, 그리고 예쁜 바다나 사막과 같은 다양하고 독특한 자연환경으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호주인뿐만이 아니라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로도 연일 붐비는 곳. 배 안에서 창밖으로 바다를 구경하거나 캐롤라인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팀이 부르더니 나를 조타실로 데려가 주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드디어 모튼 섬이 보였다. 항해사 제이콥과 팀이 동시에 섬과 탕갈루마 리조트에 대해서 설명해준 덕분에 섬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이미 모든 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조타실 문을 열고 나가 바닷바람에 쉴 새 없이 흩날리는 머리를 넘기며 배 앞머리에 나가 서 있는 동안 모튼 섬과 탕갈루마 리조트가 점점 더 시야에 가까워진다. 하늘색 바다와 초록색 식물들과 하얀색 모래들이 몽글몽글 뽀얀 구름들과 더해져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던 곳. 오전 11시 15분, 드디어 지도와 사진으로만 보았던 모튼 섬에 있는 탕갈루마 리조트에 도착.

매거진의 이전글 선착장으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