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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Apr 08. 2020

선착장으로 가는 길

11월 15일 면접 당일날 새벽 5시 반에 귀신같이 눈이 떠졌다. 3시간밖에 못 잤는데도 긴장감 때문인지 피곤함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면접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챙겨온 옷을 입고 짐을 호스텔 보관소에 맡기고 나서는 7시에 호스텔을 나섰다. 다시 짐 가지러 돌아와야 하는 게 귀찮지만 그렇다고 이 세미 정장 차림으로 짐가방을 들고 가기도 애매하니 어쩔 수 없다.

 스산하기까지 했던 전날 밤과 달리 브리즈번의 아침은 바쁘게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벼 사뭇 달라 보인다. 시계탑이 있던 광장 앞도 무슨 행사가 있는 건지 사람들이 꽤 모여있었지만 혹시라도 늦을까 봐 발걸음을 멈추지도 못했다.
 구글맵을 이용해 선착장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니 내가 있는 브리즈번 시내 중심에서 최소 한 시간이 걸린다고 나온다. 브리즈번 시내에서는 한국처럼 버스들이 지정된 같은 정류장에 정차하는 게 아니라 버스마다 정류장 위치가 다 다르다는 것을, 이미 한번 지났던 거리를 한 바퀴 더 돌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곧 도착하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구두를 신고 달렸다.

 다행히 정류장에 도착하고 곧이어 버스가 왔다. 내가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솔자 2명과 형광조끼를 입은 대여섯 명의 지적장애인들이 탔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내내 그들끼리 나누는 정겨운 대화 덕분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진다.
 목적지까지 무려 34개의 정류장이 남았다. 한국과 달리 정류장에 대한 안내 방송 같은 게 없어서 당황스럽다. 행여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버릴까 노심초사. 버스를 탄지 15분쯤 지났을 때부터는 시내를 벗어나 외곽 쪽으로 중소규모의 공장 단지 같은 곳들이 나왔고 꽉 찼던 버스는 어느새 텅 비어 마지막으로 나와 어떤 남성 한분만 같이 내렸다.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정류장 주변의 황량한 풍경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다급한 목소리로 같이 내렸던 분께 길을 여쭸다. 탕갈루마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그분이 너무 놀라시는 바람에 뭐 잘못됐나 싶어 순간 가슴이 철렁. 거기까지 걸어가기는 너무 머니까 다시 시내로 돌아가서 선착장으로 바로 가는 투어버스를 타라고 하신다. 대체 얼마나 먼 거리길래 저렇게까지 놀라신 걸까. 얼마나 걸리는지 여쭤보니 30분이라고 하셨다. 난 또.

 문제는 지도로 내 위치를 확인하면서 걷고 있어도 주변은 온통 인적이 드문 산업 단지 같은 곳이고 대형 화물차들만 지나다녀서 가는 내내 이 길이 맞는 건지 수없이 고민했다. 아무리 지금 시간이 배 시간보다 이르다지만 아무리 주변을 돌아봐도 걷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공항이 근처에 있는 건지 착륙하는 비행기들이 엄청 가깝게 보였는데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그 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지도에서 보이는 목적지 부근인 원형도로에 다다랐어도 웬 빽빽이 주차된 차들만 먼저 눈에 띄길래 내가 잘못 온건가 싶어 식은땀이 나려는 찰나에 탕갈루마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너무 기뻐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소리 지를 뻔했다. 때마침 비행기가 한번 더 지나가는데 무섭게 들렸던 굉음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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