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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May 09. 2020

행복을 찾아 온 호주 워킹홀리데이

나의 시작, 나의 도전

 

 26살 5월의 어느 날, 문득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게 좋겠다고 마음이 내게 말했다. 대학 동기들은 진작에 거의 다 임용고사 패스 후 어엿한 교사로 자리 잡아 가는데 대학교 졸업 후에 나 홀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건 내 의지에 따라서 내린 결정이 맞지만 직장을 다니던 중간에 갑자기 워킹홀리데이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사실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음의 소리를 길을 따라나선 게 후회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믿고 싶었다.
 이런 뜬금없는 결심이 들었던 무렵에는 계속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이 겹쳐 일어나고 있었는데,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하던 내 안의 긍정적인 에너지마저도 한계에 부딪히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늘 현재의 행복을 순간순간 온전히 느낄 수 있던 내가 언제부턴가 과거의 행복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렇게 현실에 맞춰 살면서 점점 무뎌져 가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그리고 예전에 내가 느끼던 그런 류의 행복감은 기억 속 추억으로만 간직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나 두려움과 함께 너무 늦기 전에 진정한 행복과 삶의 가치를 다시 느끼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또 다른 새로운 길로 이끌어 준건 아니었을까.
 수많은 나라들 중에 호주를 선택한 데에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냥 행복해지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이어지다 보니 문득 호주가 떠올랐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면서 곧바로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오랜만에 타지로 혼자 다시 나가고자 하니 두려운 마음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한해 한 해가 지날수록 잃을 것이 더 늘어나게 되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게 더 어려워질 테니 지금은 모든 걸 비우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고 바라는 대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새로운 환경에서는 또 다른 새로운 시련과 굴곡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직접 부딪혀 보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고서, 나중에 뒤늦게서야 한시라도 젊은 날 용기 내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게 아닐지라도 내 상황과 여건이 뒷받침되는 한 일단 도전해보고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다.
 
 나에겐 행복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이상 남들처럼 일단 무작정 떠나고 보는 게 아니라 최소한 내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기 위한 준비들이라도 미리 해가고 싶었다. 여행을 다닐 때는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상황에 맞춰나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지만 워킹홀리데이는 나에겐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교육을 전공한 나로서는 한국에서의 학위로 호주에서 교육과 관련된 직종의 일을 구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고 이참에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을 도전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영문이력서 작성, 해외취업 준비, 워킹홀리데이 비자 등등 모든 것들이 내게는 처음이자 시작이어서 결코 쉽지가 않았으나 어쨌든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인 끝에 스스로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한국 돈 200만 원을 호주 달러로 환전해서 호주로 온지도 벌써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호주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울룰루가 있는 ‘진짜’ 호주 아웃백에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관광산업과는 전공도 직장도 관련이 전무했던 내가 아름다운 모튼 섬에 있는 탕갈루마 리조트의 투어데스크 및 한국인 게스트 담당 직원으로 채용되어 생전 처음 해보게 된 섬 생활이 호주에서 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그 후 세컨 비자 연장을 위해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소고기 공장에서 3개월 버티기, 한국에서부터 간절히 꿈꿔왔던 해밀턴 섬의 4성급 호텔 호스트로 채용되기, 울룰루의 5성급 호텔 리셉션에 채용되기,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전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호텔 운영이 중단되면서 갑작스럽게 휴직 상태에 놓이게 된 지금까지 이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나에겐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일들이 펼쳐져 왔다.
 

 워킹홀리데이를 누가 만만하다고 했을까. 개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워킹홀리데이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해온 다른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이 끝없는 도전과 역경, 그리고 극복의 연속이었다. 최고점과 최저점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지금까지 달려온 내가, 아무리 지금은 반백수가 된 처지일지라도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악착같이 꾸준히 앞으로 나아왔다는 걸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전엔 어떤 크고 중대한 목표들만이 도전이라고 생각되었는데 호주에 온 뒤로는 하루하루 자체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고 새로운 도전이라고 느껴진다. 기쁜 하루, 평탄한 하루, 힘든 하루 그날그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에 따라 날마다 색다르고 다채롭게 흘러가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이번에도 역시 내 마음이 옳았다는 것. 행복해지고 싶어서 호주에 온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살면서 어제와는 다른 오늘, 오늘과는 다른 내일들이 수없이 많이 펼쳐지겠지만 나만의 매일매일이라는 시작과 도전들 속에서 나는 그저 과거의 추억들을 간직하고 현재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미래의 꿈을 꾸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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