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호주 울룰루에 몰고온 변화
잠깐 글쓰기에 다시 손을 놓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탕갈루마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기 이전에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대해 짤막한 글을 하나 먼저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아직도 일 년 반 전인 탕갈루마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는데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때면 이미 이곳을 떠나고도 한참 후가 될 테니. 언제가 될지 아직까지 확실하진 않지만 조만간엔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이곳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이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울룰루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호주의 Northern Territory주에 위치한 Yulara라고 불리는 작고 외딴 지역. 도시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은 울룰루와 카타주타가 있는 국립공원, Voyages라는 내가 속한 회사가 운영하는 호텔들과 캠핑장, 몇몇 투어 회사들, 슈퍼마켓, 작은 상점들 몇몇 개를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관광객들의 울룰루와 카타주타 방문이 주된 목적인 곳이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후로는 차츰씩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4월 1일부터는 작은 호텔 한 곳만 제외하고 내가 일하던 호텔을 포함한 모든 호텔 운영도 중단되어서 지금은 일했던 직원들만 원래 지내고 있던 숙소에 남아 생활하고 있다.
Voyages 회사 직원들과 여기 있는 모든 투어 회사들 직원들을 합치면 대략 천 명 가까이나 되는 직원들이 있었지만 호텔 운영이 중단된다는 공식 발표와 국경뿐만 아니라 호주 내에서도 주별로 이동이 제한된다는 발표가 있던 직후에는 절반 이상이 바로 떠났고 지금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속 떠나가고 있는 중이다. 많게는 하루에도 몇 천 명씩 세계 각지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시끌시끌하던 동네가 지금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쥐죽은 듯 조용해졌지만 어쨌든 호주 내에서도 ‘진짜 아웃백’인 이곳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지 중에 오지인 이곳에서는 3월 중순이나 돼서야 굵직굵직한 모든 일들이 2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순식간에 벌어졌다. 3월 5일부터 한국인의 호주 입국이 금지된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부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것은 나를 비롯한 여기 있는 몇몇 한국인들 뿐이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큰 동요가 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한국, 이란,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심각해지기 시작한 3월 10일 이후부터는 호텔 체크인 시에 모든 게스트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안내문 배포와 함께 추가 서류 기입을 요청했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20일 오후 9시 이후부터는 아예 모든 외국인의 호주 입국이 전면 금지되어 내가 일하던 호텔뿐만 아니라 모든 호텔의 개별 및 그룹 북킹이 대부분 취소되고 말았다. 다행히 모든 예약과 관련해서는 시드니 본사에 있는 담당 팀이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프론트 오피스에 있는 우리의 부담은 덜했지만 그래도 호텔 투숙객들의 문의와 날마다 새로 업데이트되는 충격적인 소식들 때문에 우리도 정신이 없었다.
국경이 완전히 폐쇄되기 시작한 20일로부터 딱 하루 지난 21일, 이번엔 3일 후부터 내가 있는 NT주가 봉쇄되어 다른 주에서부터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발표가 갑작스럽게 나왔고 연이어 다른 주들도 차례차례 봉쇄되어 국외가 아닌 호주 자국 내에서조차 이동에 제약이 생기게 되었다. 시드니나 브리즈번 등 다른 도시와 여기를 오가는 모든 비행기들도 4월 전으로 모두 취소되었고 무엇보다도 울룰루와 카타주타가 있는 국립 공원마저 아예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자 회사 경영진 측에서 4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 공식적으로 1개를 제외한 모든 호텔들의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22일에 곧바로 그와 관련한 공지를 개별 이메일과 담당 부서를 통해 전달받았다.
호텔은 31일까지 운영되기는 했지만 26일에 이미 마지막 투숙객이 체크아웃했기 때문에 27일에는 처음으로 게스트 0명을 기록했다. 게스트도 없으니 마지막 날인 31일에 다 같이 호텔에서 우리끼리 파티를 하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전에 호주 정부에서 4명 이상씩 모일 수 없다는 강력한 규제를 발동하는 바람에 바로 무산되고 말았다. 호텔 문을 닫는 마지막 주에는 리셉션과 스위치보드에서 매일같이 해오던 업무들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바람에 그 대신 모든 리셉션 직원들이 청소, 물품 정리, 문서 관리 등과 같은 잡무들을 해야 했고 유니폼 프리라는 호텔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다들 사복을 입고 일해서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문을 닫기 직전에 모두에게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이곳을 떠나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였다. 호텔 운영이 중단되면 직원이었던 우리들의 처지는 어떻게 되는지, 지내던 숙소에서 계속 지낼 수 있는지, 떠나야 한다면 주별로 봉쇄가 된 상황에서 어떻게 이동할 수 있는지 등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의문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고 시끌시끌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다루겠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아주 소수의 몇몇 직원들과 원주민 교육생들을 제외하고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무급 휴직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회사 측의 배려로 적어도 6월 말까지는 3개월 동안의 렌트비나 공과금이 면제된 채로 남고 싶은 사람들은 원래 지내고 있던 직원 숙소에서 지낼 수가 있게 되었다.
여러 가지의 대안들을 떠올려보았으나 일단 지금 상황에서는 섣불리 여기를 떠나는 것보다 최소한 렌트비가 면제되는 6월 말까지는 여기서 지내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고 하더라도 공장 일 외에는 풀타임이 보장되는 괜찮은 일은 전혀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 농장 일이나 도시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그 돈으로는 숙식비와 교통비만 지출하기도 버거울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6월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게 나에겐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백수나 다름없이 지내다 보니 오히려 일을 할 때보다 시간이 훅훅 더 빨리 지나가고 있다. 원래는 방 2개, 거실 2개, 공용 주방과 공용 욕실이 있는 한 집에 4명씩 사는데 나는 1월 중순부터 쭉 룸메이트가 없는 상태였고 반대편에 살던 하우스메이트 두 명도 이미 진작에 떠난 터라 반대편 집은 아예 비어있다. 집 전체를 나 혼자 쓰다시피 하는 게 요즘같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지금으로선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집에서는 주로 잠을 자거나, 글을 쓰거나, 배우고 싶었던 외국어를 독학하거나, 책을 읽거나, 요리를 도전해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집 밖을 나가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장을 보러 가거나, 친구 집에서 매일 다 같이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일출과 일몰을 보러 가거나, 밤늦게 밤하늘을 구경하거나, 아주 가끔씩 열리는 친구 집 파티에 놀러 가거나, 친구 집에 모여 다 같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밥을 먹으러 친구 집에 놀러 간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어긋나 버린 채 시간이 흘러가는 점이 가장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지구 상에서 아주 특별한 곳 중 하나인 이 곳에서 지금까지는 별다른 문제없이 건강하고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음에 하루하루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당장 내일, 일주일 뒤, 한 달 뒤에 무슨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지 앞을 전혀 가늠할 수가 없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지금까지처럼 하루하루의 일상들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보내다 보면 언젠간 또다시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