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발전과 하늘이 공존하는 울란바타르
3시간 남짓한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려고 마음 먹는 건 일상다반사. 하지만 탑승하고 나면 최신 영화를 둘러보다가 영화보기 일쑤이다. 한효주가 가장 아름답게 나온 영화라는 말에 쎄시봉을 누른다. 어느새 시간이 가고 이미 기내식도 한차례 먹었다. 하늘 아래 풍경이 몽골이다. 한쪽 경사는 검은색이고, 다른 쪽 경사는 상아색인 신기한 산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이라고 생각되는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지형도 보인다. 계속 듣던 게르는 어딨지.
정신없는 수속을 거친다. 양심적으로, 상식적으로 Foriegn 라인에 능숙하게 줄 섰다가, 현지인과 외교관 라인에 줄 서서 나보다 더 빨리 나가는 우리나라 사람, 외국인들을 보고 불만이다. 결국 다 빠진 수속심사라인으로 이동해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철저한 나라가 아닌 듯하다. 마친 뒤 짐을 찾고, 픽업기사와 동행을 만났다. 초면이라 조금 불편하지만, 앞으로 함께할 소중한 일행이자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인 걸! 까다로운 사람이 아닌 것에 감사하자.
UB라고 불리는 UlaanBaatar 시내 구경이 오늘의 목표. 나가자마자 고픈 배를 달래러 식당을 찾았다. 구석구석 들어가면 싸고 맛있는 '현지 음식'이 있다지만, 우리는 땅값 비쌀 대로변 코너에 위치한 곳에 들어간다. 메뉴를 구경하는데, 예산보다 가격이 세다. 앞으로도 이 정도라면 타격이 크겠는데? 셋이서 그림을 보고 주문한다. 덤플링 세개와 그린 샐러드, 닭다리요리와 양고기함박스테이크(egg fries with minced meat) 같다. 세 가지 메뉴 모두 몽골에 온 맛이다. 그렇기에 만족스럽다. "세상에 '맛'이 없는 것은 없다"가 (아버지의 교육을 받아 새겨진)나의 철칙이다. 첫날부터 배가 더부룩하면 안되기 때문에 절식을 한다.
UB는 휑하다. 거리마다 마트는 표시도 없이 위치한다. 발전이 이륙한 도시임이 드러나는 공간. 그렇기엔 하늘이 정말 맑아, 매연은 누가 마시는 걸까. 징기스칸 광장까지 몇 키로를 걸어간다. 누가 8월의 몽골이 가을날씨랬냐며, 땀이 줄줄 흐른다. 그땐 아무도, 사막의 밤은 그렇게까지 추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징기스칸 광장에 도착했다. 넓디넓은 광장에 현지 관광인들도, 졸업사진을 찍으러 온 단체 학생들도 많다. 답답했던 거리가 확 뚫리자 하늘도 뚫렸다. 구름이 왜 이렇게 선명해,라고 말하다가 하늘이 맑고 진해서인걸 알았다. 그 사이로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국회의사당 유리벽을 반사시킨다. 화려한 건물이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은 사먹지 말고 만들어먹기로 했다. 장을 보러 갔지만 몇 바퀴째 도는 중이다. 그러다 그냥 스파게티? 그래 스파게티! 가 됐다. 남미에서 계속 만들어먹었다는 동행을 믿고, 재료를 사지만 큰 건 없다. 토마토 소스와 면, 파프리카. 몽골 상표 맥주도 여럿 고른다. 오늘 다 마실 수 있을까?
숙소에 돌아오자 만사 귀찮아진다. 라면이나 사올걸, 벌써부터 후회나 할까. 그래도 만들어먹자고 꾸역꾸역 부엌에 간다. 파프리카를 썰면서 되뇐다. 스파게티에 파프리카 너무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어느새 그럴싸한 스파게티를 한입 집어, 파프리카와 입에 넣는다. 말도 안돼. 폭식을 조장하는 맛이다. 급할 땐 파프리카만 있어도 식감이 굿이구나, 잘못 요리하면 물러지는 양파와는 달리 아삭 그 자체다. 역시 여행 와서 공용부엌에서 음식 해먹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다! 방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맥주의 완전한 소비로 위의 남은 공간까지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