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르미 Sep 16. 2021

녹지 않는 눈이 내린다면?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고















스노볼은 정말

소녀소녀한 아이템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소녀소녀한 취향은 아니어서, 스노볼이 갖고 싶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나서 얼마 전 남편, 나, 아들과 함께 교보문고의 팬시 코너를 구경할 때였는데 "야. 우리 이거 아들 사줄까?" 하고 남편이 눈앞에서 스노볼을 흔들어댄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스노볼은 여전히 평화롭고 귀여웠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것 같은 고요하고 아늑한 작은 세상. 그래도 여전히 사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는데,




"야야. 아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하고 남편이 자꾸 부추기길래, '음.. 하나 살까??' 하다가도 다섯 살 아들이 저 스노볼을 던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아 그냥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잊고 있었는데, 일주일 전 도서관에 갔다가 또 스노볼을 만났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스노볼이 아니라 <스노볼 드라이브>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그것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본격 sf 소설이었던 것.









줄거리




<스노볼 드라이브>는 스노볼이 등장하지만, 그렇게 귀엽거나 소녀스러운 소설은 아니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한국이다.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여름에도, 겨울에도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눈은 이상하다. 피부에 닿자마자 발진을 일으키고 태우지 않으면 녹지 않는 방부제 눈인 것.





이런 암울한 배경 속에서

중학교 시절 동창인

두 소녀가 주인공이다.




한 소녀는 가난하다. 어머니를 방부제 눈 때문에 잃고 운전일을 하는 이모와 살아간다. 또 다른 소녀는 과거 적당히 부유했었다. 아버지는 유명 연구소 소장이었고 새어머니는 중학교 이사장이었다. 하지만 두 소녀는 갑자기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가난한 소녀는 이모가 실종되어 버린다. 부유했던 소녀는 새어머니가 자살을 한다. 그러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몇 년 동안 서로의 소식도 몰랐던 이 두 소녀를 만나게 해주고, 또 다른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라고 묻는 것 같은 이 소설은

특히 두 소녀의 심리 묘사가

인상적인 청춘 소설이기도 하다.



조예은 작가




모루






가난한 모루는 눈 때문에 결국

엄마를 잃는다.




녹지 않는 방부제 눈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마치 코로나처럼. 눈은 그치질 않는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계속 내린다. 이 이상한 눈은 녹지 않아  태워야만 하는데, 눈을 태우는 곳이 바로 모루가 사는 곳, 백영시이다.




모루는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아이로 나온다. 그녀는 생각한다. 초연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상처 따위는 받지 않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 너무 어렸고 삶의 경험이 부족했고, 자신이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마저도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는 이모를 찾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희망이라 확신하게 된다.








이월



<스노볼 드라이브>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이월이라는

모루의 중학교 동창이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노볼은 이월의 새어머니 취미다. 그녀는 스노볼을 잔뜩 모았으며 또 그걸 닦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





스노볼은 내 멋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세상이다. 한편 내부는 어떤 외풍도 낡음도 없이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새어머니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고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없기에 대신 스노볼을 모았던 것.




하지만 스노볼로 마음을 다스리는 데엔 한계가 있었고 어느 날 새어머니는 결국 이월만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한다. 이제 혼자 남은 이월은 세상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차갑고 어둡기만 하다.









상황과 배경은 어둡지만
그 안에서 어둡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소설가들이 디스토피아 소설을 쓰는 것은 결국 희망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삶은 언제나 위기 가득이고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 몰려온다. 코로나 팬데믹도 그렇듯, 아프가니스탄 사태도 그렇듯, 우리는 세상이 스노볼 속 세계처럼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세상은 없다.





그래도 절망 속에서 늘 희망은 있다. 그리고 그런 희망은 나이 어린 소녀들에게서 더욱 빛난다. 아무래도 나이가 든 어른들보단 사람을 좀 더 믿고 세상 속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 구성이 매끄럽지는 않다. 왜 갑자기 이런 장면이 튀어나오는 거지?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스노볼 드라이브>는 재미가 있는 sf 소설이다. 두 소녀의 심리 묘사가 탁월해서 그 마음에 쉽게 공감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우울한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서 혹시 우울함을 자주 느끼시나?  싶었는데





사람이 많이 우울하고 힘들 때,  
표현하고 표출을 해야 하잖아요.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까  
저는 그게 글이었던 것 같아요.



라는 인터뷰도 한 것 보니까  확실히 우울한 정서를 잘 쓰시는 분이 맞는 것 같다. 결국 그런 우울한 마음을 이겨낼 수 있는 글쓰기란 희망적일 것이다. <스노볼 드라이브>의 결말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