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경 Jan 13. 2019

짧은 꼬리말의 깊은 울림

내 작은 시간이 누군가에겐 긴 시간을 이어나갈 힘이 된다면,

얼마 전, 글 하나를 남겼다.  
글 쓰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자전적 고백이었다.
그 고백마저 다시 읽어보면 얼마나 가볍고 초라한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글 말미에 응원의 꼬리말을 부탁했다.
잘 썼다는 응원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내 글이 얼마나 부족한 지 잘 알기에 잘 썼다는 꼬리말은 얼굴을 붉히게 만들 것 같았다.
대신, 공감의 꼬리말을 부탁했다.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쓴다는 것 자체를 응원하는 꼬리말.

사실 그렇게 꼬리말을 바라는 마무리를 지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난 여지껏 어떤 글에 꼬리말을 달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아닌데, 귀찮게 뭐하러 하며 그냥 읽고 뒤로 가기를 누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꼬리말을 부탁한다니 얼마나 모순적인 일일까.
바람을 담으면서도, 기대는 안하며 그렇게 글을 마무리 지었다.

글을 발행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어떤 사람이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곧 이어 그 사람은 꼬리말을 남겼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누가? 이렇게 빨리? 내 글에 반응을 해줬다고?
무슨 내용의 꼬리말일지 기대되기보단 겁부터 났다.

한참을 망설였다.
정말 별일 아닌데 확인하기가 겁이 났다.
그냥 글 하나일 뿐이고 그게 내 전부를 보여주는 일이 아닌데도 겁이 났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 글 하나에 나를 가득 담았기 때문일까.
인터넷 어딘가에 글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라 이 상황이 어색해 그랬던 걸까.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 꼬리말을 확인했다.

내 솔직한 마음에 대한 대답이고 조언이었다.
한자한자 기분 안좋은 단어가 없었고, 매우 고마운 단어와 문장과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고맙고 홀가분 한 것을, 하나도 겁날 일이 아니었는데 왜이리 어려워했을까.
그만큼 글쓰는 경험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그 뒤로 더 이상 꼬리말을 달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이미 충분한 응원을 가득 받았으니까.

꼬리말을 남겨주신 분은 내 글에 대한 평가가 없었다.
무거운 평가도, 글이 더 잘써지게 할 기술을 말해준 것도 아니었다.
솔직하다는 것도 평가라면 평가랄까. 그 외에는 날 응원할 뿐이었다.
그런데 꼬리말은 참 와닿고 힘이 됐다.

나에게 꼬리말을 남겨주신 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쓴지는 모르겠다.
2~3문장의 꼬리말이었지만 얼마나 생각을 하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작은 문장이 나에게는 정말 큰 와닿음이었고 울림이었다.
그리고 난 왜 여지껏 이렇게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나 반성했다.

내가 즐겨보던 작가님의 인터넷 페이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별말 쓰지 않았다.
그냥, 몇년 동안 쓰신 글을 보고 출판한 책을 보면서 큰 위로가 됐다고,
앞으로 출판하는 책을 구입하겠지만 인터넷에 글을 꾸준히 남겨주시면 좋겠다고.
항상 작가님을 만나면서 위로 받고 힘내는 내가 되고 싶다고.
짧은 메일이었지만 그 글을 쓰기 위해 몇번을 지웠다 채웠다를 반복했다.

누군가의,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이제야 조금 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 쓰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