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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Jul 17. 2019

반지하방에서 보낸 아기 고양이와의 두 시간

꿉꿉한 반지하의 냄새를 뒤덮은 퀴퀴한 고양이 삶의 냄새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다. 찢어지게까지는 아니라도 네 식구가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반지하방에 살았다. 언덕 중턱에 있는 집이라 1층 같기도 반지하 같기도 했다. 빌라 정문을 기준으로 하면 분명 계단을 내려가는 반지하인데 또 창문 옆에는 1층짜리 집이 있어 1층 집 같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정확하게 어떤 집이다라고 규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집이 창피해서 친구들을 안 데리고 왔던 걸 보면 내 마음속에선 이미 반지하였던 것 같다.


옆집과 우리 집 창문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에는 항상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대부분 윗 골목에서 버리는 것인데 그 위에서 보면 참 꽁초를 버리기 좋은 장소다. 길바닥에 버리기보다 건물 사이 깊은 공간에 버리게 죄책감도  덜했을 것이다. 숨어 피기 좋은 골목이라 학생들이 몰래 피우고 꽁초 처리하기도 좋았고, 흡연가가 지나가다 보면 방금 담배를 피웠더라도 한 대 더 피우고 싶은 그런 장소였다. 그 흡연가들의 비밀스러운 쓰레기통 끝에 사람이 살고 있고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꽁초가 떨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렇게 마구잡이로 버리지는 못했을 테지만.


아주 가끔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막다른 길이라 거의 오진 않지만 대신 옆집 지붕 위에서 털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자주 봤다. 내가 집 문을 열고 나오면 화들짝 놀라며 경계하지만 이내 곧 다시 털썩 주저앉아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그런 녀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녀석은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집 문 앞의 스뎅 그릇에 물이 있다거나, 먹다 남은 음식들이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영양가 있는 사료는 아니었지만, 그 시절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는 사치였다. 배고플 때 가면 밥이 있고 비가 올 때 가면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사는 일이었다. 거기다 집주인이 자기 주인은 아니기에 자유롭기까지 하니 고양이에겐 참 좋은 관계였을 것이다.


어느 날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린가 싶어 거실에 갔다 나는 황급히 다시 방으로 숨어 거실을 빼꼼 바라봤다. 창문살 사이로 작은 고양이가 애옹애옹 거리며 들어올락 말락 하고 있었다. 난 덫을 놓은 사냥꾼처럼 고양이의 움직임을 숨도 못 쉬고 지켜봤다. 고양이가 창문을 넘어 거실에 들어왔을 때 후다닥 뛰어가 창문을 닫았다. 고양이는 깜짝 놀라 거실을 빙빙 돌다 싱크대 구석에 숨어 하악거렸다.


"괜찮아. 널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라 같이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고 말했지만 이미 덫에 걸린 고양이는 하악하악 하고 경계할 뿐이었다. 한참을 대치하며 대화를 하려 노력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겁 많고 조심성 많은 아기 고양이가 처음 보는 장소에서 돌아갈 곳은 막히고 거대한 인간이 헤헤거리며 다가오려고 하면 정말 무섭겠지. 아마 옆집에 있는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일 거야. 그래, 어차피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다시 보내줄게 하고 창문을 열려던 찰나, 문제가 발생했다.


내 움직임에 더 겁이 났는지 싱크대 벽을 따라 후다닥 뛰더니 작은 틈 사이를 통해 싱크대 바닥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제는 내가 너무 겁이 났다. 혹시 저 안에서 못 나오는 거 아닌가. 그 안은 청소할 수도 없어 엄청 지저분할 텐데. 밥도 못 먹고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작은 틈으로 들어간 것도 신기했다. 들어갈 때야 놀라서 어떻게 들어갔지만 도저히, 다시 나올 수 없어 보였다. 내가 계속 여기 있어서 신경 쓰이나 싶어 창문을 열어놓고 방에 들어갔다.


게임하고 있다 보면 알아서 나가겠지 하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너무 신경 쓰였다.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 알 수가 없어 틈 가까이 가며 다시 애옹애옹하고 울었다. '미안 미안 안 올게' 하며 다시 들어갔다. 십 분에 한 번씩 거실을 훔쳐봤다. 만약 안 나온다면 싱크대 바닥을 뜯어야 할 텐데 엄마한테 혼나겠다 싶은 걱정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제발 나오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문지방을 들락날락하고 나니 고양이가 살금살금 낮은 포복으로 기어 나왔다. 숨도 쉴 수 없었다. 혹시 고양이가 날 보고 놀랄까 싶어 이층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고양이를 지켜봤다. 우리 집이 크지도 않은데 창문까지 가는 시간이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 고양이가 들어올 때는 사냥꾼의 눈으로 바라봤지만, 나갈 때는 짝사랑하던 아이가 이사 가는 모습을 언덕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는 것 같은 마음으로 바라봤다. 한참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 이내 창문 밖으로 쏙 하고 뛰어나갔다.


고양이가 나간 뒤 나는 거실을 싹 청소했다. 꿉꿉한 반지하집의 냄새를 뚫고 퀴퀴한 냄새가 솔솔 났기 때문이었다. 샤워까지 한 후에야 그 냄새는 우리 집에서 싹 가셨다. 고양이가 두 시간 머물면서 우리 집에 남긴 흔적이었다. 깔끔 떠는 고양이가 그만큼 냄새를 품고 다녔다면 참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겠지. 그래서인지 역한 냄새를 지우면서 얼굴을 찡그리기보다 마음을 찡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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