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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Sep 30. 2021

임원이 되려면 워라밸을 포기해야 하나요?

<한국의 젊은 임원들>에게 물었다

2018년 4월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의 말 한 마디가 큰 화제가 됐다. 세계 최대 유통회사를 일궈낸 베이조스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 시상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당시만 해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화두였다. 직장인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기 위해 업무를 줄이고, 기업들은 워라밸이 가능하게끔 업무 강도를 낮추고 휴가 제도를 개선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대 기업 중 한곳의 총수가 사실상 '워라밸은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장 아마존은 '반워라밸' 기업으로 낙인이 찍혔고, 아마존의 노동 강도를 비판하는 내부 증언과 기사도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베이조스의 말은 또 하나의 표준이 되고 있다. 워라밸의 시대가 가면서다. 경영전문가들은 베이조스의 말을 '워라밸' 대신 '워라하(Work-Life Harmony)'라는 개념으로 풀어내고 있다. 워라하는 일과 생활의 조화를 추구하는 개념이다. 워라밸이 일과 생활을 분리하고 서로 적대시하는 것에 대한 반발 속에 워라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일과 생활을 분리해서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일과 생활을 적절하게 섞자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실리콘밸리에서는 '워라초'라는 말도 등장했다. 밸(Balance)의 자리에 초(Choice)가 대신 들어갔다. 의미는 워라하와 비슷하다. 일과 생활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둘지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9 to 5'의 근무시간을 강요하는 것은 기업에게나 개인에게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의 젊은 임원들도 비슷한 생각들이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는 '워라코'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다. 밸의 자리에 조화, 조정을 뜻하는 코(Coordination)를 대신 넣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류영준 대표는 "살다보면 직장과 업무에 몰입해야 하는 시기가 있고, 가족을 돌보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 시기가 있다"며 "상황에 따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워라밸이라는 표현은 일과 생활의 기계적인 균형을 추구하는데, 실전은 그렇게 기계적인 균형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고 뽑기가 아닌 이상 실력에서 승부가 날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력을 키우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워라밸이라는 말에 고개를 가로젓는 건 대기업과 스타트업 임원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김수연 LG전자 상무는 "AI 기술의 자가발전을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인간이 무언가에 빠져서 몰입하는 것만큼 강력한 에너지는 없다"며 "스스로 좋아서 몰입하는 것이 성공의 필수요소"라고 말했다. 김숙진 CJ제일제당 상무도 "일이 재밌어서 일주일에 7일을 일하고 새벽까지 일해도 힘들지 않았다"며 "스스로 엔돌핀이 도는 일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정민영 네이버 책임리더도 같은 말을 했다. 정 책임리더는 "아침에 눈떴을 때 회사 가는 게 싫다면 그만둬야 한다"며 "재밌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노대원 슬릭 이사와 이진호 슈퍼메이커즈 대표도 일을 대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노대원 이사는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엄청 적은 건 맞다"면서 "이런 삶이 가능한 이유는 일이 삶에서 완전히 분리된 게 아니라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진호 슈퍼메이커즈 대표 역시 "어설프게 금수저들의 워라밸을 흉내내면서 괴로워하느니 워라밸을 포기하고 승부를 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일을 통한 성장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호 대표가 좋아하는 일본의 유명 경영인인 이나모리 가즈오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삶에 의미가 있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을 하는데 쓴다. 잠을 자는 시간이나 밥을 먹는 시간,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시간도 일을 하는 시간보다 많기가 쉽지 않다. 


베이조스나 이나모리 가즈오, 그리고 한국의 젊은 임원들이 워라밸이 아닌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나머지 라이프에서도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살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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