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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칼럼 Oct 03. 2015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 [李箱] (1910.8.20.~1937.4.17.)

  한국문단의 이단아 '이상'

 '이상'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이다.

 나에게 항상 영감을 주는 뮤즈이자 넘어설 수 없는 목표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상’의 <날개>를 접한 후부터 였던 것 같다.

 ‘이상’과 같은 작가가 되고 싶어 매일을 그의 그림자만 쫓다가 문득, 그가 죽은 지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와 같은 천재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그에 대한 글을 쓰게 됐다.


 ‘이상’의 작품들은 그의 일생과도 관련이 있어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짧고도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때문에 처음에는 그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그의 일생을 간략히 설명한 후, 내가 사랑하는 그의 작품들을 소개하려 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생부모가 버젓이 살아있었지만, 강원도 강릉의 백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이상은 그러한 현실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사춘기 시절 방황했다고 한다. 아마 이상 대부분의 작품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자아분열적인 문체는 여기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 본인은 불행하다 여겼을지 몰라도 그의 집안은 부유하였고, 그의 양아버지인 백부 또한 교육열이 높아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의 필명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조선총독부 근무 당시, 건축현장의 일본인들이 그를 ‘이 씨’란 의미의 ‘리상’(李さん)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는 1931년, 『조선과 건축』 7월호에 실린 시 「이상한 가역 반응」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1932년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부터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1933년 3월, 각혈로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배천온천(白川溫泉)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 그는 요양지에서 ‘금홍’이라는 기생을 만나게 되고, 나중에는 같이 귀경하여 다방 ‘제비’를 운영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상'의 옛 집터에 오늘날 새로 세워진 '제비다방'

 그는 1934년에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인해 중단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고 폐결핵과 싸우다가 갱생의 목적으로 도쿄행에 오른다. 하지만 1937년 일본 경찰에 의해 불온사상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건강악화로 풀려나와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 입원, 같은 해 4월 17일에 병사하였다.




내가 사랑한 ‘이상’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만은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만은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반대(反對)요만은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거울>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상’의 대표 시로 자신을 반대로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물을 통해 타협할 수 없는 ‘현실의 나’와 ‘내면의 나’의 갈등을 표현함으로써 현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기반성적 시이다. 또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 또한 담고 있어 자아분열로 괴로워 한 이상의 내면 상태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내가 ‘이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어둡고 깊은 작품세계에 대한 존경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동질감 때문이다. 아마 그 동질감은 ‘이상’의 작품 속 무질서 속의 질서가 항상 불안한 나의 심리를 대변해주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나의 불안한 심리를 잘 대변해준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이상’의 천재성에 또 한 번 감탄한 것이 ‘거울’이라는 일상적인 소재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성찰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만 오른손을 내밀면 손을 건네듯, 그는 ‘거울’이 ‘닮음’과 ‘다름’이라는 모순적인 의미를 지닌 소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상’은 늘 거울을 지니고 다녔는데 아마 끝없는 자아성찰 혹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순수한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자아’란 것은 본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아’와의 타협은 일반인들에게는 꼭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은 왜 ‘자아’와의 타협을 이루지 못했을까? ‘나’에게서 비롯되는 ‘자아’가 ‘현실의 나’와 타협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자신이 현실의 삶에 영위하고 있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남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누리는 현실의 삶에서마저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했을 ‘이상’이 가엽게 느껴진다.


<오감도(烏瞰圖)>

 한국문단 역사상 최고의 난해시, <오감도>. <오감도(烏瞰圖)>는 본래 30회 예정의 연작시이지만, 그 난해함으로 독자들의 항의에 의해 15회 만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그 때문에 시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없고, 기존의 해설도 공감되지 않아 생략한다. 작품이 워낙 난해하여 <오감도>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무난한 <오감도 시제 1호>만을 다루려 한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오감도(烏瞰圖)>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상태의 그림’이라는 의미의 조감도(鳥瞰圖)에서 한 획을 떼어 만든 제목이다. 이러한 제목을 짓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건축기사로 일하던 ‘이상’의 경험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더불어 <오감도>는 ‘까마귀’라는 소재를 통해 공포와 두려움의 의식을 내포한다.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띄어쓰기의 무시에서 오는 알 수 없는 자유로움과 형식의 파괴에서 오는 독특함, 또 하나는 ‘13인의 아해’에 대한 묘사에서 오는 괴기스러운 이미지, 그리고 작품에 전반적으로 깊게 깔려있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먼저, 시를 보면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다. 이러한 띄어쓰기의 무시는 ‘이상’의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던 ‘이상’은 형식의 파괴를 통해 작품 속에서나마 자유를 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다음으로는 ‘13인의 아해’에 관한 묘사이다.

 먼저 ‘13’이라는 숫자는 서양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숫자일 뿐 아니라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13도의 조선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는 ‘13인의 아해’가 일본에 의해  고통받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해’는 ‘아이’를 이르는 말인데, ‘아이’는 힘없고 여린 존재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부모에 해당하는 나라를 잃음으로써 오는 상실감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13인의 아해’가 두려움 속에 서로를 무서워하며 도로로 질주하는 <오감도> 속의 괴기스러운 이미지는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상’은 이외에도 다양한 언어유희를 즐겨 쓰곤 했는데 대부분이 일본의 감시를 피해 일본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날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자 이상의 대표작 <날개>. 이상의 <날개>가 지닌 작품성과 의의는 생략하겠다. 애초에 <날개>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그것에 대한 작품성과 의의가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을뿐더러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런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독서보다는 게임을 좋아했고 나중에 글쟁이를 목표로 하게 될 줄 몰랐던 그때의 나는 정말 우연치 않은 계기로 이 작품을 접하게 된다. ‘이상’이라는 이름마저 생소해서 ‘이상(李箱)의 <날개>’를 ‘이상의-<날개>’로 알고 글을 읽었던 나는, 첫 문장을 읽었을 때의 그 감정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 구절은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지금은 저 문장에 대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억압으로 무기력해진 지식인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교과서적인 해석을 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재능은 많지만 타인에 의해 무기력해진 나’정도로 받아들인 것 같다. 비슷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그때의 나는 아마 이러한 이유에서 저 구절에 대해 깊은 공감을 느끼고 더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날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어지럽고 무질서한 주인공의 내면 상태를 표현하는데 이 때문인지 실제 자아분열 증상을 겪었다고 하는 ‘이상’의 자선전격 소설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러한 ‘이상’의 자아분열적인 문체와 주인공의 불안한 내면 상태에 대한 묘사가 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혼자 생각하는 것들이 소설이나 기사처럼 논리정연하고 문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야 말로 우리들의 심리를 가장 잘 표현한 가장 사실적인 표현방법이 아닐까? 아울러 우리가 항상 정신적인 병으로 간주하는 자아분열 또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매일 내면의 자아와 갈등하는 우리들을 비추어 볼 때, 자아분열은 더 이상 정신병 따위가 아닌 자신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다.

 당시에도 인정받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평가가 엇갈리는 비운의 천재 ‘이상’. 그야말로 자아의 성숙과 인간의 이해에 대해 깊이 고뇌한 진정한 선각자이다.




 끝으로, 우리 모두 <날개>의 마지막 구절처럼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이는 그런 날, 걸음을 멈추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보자.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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