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쩌다 스크린에 들어왔을까?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들에겐 생소한 이름들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대다수가 그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에게 열광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이 글은 ‘히어로’들의 탄생 배경과 그들이 극장가까지 진출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히어로’의 기원
본래 ‘히어로’란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허구의 존재이다.
예부터 인간들은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흉흉해질 때마다 자신들의 신변을 걱정했고, 인간이 손쓸 수 없는 재앙 등에 대해 크게 두려워했다. 그들은 곧 무력한 자신들과는 다른 초인적인 힘을 가진 어떤 이가 있기를 바랐고 그것은 곧 ‘히어로’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때의 ‘히어로’는 현대의 전대물적 이미지보다는 난세에 등장하는 ‘영웅’과 같은 이미지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당시의 ‘헤라클레스’와 오늘날의 ‘토르’같은 느낌?
이렇게 보니 ‘히어로’의 탄생 배경은 신의 탄생 배경과도 꽤 비슷하다.
상업적인 ‘히어로’의 탄생
이렇게 탄생한 ‘히어로’들은 꽤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했다.
그들은 미담이나 전설 등으로 전해지면서 시대에 따라 그 모습과 능력을 달리해가며 존재하게 된다.
그러던 20세기 초, 인간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들을 맞게 된다. 수많은 피해와 사상자들을 내며 아픔만을 남긴 '세계대전'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인류 역사에 가슴 아픈 상처들을 남기고 당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는데 인간들이 어려울 때 신을 찾듯, 신과 비슷한 배경 속에 탄생한 ‘히어로’들 역시 이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아는 ‘히어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시기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발전을 이루고 있던 미국은 ‘현대판 히어로’들의 발상지가 된다.
1934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맨’과 ‘배트맨’ 등을 탄생시킨 ‘DC 코믹스’의 전신, ‘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스(National Allied Publications)’가 설립되었고 1939년에는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을 탄생시킨 ‘마블 코믹스’의 전신 ‘타임리 코믹스(Timely Comics)’가 설립되면서 오늘날 극장가를 지배하게 된 ‘히어로’들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DC 코믹스
‘DC 코믹스‘(당시 N.A.P)의 만화에 바로 ‘히어로’가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첫 작품은 ‘NEW FUN : THE BIG COMIC MAGAZINE’이라는 작품인데, 인지도도 떨어질뿐더러 지금의 ‘DC 코믹스’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DC 코믹스’가 본격적인 성공을 거둔 건, 그들의 3번째 작품인 탐정만화 ‘Detective Comics’를 발간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미국에서 가장 장수한 만화 시리즈인 이 ‘Detective Comics’는 현재의 사명인‘DC 코믹스’의 유래가 될 정도로 DC 발전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인기 히어로인 '배트맨'또한 이 '디텍티브 코믹스 27호'를 통해 데뷔하였다.)
1938년에야 비로소 DC는 지금의 이미지를 정착시킨 새로운 책을 발간하게 된다. 책의 이름은 ‘ACTION COMICS’. 이 만화가 바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슈퍼맨’이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다. DC는 이 만화를 통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히어로’의 전형을 제시하며 우리들에게 '슈퍼 히어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인식시킨다.
(여담이지만 이 '액션 코믹스 1호'와 '디텍티브 코믹스 27호'는 현재 가장 비싼 만화책 1,2위를 기록하며 이 '히어로'들의 탄생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이후로도 DC는 오랜 시간 꾸준히 ‘배트맨’, ‘플래시맨’, ‘원더우먼’ 등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히어로들을 탄생시키며 이 분야의 1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MARVEL 코믹스
DC보다 조금 늦게 설립된 ‘마블 코믹스’(당시 ‘타임리 코믹스’)의 첫 작품은 ‘MARVEL COMICS’였다. 앞서 DC가 '히어로'를 통해 성공한 바 있었기에 마블 또한 시장의 흐름에 따라 '히어로'라는 소재를 벤치 마킹하며 성공하게 된 것이다.
마블은 이 만화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1941년에는 마블 최초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서브 마리너-네이머', ‘휴먼 토치’가 탄생하게 된다.
(참고로 이 ‘휴먼 토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판타스틱 4’의 ‘휴먼 토치’가 아닌 동명이인의 '히어로'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타임리 코믹스’의 회장 ‘마틴 굿맨’이 일찍이 ‘스탠리 마틴 리버’라는 젊은 작가를 고용한 적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들인 ‘판타스틱 포’,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아이언맨’, ‘토르’ 그리고 ‘어벤져스’ 등을 만들어 낸, ‘스탠 리’이다.
‘스탠 리’는 오늘날까지도 마블 영화들의 제작 총지휘 등을 맡으며 자신의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지금의 마블은 '스탠 리'가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후로도, 두 회사는 오랜 기간 경쟁하면서 각자 개성 있는 고유의 '히어로'들을 탄생시키며 미국 만화시장의 80%를 점유하는 회사들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만화 속에서만 존재하던 히어로들은 어쩌다가 극장가로 나오게 된 것일까?
극장가로 진출한 ‘히어로’들
사실 ‘히어로’들의 영화화는 예전부터 이루어졌던 시도이다. ‘슈퍼맨’의 첫 번째 실사영화가 1948년에 만들어졌을 만큼 그 유래를 찾자면 꽤 깊이 들어가야겠지만 이 글에서는 최근의 동향만 짚어 볼 예정이기에 자세한 내용은 건너뛰고 바로 20세기 후반으로 가보자.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
예전에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대규모 자본이 움직이게 되면서 흥행에 실패했을 경우 따라오는 어마어마한 후폭풍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투자자들은 좀 더 안정적인 작품에 투자하기를 원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기존에 검증받은 소설이나 드라마, 만화, 게임과 같은 장르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히어로’들의 영화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이야 어찌되었든 ‘히어로’들의 영화화에 처음 성공한 것은 DC였다.
1978년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슈퍼맨’의 초상이 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던 TV외화<날으는 원더우먼>등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도 처음으로 서양의 ‘히어로’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때의 인상이 깊었던 건지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는 ‘히어로 영화’의 안정적인 성공을 뒷받침해주는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히어로’들은 '마블의 히어로'들인 반면, ‘히어로’를 접한지 얼마 안됐던 시기의 우리나라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DC의 히어로'들이 강세를 이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블의 인지도가 DC를 넘어서게 되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이런 동향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대체 마블은 어떻게 DC를 추월하게 된 것일까?
마블이 DC를 추월하게 된 계기는 꽤 복합적이다.
마블은 예전에 회사의 존폐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때 자사 캐릭터들의 판권들을 대거 팔아치워 가면서 겨우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팔아넘긴 캐릭터들이 바로 지금까지도 발목을 잡는 ‘스파이더맨’과‘엑스맨’ 등이다.
2000년과 2002년에 각각 개봉한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의 어마어마한 흥행 성공으로 ‘히어로’들의 가치를 뒤늦게 알아차린 마블은 뿔뿔이 흩어진 판권들을 회수해가며 본격적인 ‘히어로’들의 영화화에 뛰어든다.
자사의 캐릭터들을 영화화해서 ‘마블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영화를 기획한 그들은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을 연달아 흥행에 성공시키고는 <어벤져스>를 통해 정점을 찍으면서 이 분야의 최고로 올라서게 된다.
한편, DC 또한 무서운 속도로 앞서 나가는 경쟁사를 따라 자사의 캐릭터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급했던 것일까 마블의 <아이언맨> 시리즈처럼 자사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그린 랜턴’을 시작으로 점차 입지를 넓혀가려던 그들의 계획과는 달리 <그린 랜턴>이 흥행에 처참히 실패하게 되면서 미리 계획된 일정들마저도 전면 중단하기에 이른다.
곧 개봉하게 될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또한 <그린 랜턴>의 흥행이 보통이상만 됐어도 진작 만나봤을 작품이지만, 계획을 수정하면서 더 커져버린 격차를 좁히기 위해 중간의 디테일한 설정들을 생략하고 급하게 나왔을 정도로 <그린 랜턴>은 현재 영화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린 엄청난 작품이다. 두 회사의 역사를 놓고 봤을 때에도 항상 비슷한 점유율을 기록하면서도 조금씩 우위를 점하고 있던 DC는 최근 10년 사이에 다른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DC를 따돌린 마블은 현재 영화시장에서 독주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른 곳으로 팔려간 <스파이더맨>과 <엑스맨>또한 마블태생의 '히어로'들이니 말이다.
결국 지금의 극장가 풍경이 만들어진 과정을 3줄로 요약하자면,
1.안정적인 투자를 위해 '히어로'들의 영화화가 시작.
2.초반 DC의 우세를 꺾은 마블의 신의 한 수.
3.그린 랜턴.
정도 되겠다.
앞으로의 전망
이미 시장에서 1인자의 자리에 오른 마블은 2028년까지의 계획이 잡혀있는 상태다.
그에 반해 이제야 추격에 나선 DC는 내년 개봉 예정작들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DC의 악역들(빌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흥행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DC를 좋아할 뿐 아니라 시장의 흐름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DC에서 내놓을 앞으로의 영화들이 성공하여 마블과의 경쟁구도를 이룸으로써 시장의 균형이 맞춰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언제 또 <그린 랜턴> 같은 작품이 탄생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