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유아', '학교', 심지어 '잔재'까지도 일본식 조어다. 정상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코미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미신과 주술적 믿음이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제도권 정치와 언론까지 집어삼키는 나라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는 쇼비니즘적 광기가 아니라 과학적 합리성과 이성적 숙고를 추구해야 합니다.
올초에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를 읽고 쓴 메모를 약간 손봐서 올립니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사사키 겐이치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를 다 읽고 사전에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니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하다. 《표준》의 표제어 선정이나 뜻풀이의 오류를 지적하는 단행본이 여러 권 나와있다. 근본적으로는 국가기관이 하나의 '공인'된 사전을 발행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국가기관에서 사전을 발행하는 대신 민간에서 편찬한 여러 종류의 사전이 표제어 선정이나 독특한 뜻풀이로 서로 경쟁하도록 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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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의 대표적인 병크는 '닭도리탕'을 이른바 '닭볶음탕'으로 "순화"한 일이다. 나는 '닭볶음탕'이라는 단어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며, 그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닭도리탕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우리집에서 제일 자주 해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우리집은 옛날부터 이 음식을 '닭도리탕'이라고 불렀다.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우리집의 언어관행을 교정하라는 국가기관의 요구에 응하고 싶지 않다.
'닭볶음탕'은 의미 자체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닭도리탕은 끓이는 음식이지 볶는 음식이 아니다. 애초에 '탕'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 자체로 끓이는 음식을 가리킨다. 그 《표준》마저 '탕'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국’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흔히 일반적인 국에 비해 오래 끓여 진하게 국물을 우려낸 것을 이른다." 그리고 '볶다'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음식이나 음식의 재료를 물기가 거의 없거나 적은 상태로 열을 가하여 이리저리 자주 저으면서 익히다." 그렇다면 국물이 많고 끓이는 음식인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으며, '닭볶음탕'은 '네모난 동그라미'나 '한달 연봉'처럼 의미 자체로 앞뒤가 맞지 않는, 언어적으로 몹시 이상한 표현이다. 발화할 때마다 부자연스럽고 기분이 이상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단어를 도대체 왜 일부러 쓰라는 것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일본식 표현'의 잔재를 “순화”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세계관은 정말, 매우, 몹시, 심각하게 잘못되었다.
‘닭도리탕’이 일본식 표현이라는 근거는 없다. ‘닭도리탕’은 어원이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고 여러 가설들만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미 국립국어원 스스로가 '닭도리탕'이 일본어 잔재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딱히 근거가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면 멀쩡하게 잘만 쓰이는 단어를 별다른 근거도 없이 국가기관까지 나서서 바꾸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소위 ‘일본어 잔재 청산’에 이토록 정신병적으로 매달리는 이유가 당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 기저에는 ‘일본어 잔재’가 우리의 언어를 오염시키고, 나아가 세계관을 무의식적으로 오염시킨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준》은 ‘순화’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불순한 것을 제거하여 순수하게 함.”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믿음은 주술적 믿음이다. 한민족이 ‘순수혈통’이라는 신화라든지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은 말뚝을 뽑아야 민족이 흥한다는 등의 얼토당토않은 도시괴담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런 믿음은 이를테면 특정한 어휘의 사용이 특정한 성(gender)에 대한 관념의 고착화를 야기한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후자는 합리적인 논증이지만, 전자는 미신이다. 이런 믿음은 일제 식민지배가 정당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인 문명인의 세계관이나 비판적인 사고방식에 전혀 어울릴 자리가 없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런 낭설이 소수의 음모론자 사이에서 떠돌고 마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진짜로 심각한 문제다. 국가가 공적 이성이 아닌 주술적 믿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런 터무니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의 언어생활과 시민적 자유에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적인 세계를 표상하는 어휘는 거의 전부 서양에서 발명되었고, 이 단어들은 모두 일본의 번역을 거쳐 우리에게 왔다. 소위 ‘일본어 잔재 청산’이 비현실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닭도리탕’이 일본에서 유래한 표현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면 정치, 경제, 철학, 민주주의, 공공성... 등도 마찬가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닭도리탕’과 달리 위의 단어들은 대체가 불가능하므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일본어 잔재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잠식하기 때문에 순화해야만 한다는 주장대로라면, 우리의 사고방식을 잠식하는 단어들은 ‘닭도리탕’ 따위의 사소한 단어가 아니라 바로 정치, 경제, 철학, 민주주의, 공공성 등 우리의 공적 생활을 정초하는 단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적’이라는 접미사도 일본이 발명한 것이다. 이런 단어들은 가만 놔두고 애꿎은 ‘닭도리탕’만 괴롭히는 국립국어원의 행태는 그야말로 모순‘적’이다. 무엇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차피 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다. 같은 문자(그것도 남의 나라 문자)를 사용(병용)하면서 어휘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결의는 뭐랄까...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보는 것 같다. 그냥 우습다.
어떤 단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관행으로 정착했다면 그것을 인위적으로 바꿀 이유는 없다. 특히 권력을 독점하는 국가가 특정한 이념적 동기를 가지고 나서서 하향식으로 언어관행을 뜯어고치는 것은 시민적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양식 있는 시민, 모든 형태의 권력에 내재하는 위험성에 민감한 시민이라면 마땅히 경계하고 반발해야 할 일이다.
생물학자 마크 페겔(Mark Pagel)은 TED강연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언급한다. 파푸아뉴기니에 가면 하나의 섬 안에서 800개에서 1000개나 되는 서로 다른 자연언어를 발견할 수 있고, 하나의 언어공동체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만 가도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란 원래 이렇게 역동적이다. 국가가 나서서 언어표현이나 언어표현의 의미를 고정할 수는 없다. 언어에 관하여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언어사용의 실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여 집대성함으로써 일종의 느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최소한의 기술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일 터이다. (‘최소한’이라고 쓴 이유는, 언어의 오용이 새로운 언어관행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짜장면’이 그렇다) 요컨대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언어의 의미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용되는 국면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오래된 경구를 빌리자면,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이다. 국립국어원이나《표준》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