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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Oct 26. 2020

철학책을 쓰고 싶은데요

나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토요일에 출근을 했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주말 근무는 처음이다. 회사에서 집단소송 건을 하나 수임했는데, 의뢰인 대표들을 만나러 경기도까지 다녀왔다. 물론 나는 내내 멀뚱멀뚱 앉아있기만 했다. 대외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젊은 풋내기 변호사의 특권이고,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책임을 질 자신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의뢰인들이 행여나 나한테 뭘 물어보기라도 할까 봐 바싹 겁에 질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의뢰인이 나를 보며 "변호사님..."이라고 운을 떼는데, 소리가 들리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심장이 쿵쾅댔다. 그런데 이어지는 질문은 다소 허탈한 것이었다. "실례지만 변호사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머쓱하기도 하고 약간 자신이 없어져서 헤실거리는 표정으로 "저... 서른하나입니다"라고 대답했고, 의뢰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회의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하얗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순한 인상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보았다.

얘기가 곁길로 샜는데, 여하간 토요일에 출근하니 월요일이 너무 빠르게 돌아온다. 토요일에 출근했다고 수당을 따로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만은 전혀 없다. 필요하다면 가야 하는 게 내 일이기도 하거니와, 야근이 일상화된 직역에서 보기 드물게 워라밸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있어서 좋다. 며칠 전에 회사에서 사고를 하나 쳤는데,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사고 친 걸 보고하는데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기어들어가서 정말 스스로가 귀뚜라미보다 못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혼을 안 나니 오히려 더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다. 토요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변호사님께서 새내기는 누구나 하는 실수이니 힘내라고 하시며 수육을 사주셨다. 집 앞 와인샾에서 레드와인을 한 병 사서 맛있게 곁들여 먹었다.



집에 들어올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와인에 취해 잠깐 잤다가 일어나서 새벽까지 철학책을 읽었다. 새삼스럽지만, 요즘 매일 책을 읽는다. 가방에 얇은 책 한 권을 넣고 다니면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고, 퇴근길에도 읽는다. 출퇴근길 지하철은 거의 항상 만원이 되어서 나는 압착기 속에 던져진 책이 된 것만 같다. 그래서 처음에 자리를 잘 잡는게 중요하다. 한 손으로 책을 들고,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야 한다. 유튜브에서 낭독 영상을 듣는 것도 방법이다. 점심시간에는 딱히 살 책이 없어도 회사 근처 책방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괜스레 펼쳐보기도 한다. 퇴근하고 나서는 피곤하지 않으면 집 근처 와인바에 들러서 책을 마저 읽고,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에 형광펜을 칠하거나 독서 기록 어플에 입력한다. 그러면 하루가 끝난다. 최근에는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일찍 일어나면 책 한 권을 들고 보라매공원에 가서 배고파질 때까지 읽는다. 공기가 맑고 하늘이 청명한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트랙을 돌거나 조잘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책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한 번씩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기분이 좋아서 한참을 보고 있기도 한다.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당분간은 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 같다.

여하간 어제는 종일 철학책을 읽었다. 오늘 아침에는 추워서 바깥에 나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철학책을 계속 읽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철학책을 다시 보려니 밥이 얹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장(으로 쓰고 있는 옷장)에서 얇은 책을 네 권 정도 꺼내서 하나를 골라 조금 읽었다. 얼마 못 가 책이 지겨워졌다. 밖으로 나가서 놀고 싶어진 것이다. 책을 덮었는데 약속도 없었고 부를 사람도 없었다. 이래서 사람은 친구를 적잖이 사귀어 두어야 한다. 핸드폰을 붙잡고 뒹굴거나 피아노를 치다가 도저히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다시 책을 읽었다. 저녁엔 밖으로 나가서 밥을 먹었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충동적으로 책을 사고 조용해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을 마신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철학과 책이 몹시 사랑스러우므로, 서른이 꺾이기 전에는 대학원으로 돌아가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공부를 하고 싶다. 이미 어느 교수님 밑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대강 생각해 두었기 때문에,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최소한 석사과정은 무조건 마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무런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는 책만 골라 읽는 일에 약간의 자부심도 느낀다. 그런데 스스로 뿌듯해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가령 나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 멀쩡한 변호사 자격증을 내팽개치고 이상한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을 누가 선뜻 만나려고 할까 싶기는 하다. 최근 유튜브에서 '40대 독거노총각의 삶'이라는 채널의 영상들을 보았다. 독거노총각이 되는 미래가 너무나도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와, 그만 실어증에 걸린 채로 벌벌 떨고 말았다. 어쩌면 선택의 여지 자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만약에 철학을 포기하는 삶과 철학하는 독거노총각이 되는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식음을 전폐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도 결혼이지만, 사실 내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는 것조차도 문제다. 물려받을 것이 없으므로, 일해서 버는 돈이 내게 전부인 셈이다. 여름 즈음하여 주식투자에 도전했지만, 저점 직전에 사서 저점에 판 주식이 몇 달 뒤에 세 배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며 배를 부여잡고 뒹굴어야만 했다. 매수한 나머지 종목들은 이른바 개잡주로서, 총액 삼십만 원의 손해를 내게 안겨주었으며, 지금은 그 회사들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한 데다가, 내가 참으로 운이 좋아 철학 박사학위를 따더라도, 그걸로 돈을 버는 유일한 길은 철학관을 개업하는 것일 터이다. (사진은 오늘 맥주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재미있어서 찍었다.) 나는 정말 -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것 빼고는 -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은 채로 순진하게도 산다. 혹여, 길바닥에 나앉게 되지는 않을까? 그래도 자격증이 있으니 밥을 굶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본다. 아니면 사회안전망이 나를 지켜주겠지.

이렇게 지루할 때도 있고 답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삶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커리어 상승을 노릴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탁월한 인간이 되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끔은 나도 이런 내가 좀 머저리같이 느껴진다. 예전에 어느 기업의 사내변 자리에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운 좋게도 임원면접까지 가게 되었다. 인터뷰어인 상무는 형식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하다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철학책을 쓰고 싶은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무는 정말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처음부터 나를 떨어뜨릴 생각으로 나왔던 것 같긴 한데, 떨어졌다는 직감이 들었던 건 그때였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좋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 똑같이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몽테뉴의 말처럼, "나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모든 사람이 다른 곳을 찾아 미래 속으로 내달린다. 아무도 자기 자신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책 자체, 특히 종이책의 장정과 속지의 물성을 좋아한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들여 곁에 쌓아놓는 것도 그래서다. 스스로를 책으로 에워싸면 묘한 신비감마저 감돈다. 괴테가 말했듯, "생각하는 인간에게 찾아오는 가장 아름다운 행운은 탐구할 수 있는 것을 탐구하고 탐구할 수 없는 것을 조용히 경외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삼십오 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는 그는, 그의 작업장으로 쏟아져 내리는 종이 더미에서 괴테, 실러, 휠덜린, 니체의 책들을 구해낸다. 종일 노동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스스로가 마치 바스러진 책 꾸러미처럼 여겨지고, 몸에서는 맥주와 오물 냄새가 난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책, 물성이 있는 그 종이책과 함께 고독으로 물러난다.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슴푸레한 여명 속에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의자에 앉아 있다... 한 번도 진짜로 버림받아본 기억이 없는지라 그렇게 나 자신을 방기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썼다. 어슴푸레한 여명 속 한탸의 고독은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위로가 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그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것은 내겐 아무래도 멋진 일이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더 아끼고 싶고,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날 "괴테나 실러, 휠덜린, 니체"의 글들이 빛바랜 것은 그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애틋함마저 사라진 걸까. 그렇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리게 지새우던 밤들과 고독하던 시간들을 어루만져준 건 바로 그런 책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브리프케이스에 얇은 책 한 권을 집어넣고 와인바에 들러 철학책을 읽을 것이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끄적이다 보니 몽환적인 글이 되었고, 자정이 다가온다. 다음 주에는 젊은 변호사들끼리 볼링을 치러 간다던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과 몸을 움직이는 것, 어느 쪽에도 탁월하지 못하다. 편안히 잠들기 위해서는 역시 책을 몇 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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