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 읽기 모임 후기
독서기록앱 '리더스'를 통해 열었던 철학 북클럽이 얼마전에 마무리되었다. 철학 책은 아무리 쉬워도 읽기가 어렵다. 철학은 메타적인 사고를 요구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아서 그렇다. 게다가 8주간 네 권의 책을 읽어내는 일정은 (그래서 100~200pg 내외의 짧은 책들로 선정하긴 했지만) 꽤나 강행군이다. 진행되는 내내 이래저래 걱정을 참 많이 했는데, 책이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이 죄 나가떨어지면 어쩌나,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시는 철학을 거들떠보지 않게 되면 어쩌나, 뭐 이런 생각들에 약간의 밤잠을 설친 것도 같다.
끝나고 보니 이런 걱정은 기우였던 것 같다. 12명의 참가자 가운데 여덟 분이 끝까지 성실하게 커리를 완주해 주셨다. 타이트한 일정과 강의/해설 없이 혼자 책을 읽어내야 한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 마지막 모임 때에는 시즌 2가 열린다면 꼭 참여하겠다는 말씀들도 하셨다. (주최자로서,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이다!)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게끔 돕고, 세계와 우리를 둘러싼 여러 조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므로 철학에는 실천적인 의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철학이 재미있어서다. 철학적 문제들을 생각하는 즐거움은 거기에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큰 것 같다. 괴테의 말마따나 “생각하는 인간에게 찾아오는 가장 아름다운 행운”이 “탐구할 수 있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라면, 철학을 만난 일은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행운이다.
아래는 작년 초에 후배들과 처음 했던 분석철학 읽기 모임을 마치고 썼던 서간문 형식의 후기이다.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글인데, 북클럽 마친 기념으로 올려본다.
인류가 추구하는 지식 중에서도 철학이 다루는 문제들은 가장 까다로운 편에 속합니다. 비교적 다루기 쉬운 문제들은 모두 분과학문으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왜 동쪽에서 떠오르는지는 관측과 물리계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의 의미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은,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지도 썩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호주의 철학자 차머스가 적절하게 이름 붙였듯, ‘어려운 문제(hard question)’들입니다. 철학은 이처럼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철학적 문제들을 생각하다 보면 결코 진실에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의 이런 성격은 어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철학은, 과연 우리가 비교적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지식들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만큼 확실한지 되묻게 합니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흄(Hume)은 우리가 내일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리라는 점에 대해 아무런 정당한 확신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연과학이라는 체계를 떠받치는 인과율은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시대에 이르면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조차 명료하지 않다는 인식에 이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언어라는 상자에 갇힌 파리’에 불과합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책을 얼어붙은 마음을 깨는 도끼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철학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의 메타적 성격은, 모든 것이 확실했던 우리의 세계를 흔듭니다.
그럼에도 불확실성은 우리로 하여금 지식의 탐구를 중단하게 하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완전한 확실성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명백한 오류를 제거하고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여전히 가치 있고, 유익합니다. 철학은 논증하고 명료하게 하는 활동입니다. 철학자는 언어를 분석하여 그 의미를 명료하게 만들고,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논증이라는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표명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언어적 혼동이나 논리적 오류와 같은 사고의 명백한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더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요컨대 관찰과 실험이 세계에 대한 과학자의 응답이라면, 분석과 논증은 불확실성에 대한 철학자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은 운명적인 불확실성을 껴안으면서도 앎을 추구하여야 하는 미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연하지는 않지만 완전한 무질서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라면 철학은 좋은 길잡이입니다. 철학은 우리의 세계를 흔들지만 거기에 인식적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철학적 문제들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깨달음으로써 나의 가장 확고한 믿음조차 종국에는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음을 배우고, 인간의 본능인 독선과 아집을 이성으로 극복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분석과 논증이라는 도구로 명료한 생각과 그렇지 않은 생각, 받아들일 만한 좋은 생각과 그렇지 않은 생각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삶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버트런드 러셀 경은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To teach how to live without certainty, and yet without being paralyzed by hesitation, is perhaps the chief thing that philosophy, in our age, can still do for those who study it.
(확실성 없이, 그러나 불확실성에 마비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철학이 이를 탐구하는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우리는 분석철학의 역사에서 출발하여 언어철학, 심리철학, 예술철학 등의 각론적인 내용들을 다루었습니다. 새로운 개념을 습득하고, 몰랐던 철학자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철학자가 되는 것, 즉 철학을 ‘하는’ 것입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가장 사소한 일상의 문제들을 의심하는 것이고 – 지금 나는 자유의지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 언어의 본질적인 불명료함에 기민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르게 논증되지 않은 견해는 나의 감정이나 직관과 일치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온 분석철학 책들은 이렇게 철학을 하기 위한 재료를 제공합니다. 분석철학 모임은 끝나지만, 철학하는 삶은 이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
함께한 2~3개월 동안 자비 없는 번역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개념의 홍수에 속절없이 떠밀려내려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끝없이 등장하는 생소한 철학자들의 이름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어떤 경우에는 그저 “무슨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는” 경험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독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당장 이해가 되지 않고 아무것도 머리에 남지 않은 것 같아도, 나중에 같은 주제의 다른 책들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축적된 지식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마치 민트사탕을 깨문 것처럼 갑자기 모든 내용이 이해되고 정리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함께 읽은 책들이 다소 어려웠더라도, 관심을 놓지 말고 좋은 철학 책들은 꾸준히 읽어나가기를 권유합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 그리고 코로나 덕(?)에 약간 더 길어졌지만 – 함께 철학한 시간이 너무 행복했고, 그만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썼습니다. 요 몇달간은 함께한 여러분 덕분에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합니다. 연이 닿아 시작된 관계가 오래 즐겁기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많은 기쁨과 견뎌낼 만한 슬픔만 여러분께 있기를 기원합니다.
Juno
2020.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