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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Jul 16. 2024

곰탕 | 감춰라, 알려지리라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하고 진득하게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만약 제가 회사에 다시 입사해야 해서 면접이라는 관문을 다시 치러야 한다면, 그래서 면접관들로부터 “당신의 일하는 스타일은 어떠한가?”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딱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만약 제가 회사에 다시 입사하게 돼 팀장으로부터 혹은 임원, 심지어는 사장으로부터 “당신은 어떤 식으로 일을 하나?”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그때도 역시 딱 한마디로 그렇게 대답할 겁니다. 만약 제가 정든 회사를 다시 떠나야 한다 해도, 그래서 후배들이 “선배는 어떤 식으로 일을 했나요?” 혹은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일해야 하나요?”라고 조언을 청해온다면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딱 한마디로 그와 같이 대답할 겁니다. 

    

있는 듯 없는 듯묵묵하고 진득하게.   

     

회사 안을 자세히 둘러보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자세히 둘러본 적이 없다면, 오늘부터 주변 사람들을 한번 세밀하게 관찰해보세요. 보통 이들은 일을 화려하기 그지없게 처리하고, 언변도 뛰어난데다 두뇌회전까지 빨라 아이디어 제조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또 빈틈이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재다능하며, 그 결과 항상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띕니다. “내가 저 사람만큼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법도 합니다.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지요.     


이 말에 혹시 고개를 끄덕이셨나요? 그렇다면 아마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은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를 어느 정도 다닌 분이라면 이 재주꾼들이 궁극적으로는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요. “아니, 못하는 게 없는 저런 유의 사람들이 인정을 못 받는다고? 그럼 대체 누가 인정을 받나? 나보고 회사에서 나가란 소리야 뭐야?” 스스로 나갈 거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제 발로 나가거나 퇴출되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말입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불인정(不認定)의 메커니즘’은 간단합니다. 재주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과 자부심, 욕심, 명예에 대한 욕구 등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만큼 실력과 재능을 갖추고 있기에 실제로 이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어 보이지요.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한 조급함(성급함과는 다릅니다) 합니다. 세상이 자신을 우러러봐주고 떠받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이 작지 않다 보니 작은 것보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큰 걸 노립니다. 이들이 언제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사방팔방으로 좌충우돌,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여기저기 다 휘젓고 다닙니다. 다 능력, 능력, 능력, 그 놈의 능력이라는 든든한 ‘빽’ 때문이지요.     


참을성도 없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도 못 참고 자신의 능력이란 능력은 다 쏟아내지만(이 점은 분명 본받을 만한 점이긴 합니다만), 동시에 그만큼 주변 사람들의 칭송이 즉각적으로 나오길 기대하는, 쉽게 말해 기복이 심한 재주꾼들. 그냥 듣고 있기만 해도 숨이 다 찹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잘난(그가 실제로 잘났든 잘난 것처럼 보이든 간에) 사람일수록 다들 그것을 배 아파하면서 그를 경계하고 깎아내리려 하지 “인물 났네, 인물 났어!”하면서 부러움에 가득 찬 칭찬을 날리진 않지요. 이건 ‘팀워크’의 문제가 아닙니다.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엄연히 ‘경쟁’의 문제이지요. 성공이라는 파이는 절대로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나 잘난 거 봤지? 어서 인정해.’라고 하는 게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짚은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생각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재주꾼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요? ‘그래. 뭐 까짓 거 알아줄 때까지 실력 발휘해드리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까요? 글쎄요.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 ‘이것들이 그냥. 감히 내 실력을 떠받들지 않아? 고마워해도 모자를 판에.’ 하면서 핏대를 올리겠지요. 그리고 자신이 해온 일에 흥미를 잃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거나, 아니면 그렇게 구차하게 할 것도 없이 그냥 퇴사해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 말입니다.

     

회사는 어떨까요? 이런 재주꾼들을 슈퍼급 인재네, 천재네 하면서 승급이니 승진이니 연봉인상이니 팍팍 밀어줄까요? 아무래도 이윤을 추구하는 게 회사의 존재이유이기에 단기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기회를 주겠지요. ‘앞으로도 쑥쑥 자라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회사에 기여를 하라’는 차원에서의 기회뿐만 아니라, ‘일관성과 인내심을 갖고 자기지배력을 키워 꾸준히 롱런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차원에서의 기회를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재주꾼들이 이러한 뜻 깊은 당근을 그냥 당근으로 받아들입니다. ‘잘났으니 당연히 인정을 받은 거고, 인정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여태껏 해오던 대로 하면 더욱 더 인정받겠지’ 식으로 가볍게 생각해버리지요. 회사로서는 분명 채찍성 당근의 의도로 준 건데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회사와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나갑니다. 그 뒤로 그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요리 가이드라인 #1] 천재성은 누구나 가질 수 없지만, 인내심은 모두가 가질 수 있다. ―이승한(前 홈플러스그룹 회장)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재주꾼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실력 있는 직원이 어디 흔한가.” “아무리 잘나도 그렇지, 요즘 저렇게 제멋대로 막나가는 직원이 있나.” “그런 직원이라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당연히 내쳐지지.”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얽혀있으리라 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이런 부류의 직원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이들 중 현재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경쟁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꽤 쓸 만한 실력을 갖췄던 그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간 걸까요?     

혹시 이 이야기가 아직까지 남의 얘기처럼 들리는 분이 있다면,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릴까 합니다. ‘행방불명’된 이들은 미래의 자신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능력도 쌓고 인정도 받고, 그렇게 사다리를 타고 계속 올라가다 보면 사람인 이상 누구나 이러한 '재주꾼의 함정(Trap of the Talented)'에 빠질 가능성에 노출됩니다. 마치 우리가 지지리도 가난해서 돈을 벌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곡차곡 돈을 쌓게 돼 어느 정도 배부른 위치에 도달하게 되면 게을러지고 돈이 없는 주변 사람들을 얕잡아보게 되는 등의 초심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로 재주꾼이라면, 정말로 누구나 다 알아줘야만 하는 실력자라면 굳이 여기저기 자랑하면서 나대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압니다. 대부분 겉으로만 모른 척하고 있을 뿐, 실제로 모르는 건 아니지요. 결국 회사를 굴리는 게 사람인데 그런 칭찬거리가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확산(그것도 무척 쉽고 빨리)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다들 알고 있는데도 일단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무엇을? 이 사람이 과연 지금처럼 앞으로도 일을 잘해나가는지를. 일을 잘해내는 만큼 일관된 의지를 갖고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말입니다.   

   

실제로 특출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두고 보고 할 것도 없어. 내 실력 봤잖아. 만천하에 입증됐다고.”라고 당당하게 말하겠지요. 그럼 참 오죽 좋겠습니까마는, 회사 일이란 게 항상 자기의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더군요. 아무리 모두가 알아주는 인재라고 해도 회사 안에서 돌아가는 모든 상황과 여건을 다 통제하고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변수는 틀림없이 늘어날 겁니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 둘러볼 거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라는 변수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데만 신경 쓰면 됩니다.   

   

[요리 가이드라인 #2] 온 세상 사람들이 칭찬해도 우쭐대지 말고, 온 세상이 헐뜯어도 풀이 죽지 말라. ―장자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가 언젠가 한 신문 기고문에서 한 말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말이지요. 한번 귀 기울여볼까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위기와 찬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세평(世評)에 흔들리지 않고 항심을 유지하는 것. 사이클이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나 일정한 퍼포먼스를 내는 것.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오르막과 내리막의 사이클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생(生)이라면 결국은 슬럼프를,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재직할 당시 모든, 그야말로 모든 직원들의 존경과 인기를 독차지하던 연구원 한 분이 떠오릅니다. 비록 이 분은 저와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훈훈한 얘기들은 알음알음 들어왔던 터라 거의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던 분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일을 잘하니까 그런가보지 뭐.”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좀 ‘아다리’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일을 잘한다’는 얘기가 성립되려면 기본적으로 일과 관련된 구체적인 실적과 성과가 드러나야 하는데, 그가 어떤 특별한 아웃풋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점에서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지요. 의아함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자연히 떠오르더군요. “혹시 이 사람, 사내정치라도 하나?” 그런데 또 그렇다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이, 사람 자체가 너무나 소극적이고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스타일이라 사람들과 터 넣고 지내는 과감성과 대쉬력이 전무해보였기 때문입니다. “회사 안에서는 아닌 척하고, 회사 밖에서 콩깍지 까는 거겠지. 다 그런 거야.” 글쎄요. 회사 밖에서까지 정치를 할 배짱이 있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궁금증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을 때 회사에서 전체 워크숍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말이 워크숍이지 사실상 단합대회나 마찬가지였던 이곳에서 제 의아함을 해소시켜줄 단서들이 하나 둘 귀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이 연구원에 대한 수많은 ‘뒷담화’였지요. 그것도 뒤에서 몰래 떠들어야 할 얘기들이 아니라, 앞에서 떠들어도 되는 좋은 얘기들이었습니다.     


“A 연구원 말이야. 우리 협의회 차기 대표감 아니냐? ‘스캔들’ 하나 없지, 이미지 깨끗하지, 무엇보다도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지.” “맞아. 자기 자신을 거의 드러내질 않아. 자기 자랑도 남에 대한 뒷담화도 언제나 ‘사양 모드’야.” “그러면서도 남의 얘기에 귀도 잘 기울이고, 남의 부탁도 깔끔하게 잘 들어주고.” “난 이 사람이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한 번쯤 보고 싶을 정도라니까.” “전혀 튀질 않아, 전혀.” “지독하게 겸손하기도 하지.” “회사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지만, 자기가 해야 할 건 또 다 한다니까.” “사람이 이랬다저랬다 하질 않아. 표정이 바뀌는 걸 본 적도 없어.” “사람이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더라고. 자그마한 제스처조차 없어.” “그래서인지, 사람이 참 묵직하고 든든해 보여.”     


워크숍 때 멋진 프레젠테이션으로 전 직원을 놀라게 하려던 제 계획이 너무나 ‘없어’ 보였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맛보는 정말 유쾌하고도 긍정적인 굴욕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차 싶더군요. 순진하게도 오로지 능력 하나로 회사를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철없는 자만심, 남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아져 업무 결과를 제멋대로 조절하거나 아예 업무 결과 자체를 내지 않는 자기중심성, 결국 기분에 따라 자세와 태도와 역량이 오락가락하는 불안정성 등이 그동안 제 마인드를 점령하고 있었으니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들 수밖에요.    

  

직원들이 이 연구원에 대해 목이 마르도록 칭찬한 것들이 어쩌면 제가 그토록 철저하게 숭배해온 ‘능력’의 진짜 정체가 아니었을까요? 회사생활 초기에 이런 멋진 굴욕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요리 가이드라인 #3] 나의 이기주의를 버려야만 한다. 좀 더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항상 자신을 다른 사람의 처지에 바꿔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 난 더 자제심이 있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난 지고 마는 거다. 난 자신을 훈련시키고 단련시켜야 한다. 매일 매일이 크고 작은 모든 잘못과 인간의 불행을 반사하는 정직한 거울이다. 매일매일 향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다른 사람의 증오, 혐오로부터 구하지 못할 것이다. ―전혜린(작가)     


회사는 업 앤 다운이 은근히, 아니 참으로 많은 곳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있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회사는 하루하루가 문제로 시작해 해답으로 끝나야 하는 곳이지요. 문제라는 게 또 어디 업무에만 한정되어 있던가요? 사람들이 모인 곳인 만큼 부하, 동료, 팀장 등 직위 막론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엎치락뒤치락 지지고 볶는 등 잘 조율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온갖 문제들이 씨줄날줄 겹겹이 쌓여있는 회사란 곳에서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건 당연한 거지요.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드러낼 것인가’입니다. 

      

“자-알 드러내야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잘 드러낼 건가요? 그냥 하면 되는(just do it) 건가요? 무턱대고 자-알?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아니, 그동안 신경을 쓴 적이 없어서 그렇지 이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는 능력을 똑바로, 제대로 발휘하는 방법을 익히고 배워야 합니다. 회사 안에서 미아가 되거나 회사에서 쫓겨나 고아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이쯤에서 성공학 대가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의 발언을 살짝 뒤튼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것을 권합니다. “만일 내가 경영자라면 나 같은 사람을 승진시키겠는가, 아니면 좀 더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을 승진시키겠는가?” 여러분은 자신 있게 “물론, 저를 승진시키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얘기가 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 같나요? 좋습니다. 우리 능력이고 실력이고 재주고 천재성이고 다 잊어버립시다. 그저 일에 대한 마인드로만 주제를 좁혀서 생각해보지요. 일을 하긴 하는데 잘하고 싶고, 그걸 통해 인정도 받고 싶다? 그럼 불(火)이 아닌 물(水)이 되면 됩니다. 물은 장애물이 없을 때는 잘 흐르고 장애물이 있을 때는 잘 흐르지 않지요.      


눈에 띌 만한 대단한 것을 찾으려고 애를 쓸 필요 없습니다. 상식을 갖고 접근하면 됩니다. 노하우 같은 것도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단순하고 당연한 게 해답입니다. 이번 편을 시작할 때 알려드린 대답 기억하지요? 그것을 따르면 된다는 겁니다.    

 

있는 듯 없는 듯묵묵하고 진득하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자신이 말단 사원이든 팀장이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남의 눈치 볼 것도 없고 남들을 향해 나를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가 말했듯, 자신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거나 거기에 연연하지 마세요.      


보상을 기대하거나 계산해가면서 일하지 말고, 일의 결과(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에 대해서는 스스로 보상받도록 하세요. 대박을 기대할 시간에 소박을 조금씩 쌓아나가세요.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스컨설팅의 한근태 대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대박이란 말을 잘 쓰는 사람은 대부분 대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대박이란 없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쌓여 대박이 되는 것이다. 매번 삼진을 당하면서 언젠가는 홈런을 치고 말겠다고 있는 힘껏 치는 사람보다는 팀 승리를 위해 매번 성실히 작은 안타를 만드는 사람이 팀에도 유리하고 이런 사람이 대성할 수 있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혹은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하세요. 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정신 나간 또라이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본받을 만한 행동이지만 아무나 쉽게 못하는 행동을 해보란 얘기입니다. 소위 성공의 역설(paradox of success)이란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자신이 밝게 빛나면 주변은 상대적으로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빛나지 않는 길을 택하세요. 그럼 주변이 밝아질 겁니다. 물론 자신도 덩달아 밝아지게 될 테니 걱정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을 외면할수록 주목받게 되는 법입니다. 자기만의 길을 욕심 부리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면 회사가 당신에게 욕심을 갖게 될 겁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수록 회사는 정확히 반대로 당신을 대단하게 생각할 겁니다.     

  

“나보고 고작 이런 것 따위나 하고 있으라는 거야 뭐야?”라고 따질 시간이 있으면 ‘고작 이런 것’이라고 간주한 그 일부터 올인해보세요. 복사든 커피 심부름이든 회의실 청소든 신문 스크랩이든 서류 배송이든 책상 정리정돈이든, 허투루 볼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노하우란 게, 실력이란 게 별건가요? 단계적으로 따졌을 때 말단이 해야 할 작고 사소한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 보세요. 합리적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지도 말고, 감정적으로 어떠한 불평불만도 제기하지 말고 말이지요. 회사가 여러분을 골탕 먹이려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에게 ‘고작 그런 것 따위’나 하라고 했다면 거기엔 분명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자신이 이것에 어떻게 대응해나가는가, 입니다.        


[요리 가이드라인 #4] 지금 하는 일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좀 눈에 띄는 일을 했다고 해서 성취라고 착각하지도 마라. 그 안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저널리스트)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는 것 같다고요? 자신의 실력을 좀 더 알아봐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요? 자신은 이미 팀장급, 아니 임원급의 실력인데 회사가 등잔 밑이 어두운거 같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회사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포인트는 그게 아닙니다. 회사가 잘못 판단하든 말든 우리가 그걸 섣불리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성공(큰 성공이든 작은 성공이든)을 꿈꾼다면,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과 잠재력을 믿는다면 굳이 미리 판을 엎을 필요가 없지요. 그런 가능성은 서서히 저절로 수면 위로 떠오르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회사 때려치울까?”란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해도 되는 순간은 정말이지 우리가 실제로 회사를 때려치우는 날입니다. 허무하지 않겠어요?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것이 다 날라 간다는 걸 생각하면? 분하지 않겠어요?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것을 놔두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오티스엘리베이터에 다니면서 저는 짧은 재직기간에 어울리지 않는 소중한 수확 하나를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라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이걸 보면서 회사를 때려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그나마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찍히고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인정받을까?  

   

이건 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을 겁니다. 질문 자체가 엉뚱하기도 하고, 사실에 입각해있지 않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능력이 있다고 회자되는 사람들의 회사 수명은 희한하게도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반면 능력이 없다고 회자되는 사람들은 의외로 목숨이 질깁니다. 절대로 쫓겨나거나 제 발로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전 편에서 소개해드린 제 1년 선배가 능력 있는 사람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일에 대한 자신감도 대단했고, 또 그만큼 일을 적극적으로 유도리 있게 처리했지요. 비록 덤벙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주변 팀원들과 사외 협력업체들과도 싹싹하게 잘 지냈고, 그 덕분에 일도 매끄럽게 잘 진행시켜 업무에 관한 한 제가 본받을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드러내기도 잘 드러냈습니다. 인정에 대한 욕심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셈이지요. 속으로 ‘나 이런 사람이야. 멋지지? 부럽지?’ 식으로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반면 같은 팀에 동료 여직원(저희 둘보다 더 위의 직급)이 한 사람 더 있었는데, 그녀는 신비주의 전략을 활용하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베일에 감춰진 사람인지, 도통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 잘하는지 못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지요. 일에 관한 한 자신감도 적극성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싹싹하기는커녕 꽤나 차갑고 냉정해 보였습니다. “대체 저 사람은 하루 종일 뭘 하는 걸까?”란 질문이 들 만큼 팀원으로서의, 아니 그냥 직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녀는 선배와는 달리 신비주의 모드를 유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어떠한 소스(source)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감도 인정에 대한 욕심도 그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요리 가이드라인 #5] 누군가를 정복할 수 있는 사랑은 강한 사람이지만, 자기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다. ―노자 

    

자, 여러분 팀에 이런 직원이 두 명 있다고 칩시다. 실제로 누가 인정을 받을 것 같나요? 은근히 헷갈리지 않나요? 둘 다 장단점이 있어 보이니 충분히 그럴 법도 합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면서(팀장도 아닌데 무슨) 제가 던진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인정을 받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인정을 받지 않게 돼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찍힌다면, 그는 그 좋은 능력을 어떻게 다루고 드러내야 하는지 몰라서 찍히는 걸 겁니다. 또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면, 그는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드러내야 하는지 알아서 인정받는 걸 겁니다. 요컨대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능력이 있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쪼다’일 가능성이 높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이 없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진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자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료 여직원은 실제로 일을 잘하는 걸로 이미 윗분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잘 몰랐을 뿐이지요. 가장 가까이 있던 선배와 저조차도 몰랐을 정도니 자기관리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얄미울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티 하나 내지 않고 전략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한 겁니다. 남의 눈이나 뒷담화는 가볍게 무시하며 군말 없이, 잔말 없이 묵묵하고 진득하고 꾸준하고 일관되게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얌체 혹은 깍쟁이같이 보이지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능력이란 그런 겁니다. 아니, 그런 거여야 합니다.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능력을 그렇게 이해하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홍보하기 위해서 회사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실은 그렇게 홍보하는 사람치고 진짜 잘난 사람들이 몇 없다는 건 경험상 다들 잘 알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잘났건 못났건 상관하지 말고 그동안 자기 자신에게 맞춰온 포커스를 일과 주변에만 맞춰보세요. 거기에만 한결같이 정성을 쏟으면 그 정성 저절로 다 알려지고 보답 받습니다. 직원들을 착취하는 악독 회사가 아닌 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자신의 잘남이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왜 그리도 포커스를 자기 자신에서 일과 주변으로 전환하는 게 쉽지 않은 걸까요? 남을 의식해서입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현재 수준과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지요. 남보다 앞서나가는지, 남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는지, 남보다 많이 아는지, 남보다 더 스킬이 뛰어난지 등 모든 판단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 아닌 남에게 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까요?    

  

“난 그런 거 기대한 적 없는데? 그냥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라고 억울한 심정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해나가면 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보다 못난 게 없는데 이런 일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거든?”이라고 말하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씀드릴까 합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 일 안 하면 결국 바보 꼴 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지요. 남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여길 테니 말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자신의 감정과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까지는 좋은데, 동시에 ‘나는 무척 연약하고 쉽게 상처 받는 사람’이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모두에게 알린 거나 마찬가지니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홍보하려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미성숙한지를 세트로 홍보한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무 말 안 하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게 멀리 내다봤을 때 훨씬 남는 장사의 홍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나 하고 있다고 하는데, 자신이 적어도 10년, 20년 회사생활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있네, 없네 말하는 건 난센스입니다(안타깝게도 알고 싶어도 알 수도 없지요). 지금이야 한 그루의 나무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판단할 거리나 근거, 자격 자체가 있겠습니까? 먼 미래에 그 나무가 하나둘 자라고 모여 숲이 되면 그때서야 그럴 자격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요? 그래서 당장은 우둔해보이더라도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거고, 기다리면서 자신의 내공을 저장해나가야 하는 겁니다. 거기에서 기회라는 게 생겨나는 거고, 안목이라는 게 나오는 거니까요.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시시한 일이 됩니다. 동시에 여러분 자신도 시시한 인간이 됩니다.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신이 하고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요? 주변 사람들은 그런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물론 ‘시시한 일을 하는 시시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아니, 그렇게 낙인찍겠지요.      


[요리 가이드라인 #6] 진정한 차이, 그것을 아는 자가 승리한다. ―마사 발레타(The TrendSight Group 창립자 겸 CEO)  

   

시시한 일, 시시한 인간 하니까 대학생 때 했던 가수활동이 떠오르는군요. 우연한 기회에 가수 선발 오디션에 합격한 저는 하루빨리 가수로서 무대 위에 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수가 되었다고 바로 무대에 오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우선 앨범부터 내야지요. 그런데 앨범을 내려면 뭘 해야 하나요? 아무리 천재적인 노래 솜씨를 갖고 있다 해도 기본적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고, 그걸 통해 다듬어진 실력으로 녹음이란 피 말리는 단계를 밟아야 하지요. ‘투덜이 스머프’가 별명이었던 전 이 두 가지 관문을 무척 귀찮아한 나머지 거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허구한 날 투덜대면서 농땡이 쳤습니다. “연습? 녹음? 다 시시해. 어서 날 무대로 보내라고. 아주 끝내주고 올게.” 이런 마음가짐이었다고나 할까요.     


저희 팀의 리더는 저와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그래서 리더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 한마디의 불평이나 짜증도 없이 하는 데까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더군요. 투덜이? 기분파? 이런 건 애당초 그의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가 연습과 녹음을 결코 귀찮거나 시시한 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수의 길을 선택한 이상 연습이나 녹음은 너무나 당연했던 거고, 그러니 그 둘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거지요. 그는 자신을, 자신의 일을, 자신의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자신의 수준을,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어차피 하기로 했고, 해야 할 일이라면 ‘반복’을 즐기자”는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요? 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인기나 명예 따위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스케줄에만 온전히 집중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지겹고 짜증나더라도 매일 세수하고 양치질하듯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좋아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던 거겠고요. 언젠가 프레인의 여준영 대표가 같은 맥락의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볼까요?

     

일을 그만둔다면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일을 해야 한다면 반복을 즐겨야 합니다. 반복은 ’피로’를 야기하는 독이기도 하지만 ’전문가’를 만들어 주는 약이기도 하지요. 능력 있는 사람은 반복이 주는 피로에 지쳐 중도에 하차하지 않습니다. 반복이 주는 스트레스를 매니지(manage)하는 것 자체가 아주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안팎에서 혁신이니 창조니 온갖 머리 깨지는 말들이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힙니다만, 결국 요점은 간단합니다.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를 따라가라는 것. 회사생활은 대회(contest)가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누구보다 뒤떨어졌다고 풀이 죽을 것도 없습니다. 진정 회사 안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정말 오래 가는 직원으로 남고 싶다면 자신이 눈앞에 주어져 있는 걸 묵묵히 하고 있는지, 거기에서 만족감이 오는지 유심히 지켜보며 업데이트해나가세요(이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겠지요). 덤으로 따라오게 되는 보상은 둘째 문제입니다. 우리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라는 거지요. 그건 우리의 몫이 아니니까요.     


삶이 어렵고 힘겹다 해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겪다 보면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알래스카의 혹한도, 열대 지방의 무더위도 살다 보면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견딜 수 없는 순간을 견디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바꾸어 버린다. 둘째,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바꾼다.    

  

『아내가 결혼했다』란 소설에 보면 중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혹시 이걸 보면서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이 연상되지는 않았나요? 자,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회사는 도저히 더 이상 못 다니겠다”며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오겠습니까? 아니면 “에이, 인생 뭐 있어? 다 그렇고 그런 거지”라며 마음을 편히 가다듬겠습니까? 고냐 스톱이냐, 스스로 잘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전자를 선택한다 해서 실패했다 혹은 실패한다고 볼 수도 없고, 후자를 선택한다 해서 성공했다 혹은 성공한다고 볼 수도 없으니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지요.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전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후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만큼 자기 컨트롤을 잘해야 후자를 해낼 수 있다는 거지요.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요? 독종이란 남에게 독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독한 사람이라는 말.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말을 했다면, 저는 감히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회사는 사라져도 인내심은 영원하다’고.     


명셰프의 30초 요리팁 |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    

“흔히 젊은이들이 '이까짓 것'이란 말을 쉽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이까짓 것을 못하는 사람은 큰 것도 못하는 법이고, 상사도 못 미더워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작은 것 큰 것 가리지 않고 성실히,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주어지게 마련이지요.” 


『닥터쿡, 직장을 요리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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