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셨습니다. 이번 편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으셨지요? 그 어느 편보다도 지루하고 짜증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하고 진득하게라니, 내가 기껏 이런 말이나 들으려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줄 알아?” 하면서 항의하는 분들도 있겠고, “그냥 입 닥치고 회사에 뼈를 묻는 마음으로 충성하라는 거 아냐. 고렇게는 못하지!” 하면서 과격하게 시위를 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전자든 후자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솔직히 저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으니까요.
“꼭 해보지 않은 사람이 남에게는 하라고 권하지. 참, 쉽죠-잉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쉬우면 너부터 해봐.” 그 말, 겸허하게 인정합니다.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제대로 뭔가를 묵묵하게, 진득하게, 꾸준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후회 때문에 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해서 더더욱 묵묵하게, 진득하게, 꾸준하게 말씀드리는 걸 겁니다. 쉽다고 생각한다고요? 천만에요. 그게 쉽다고 생각했다면 제가 왜 회사를 계속 다니지 못했는지(또 계속 다녔다 하더라도 왜 성공 가능성이 낮은지)를 설명할 길이 없겠지요.
저는 이번 편을 쓰는 내내 사람들이 ‘기껏’ 혹은 ‘고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묵묵함과 진득함이 정말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실천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항목들일까?’ ‘능력이 출중하면 묵묵함과 진득함은 좀 뒤로 밀어놔도 되지 않을까?’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조건들 중 묵묵함과 진득함은 몇 위정도 될까?’ ‘묵묵함과 진득함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직원의 앞날은 과연 어떨까?’ 요컨대 저는 여러분과 제가 ‘묵묵함과 진득함은 겉으로만 있어 보이는 그렇고 그런 덕목에 불과한 걸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같이 찾고 공유했으면 했던 겁니다.
저는 이번 편에서 ‘능력’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나의 반면교사로 삼고 싶었던 거지요.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신봉해마지 않는 능력의 진짜 의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능력을 보고서 작성능력이나 PT 능력, 영어능력, 분석력, 추진력, 팀워크 등으로 간단하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 그래도 되는 건가 묻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회사를 다니면서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업무와 관련된 자기계발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데 그게 과연 성공의 지름길인가, 묻고 싶었습니다. 정말이지 다들 능력, 능력, 능력 하는데 그 놈의 능력이란 게 대체 뭘까, 한 번쯤은 냉정하게 돌아보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저는 능력의 베일을 걷어내는 데만 8년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제가 능력의 정체를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소화했다는 건 아닙니다(만약 그랬다면 회사를 좀 더 오래 다녔을 지도 모르지요). 단지 그걸 살짝 엿보기는 했으니 지금은 그 맛을 조금씩 음미해가는 중이다, 라고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더불어 그것이 비록 꽤 쓰긴 하지만, 의외로 단 맛도 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See the Unseen
저 또한 여느 직장인들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보고서 작성능력이나 PT 능력, 분석력, 추진력, 팀워크 등을 향상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했습니다. 그 덕분에 회사에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더 높은 수준의 프로젝트도 진행해보고, 나아가서 능력을 구성하는 또 다른 다양한 요소들을 발견해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는 등의 유익한 시간을 보냈지요.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과 정성을 이런 거에 들이부어도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사라지질 않더군요. 왠지 이런 것들 너머에 제가 찾지 못한 뭔가가 더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계속 들었다고나 할까요.
있기는 ‘개뿔’, 뭐가 있겠어요.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착각만이 있을 뿐이지요. 그러한 ‘멋지구리’한 능력들을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갖추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단순논리 말입니다. 여러 가지 능력들을 종합선물세트로 갖춰 매 순간 “짠!” 하고 등장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는 단순사고 말입니다. 저는 이런 환상을 고이 간직한 채 무작정 달렸던 겁니다. 골 지점이 나오기를 기대했냐고요? 그럼 제가 이유도 없이 괜히 달렸겠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땠냐고요? 골 지점이 아닌 골 지점의 신기루만 주구장창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체 제가 뭘 잘못했던 걸까요? 전 그저 회사에서 먹힐 만한 공식에 충실했던 것뿐인데, 이게 제 불찰이었던 걸까요? 여러분도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요? 이거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거 아니냐고요?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장담컨대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앞으로 그럴 기회는 질리도록 많이 생길 테니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쯤에서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능력은 ‘기술’이 아닙니다. 능력이 만약 기술이라면 기술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회사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겠지요. 다시 말해 앞에서 언급한 능력들을 많이 갖춘 사람이 회사에서 성공할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어디 그렇던가요? 그런 능력들을 아무리 많이 갖춰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쌔고 쌨습니다. 능력을 기술이라고 여기는 한, 앞으로도 쌔고 쌜 것 같습니다.
능력은 노력이다.
회사가 눈여겨보는 건, 아니 회사를 떠나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건 능력이라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하나의 ‘본질’입니다. 눈에 훤히 드러나는 능력이 아니라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는 능력, 화려하고 삐까뻔쩍한 능력이 아니라 수수하고 평범한 능력, 굵고 짧은 능력이 아니라 가늘고 긴 능력, 결국 능력을 오래도록 지탱해주는 능력에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뭐냐고요?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잊어버리는 능력, 바로 노력입니다. 너무나 단순해서 무시해버려도 될 것 같은 진실이지요.
“그게 다야? 왜 이리 싱거워?” 아, 그렇게 말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능력은 단순히 그냥 노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엄연히 ‘일관된’ 노력을 말합니다. 꾸준하고 진득하고 일관된 묵묵함이 녹아있는 노력. 이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절대 한 눈을 팔거나,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의 말에 흔들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지지 않는 한 그저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혼자서 걸어가지요.
바보 같은 소리라고요? “그게 능력이라면 개나 소나 다 성공했겠다”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 능력 잘 유지하고 다듬는 데 올인해왔다면 많이들 성공에 가까이 다가가 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예상과 달리 결과적으로 그 수많은 개와 소가 다 성공하지 못했다는 건 뭘 말해주는 걸까요?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를 말해주는 거 아닐까요? 그 사실을 간과했거나, 전혀 몰랐거나, 알긴 아는데 실천에 옮기지 않았(못했)거나.
물론 여전히 “그런 능력은 개나 소에게 주던지 해라.”라고 하면서 자기만큼은 절대 개나 소의 대열에 낄 일이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토록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보고서 작성능력이나 PT 능력, 영어능력, 분석력, 추진력, 팀워크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쌓이게 되는지 한번 생각해보라고요. 남과 차별화될 정도로 앞서나가기 위해 여러분은 어떻게 했던가요?
열심히? 물론 그렇겠지요.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열심히만 하면 되던가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다들 잘 알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역시 ‘하게’ 형제들이 또다시 등장하지요. 묵묵하게, 진득하게, 꾸준하게, 일관되게. 열심히 하는 것만 갖고선 안 된다는 겁니다.
회사생활이 딱 이렇습니다. 누구나 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능력들을 쌓는 데 열심입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아니 불행하게도 그게 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나 할 만큼 했거든? 내가 갖고 있는 능력들 좀 보라고. 인정받을 이유, 그걸로 충분하잖아.” 암, 인정받을 이유 충분하고말고요. 대신 그것만으로 오래오래 인정받겠다는 염치는 아니겠지요(물론 그것만으로 오래오래 인정받을 수도 없긴 하지만)?
혹시 그런 염치없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그 염치를 별로 버릴 생각이 없는 분이라면 200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괴짜 과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가 한 강연에서 한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아마 그 염치, 굉장히 실리적으로 재조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뇌 회전이 빠르다는 건 연구자에게 오히려 마이너스다. 일본에는 ‘수재병’이란 말도 있다. 수재는 중요한 논문을 금방 이해하고 그걸 발전시키기 때문에 빛이 난다. 하지만 진정한 연구는 그 너머에 존재한다. 난제에 부딪히면 수재는 ‘어렵네’ 하고 그 옆을 돌아본다. 그랬다가 ‘어, 이건 내가 할 수 있겠네’ 하면서 옆길로 새고, 또 어려운 데 부딪히면 다시 옆길로 샌다. 그런 사람들은 대학원생까지는 활약하지만 조교수 급이 되면 점점 사라진다. 조교수 때 가서 잘하는 이는 조금 느리다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꾸준히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 좋은 연구자로 발전했다.
회사에서 별(임원)이 되고 싶다고요? 아니, 그 정도로는 성에 안 찰 테니 정정하겠습니다. 별 중의 별(CEO)이 되고 싶다고요?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오늘부터 두뇌 안에 에너자이저를 꽂아 넣으세요. 적어도 묵묵하게, 진득하게, 꾸준하게, 일관되게 일을 해나가려면 그런 ‘무식한’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 일하다가 “에라이 모르겠다. 딴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하면서 손 놓아버릴 건가요? 일 년 이 년 일하다 “나 원, 이 회사 진짜 인재를 못 알아보는구만. 날 알아주는 회사로 가야지, 안 되겠어.”라고 하면서 작별을 고할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난 성공을 원한다고, 성공! 직접 회사를 차려 사장직에 바로 오르겠어.”라고 하면서 자칭 성공을 만끽하기라도 할 건가요?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이런 생각을 갖고 회사 안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뭐, 사실 물어볼 것도 없이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마인드로는, 그런 자세와 태도로는 세상이 두 쪽 나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어디 회사나 조직에만 적용되는 얘기인가요? 설마 그럴 리가요. 우리가 매일매일 헤쳐 나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바로 이 묵묵하게, 진득하게, 꾸준하게, 일관되게라는 성공원리가 적용되는 실험실이지요.
노벨상을 목표로 하지 말라.
마스카와 교수는 노벨상을 수상하고 난 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뭐 이것이 노벨상에만 해당되는 얘기겠습니까? 여러분처럼 직장인인 경우 이 말을 이렇게 바꿔 이해하면 되겠지요. “연봉을 목표로 하지 말라.” “칭찬이나 인정을 목표로 하지 말라.” “CEO를 목표로 하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하지 말라.” 다 같은 맥락의 얘기입니다.
결국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 여러분의 손 안에 주어져 있는 일, 원하지는 않았지만 맡겨진 일을 목표로 하라는 겁니다. 그것도 묵묵하게, 진득하게, 꾸준하게, 일관되게라는 꼬리표를 단 채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연봉이든 명예든 CEO든 성공이든 저절로 알아서 따라올 겁니다. 적어도 여러분이 스스로가 잘났다고 큰 소리 쳐대며 자랑질을 하거나, 왜 인정을 안 해주냐고 회사에 보이콧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뤄가는 것보다는 훨씬 똑똑하고, 남는 장사로 보이지 않나요?
따지고 보면 다 주객이 전도돼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참을성이 없습니다.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일과 성공 사이에 훤히 드러나 있는 간극을 메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애처럼 회사에 대고 투정을 부립니다.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날 뭘로 보는 거야?” “인재를 인재로 대우하지 않네.” “회사가 이렇게 통이 작아서야.” 그렇게 한 결과 뭐가 달라지던가요? 회사가 “아, 우리가 그동안 인재를 몰라봤군요.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그 날부터 자신을 인재로 대우해줄까요? 물론 웃자고 한 말이긴 합니다만, 마냥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의외로 실생활에서 많은 분들이 속으로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 같으니까요.
마인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쉽지만 성공이 우선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일이 우선이지요.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게 우리가 차차 해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메워 나가냐고요? 잘 아시잖아요. 그에 대한 해답은 이미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언급해드렸지요.
묵묵하게 + 진득하게 + 꾸준하게 + 일관되게
일전에 한 물리학자가 마스카와 교수에게 “솔직히 과학하는 사람들은 노벨상 받는 게 꿈이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전혀 안 그랬다. 연구를 하다 보니 노벨상을 받는 것이지,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더군요. 우리가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그가 “노벨상 수상이 그다지 기쁘지 않다.”고 한 기자회견에서 말했듯이 우리에게도 언젠가 “성공이 그다지 기쁘지 않다.”고 말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 그럴 것 같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