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면 모르겠고.
연희동에서 음식을 건네고 넘어오는 길이었다. 예보대로 소나기가 왔다. 콜을 종료하고 곧장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비가 오면 절대 운행하지 않는 것. 스스로에게 부과한 명령이었다. 오토바이는 비가 안 맞게 들여놓고 헬멧을 닦았다. 머리를 터는데 룸메이트와 마주쳤다. 룸메이트는 비가 오는 날에 벌이가 더 좋지 않냐 물었고 난 그만큼 더 위험하다고 답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회사에서는 비가 오면 오백 원을 더 준다고 했다. 아까 연희동에서 넘어오며 울리는 휴대폰 알림은 매한가지. 마트 따위에서 할 법한 <세일 행사!> , <초특가 할인!> 같은 촌스러운 문구로 건당 오백 원을 더 주겠다며 배달원들을 유혹한다. 비가 올 무렵부터 슬금슬금 콜이 쌓이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하나 둘 퇴근했기 때문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하면 근처에 나가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사람들까지 죄 배달을 시킨다. 평소 같은 경우엔 그러지 않았을 사람들까지 말이다. 비 맞기는 싫고 만들기는 귀찮고 해서 만만한 건 배달이다. 매일같이 비가 오지도 않으니까. 까짓것 비 오는 날이 얼마나 되겠냐 싶어서 그렇다. 배달원의 성향은 둘로 갈린다. 비가 와서 추가금을 더 받는 것에 기뻐하는 사람과 일을 접고 조용히 들어가는 사람. 후자는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들어가는 사람이 더욱 많다. 오백 원이 작은 돈이라기보다 우천 시 위험도에 비하여 오백 원은 작은 돈이라 그렇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찌감치 일을 접고 들어와 파와 양파를 썰어 간단히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내 모습에 관해 절실하지 않다고 꾸짖거든 이 생이 절절하여 그렇다고 할 거다. 본인은 위험하니 퇴근해놓고 배달음식을 시키는, 그런 몰염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게 몰염치한 일이라 무턱대고 여기던 때도 있었다.
어느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는 집에 먹을 게 마땅치 않아 시켜먹자고 했다. 요즘 세상에 배달음식으로 하루 식사를 다 때우는 일이야 흔하니 괜찮다 했다. 그날 바깥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날씨를 확인한 친구는 안 되겠다며 가장 가까운 곳에 일부러 나가 포장을 해왔다. 배달기사님들 이런 날에 오시려면 위험하잖아. 맞는 말이다. 배려라면 모르겠고.
많은 사람들이 비 오는 날에는 운행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 역시 많다. 반면 배달의 수는 더할 나위 없이 많아서 서로가 경쟁하며 괜찮은 콜을 잡지 않더라도 건수를 채우기엔 여유롭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비가 와서 그 관계가 역전되는 날이면 가게에선 배달원이 잡히지 않아 안달하고 더불어 고객들 역시 배달이 너무 늦어 불만이 생긴다. 그러나 건수가 많아도 맘 편히 달리지 못하는 게 비 오는 날의 배달원이다. 그리고 그 값이 오백 원이다.
나중에 물어보니 비 오는 날에도 빠짐없이 운행하시는 어느 아저씨는 그래도 배달을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나아서 비 올 때 일하기로 결심한 이상 차라리 넘쳐흐르는 콜 중에 좋은 것 붙잡고 다녀야 비 맞는 보람이 있다고 한다. 오롯이 배달기사의 입장으로만 하는 이야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존중해야지. 빗방울의 가격만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삶도 있는 거니까.
그래도 이게 쌓이면 만만치 않으니 나도 비 오는 날 한 번쯤 일을 나가볼까 했다. 비가 올 때마다 쉬다니 맘 놓고 그러기엔 당장 눈에 꽂히는 하루치 벌이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고민은 비 오는 날마다 계속됐고 또 어느 비 오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뒷바퀴로 하수구 맨홀을 밟고 거의 자빠지다시피 하고서야 깨달았다. 쭈뼛서는 머리칼을 빗물로 훔치며 나는 '아서라. 나는 덜 벌고 살련다.' 다행히 다치지 않은 몸과 오토바이를 바로 세워 조심히 돌아왔던 것이다.
그 후로도 친구는 여전히 비가 오는 날에 배달을 시키지 않았다. 친구의 생각이 어느 정도 옳다고 봐서 나도 비 오는 날에는 가급적 배달을 시키지 않고 챙겨 오는 게 습관처럼 굳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행동에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의 벌이를 생각지 않고 선심 쓰듯 하는 행동이 배려라고 감히 말하는 걸까? 의문에 대해 결정을 내린 건 '누군가 나를 위해 다칠 수 있기보다 내 마음이 편한' 방식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래 역시 맞는 말이다. 이게 배려라니 그건 정말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