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기가 어렵던가요.
일은 하나의 글에서 시작됐다. 음식을 빼먹는다는 일이 심심치 않다고. 고객들은 나날이 예민해졌다. 어떤 배달원은 시류에 편승하여 참 돼먹지 못한 일을 하고 다녔다. 나는 그런 사람이 일부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배달일이라는 건 업무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그마만큼 쉽게 느껴지는 일이고, 합리적 추론을 따라가면 그래. 고객의 음식을 쉬이 빼먹을 시간도 충분하니까.
거긴 연남동에 있는 탕수육을 주로 파는 가게였다. 사장님은 배달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했고 결코 무시하지 않았으며 종종 이쑤시개에 남은 탕수육을 꽂아 기다리는 동안 한 점 하라고 마냥 상냥했다. 땀을 삐질거리며 잔뜩 절여진 머리가 간지러워 잠시 헬멧을 벗을 때 기꺼이 건네는 탕수육 한 점이 참 고마웠던 것 같다.
그러나 사장님은 어느 때보다도 더 곤란한 듯, 참 오래도록 꺼리던 말을 마침내 꺼내어놓듯이 말했는데 요즘 말이 많은 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어떤 배달원들이 음식을 빼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고객에게도 가게에게도 몹쓸 짓이라는 걸 알지만 내가 선량하고 거짓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 참담했다.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일과 소속된 자들에게 응당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나설 수 없는 것. 고민을 하다 대답을 한 게 고작 이만큼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러지 않지요.
그렇겠죠? 사장님은 씁쓸한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을 믿기에 이미 많은 잘못이 밝혀졌고 그로 인해 인류애가 뚝뚝 떨어져 일말의 기대조차 않는 것은 너무나 슬펐다. 인간성을 유지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사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일인 게 맞는 사회인가.
배달을 하는 입장에서 배달을 시키는 것에 이상한 죄책감이 들지언정 귀찮음은 때로 인간에게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지배적인 때가 있는 바, 나 역시 종종 배달을 시켰다. 룸메이트가 주문한 치킨이 오고 하필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내가 그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우리가 시킨 순살 치킨 한 조각을 빼내 먹었다.
내가 그리고 집에 먼저 들어와 그 사람을 보았을 때, 비에 젖은 외투와 헬멧을 보았을 때. 그러나 그를 나무라야 했다. 우연히 다 봤습니다. 스스로 더 잘 아실 거예요. 나는 씨앗 같은 인류애를 그러모아 믿는다. 이후로 그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고.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다행히 후진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말이다. 증명할 수 없지만 단 한 번도 누구의 음식을 손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건을 끝내고 다른 누군가의 다급한 공복을 처리해주어야지 할 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 자의 소유인 걸 어째서 강탈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다.
들킨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변명을 했다. 배가 고파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웃기지 마라. 자기 욕심을 놓지 못해서겠지. 벌고 싶고 그러나 쓰긴 싫고 한 이기적인 마음이 이런 괴물을 낳는다.
나는 다만 부끄러움을 아느냐 묻고도 싶다.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부끄러움을 알아야지 윽박지르고도 싶다. 부끄러울 일을 하는 인간들에게 진심으로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묻고만 싶다. 진정 스스로 처절해질 필요가 있느냐고. 우리가 인간이길 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