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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8. 2021

부업과 본업

부디 안전운행하세요.


 어느 아침, 한 케밥집 앞에서 픽업을 기다릴 때였다. 아마도 다른 지역으로 향할 배달원이 먼저 와서 팔짱을 낀 채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는 젊었고 나와 같은 모델의 오토바이를 끌고 다녔다. 그나 나나 독특한 색의 모델이었기에 분명 서로를 인식하고 있었을 거라 장담한다. 홍대와 마포, 상수와 신촌을 두루 다니며 배달일을 하는 동안에 수없이 마주쳤다. 그는 나보다 배달에 있어서만큼은 더 전문가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대의 휴대폰과 헬멧에 달린 무전기 따위가 보기에 그랬다.


 그는 그 케밥집 앞에서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무리와 무전하는 듯했다. 훔쳐들을 생각은 없었으나 이어폰마저 마땅히 마련하지 않은 초보자인 내가 쉴 새 없이 떠드는 그의 말을 듣지 않기란 어려웠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그의 하루는 이미 70건의 배달을 쳐냈고 그게 평소보다 적은 양이며 앞으로 점심과 저녁의 피크타임만 따져도 150건은 가뿐히 넘길 것이란 말이었다.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저 남자는 도대체 언제 잠에 드는 걸까. 배달 경력이 사흘쯤 된 내가 하루 종일 해도 30건 남짓이 한계라는 걸 생각한다면 그가 세상에 이바지하는 할당량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수수료를 떼고 3천 원에서 3천5백 원을 받는 일이니 최소로 잡아도 20만 원, 그의 예상대로 하루가 잘 굴러간다면 약 45만 원가량의 일당을 챙길 것이다.



그게 평소보다 적은 양이라고?


 어질어질한 돈의 숫자에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나는 비결이 뭘까 생각을 했다. 그날 종일 생각을 한 것 같다. 사람들이 배달에 뛰어드는 계기는 보통 직장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급여를 받으며 종일 버티다가 부업으로 시작할 뿐 아닌가 싶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다소 충격이었다. 진심이거나 전력을 다하거나 하면 어떤 일이든 벌이가 넉넉해질 테다. 그러나 삽시간에 바뀔 수 있는 일이 어디 흔한가. 내가 너무 안이하게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 여긴 역량과 능력이 전부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같은 날 오후, 이대에서 신촌으로 내려오는 오거리 앞이었다. 신호가 걸려 멈춰 있었고 오토바이 하나로 차선을 모조리 차지하진 않기 때문에 비어있는 내 곁 공간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붙었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자였다. 난 궁금했다. 베테랑 같은 이 남자가 오전의 젊은 배달원보다 많은 건수를 쳐낼지, 벌이가 심심치 않을지, 아니 그보다 먼저 혹여 그에게 가정이 있다면 가정을 꾸리기에 이 일이 모자라진 않은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스스로의 신념이 무색하게 무례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많이 하셨어요?" 모든 걸 압축한 질문에 남자는 조금 놀란 듯했다. "이제 스물넷다섯 정도? 오늘은 평일이라 얼마 없네. 학생이에요?" 아뿔싸, 그마저도 나의 하루치다. "학생은 아니고 어쩌다 하게 됐네요. 아직 미숙해서 다른 분들은 하루에 얼마나 하시나 궁금했어요." "숫자에 집착하지 말아요. 주말까지 하면 또이또이야. 무조건 안전하게 해요. 부업으로 하는 거면. 하나 더 하려고 목숨 걸지 말고. 그럼 안전 운전해요." 신호가 바뀌고 우린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배달일을 하며 느낀 건데 하루 종일 평균적으로 잘 팔리는 것을 따지면 토스트와 커피다. 간식으로 좋고 빠르고 그나마 저렴하고. 유독 학생이 밀집한 지역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며칠 뒤 젊은 남자를 다시 만난 건 중국인까지 몰려 바글바글한 토스트 가게 앞이었다. 그는 여전히 무전을 하느라 시끄러웠고 자신이 저지른 불법과 경찰을 따돌린 이야기를 하며 자랑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짧게 역주행을 하며 횡단보도로 진입했고 미묘한 타이밍으로 옆 골목으로 숨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요컨대 도로를 장악했다는 말이었다. 한심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공권력이 그마만큼 무능하리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말은 모조리 허세 거나 덜떨어진 사람의 허언이라 여기게 됐다.


 매일매일 지긋하게 시간이 쌓이고 내가 어느 정도 일에 능숙해진 뒤, 지나가는 다른 배달원들을 관찰하다 보니 실제로 위험하게 운행하는 사람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게임을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러다 크게 다칠 텐데 걱정을 들게 하는. 위험한 곡예 사이로 단 돈 백 원에 목숨이 늘어날 오락실에 온 듯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리고 언젠가 오토바이를 정비하러 정비소에 들렀을 때 내 눈에 익숙한 오토바이가 사고로 전면이 부스러져 한편에 놓여 있었다. 그는 장악한 것일까, 장악당한 것일까.





 잠깐 길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부업이라면 안전운전을 우선하라던 중년의 남자는 아주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내가 배달일을 관두고 나서야 만났다. 내가 가장 처음 배달을 시작해볼까 고민하던 바로 그 닭꼬치 집에 픽업을 하러 온 모습이었다. 서로 놀라움과 반가움을 섞은 감탄사로 시작해 안부를 물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배달을 하다 관두었다는 나의 이야기. 여기가 오늘의 마지막 콜이라고, 토끼 같은 딸이 기다린다고, 집으로 얼른 갈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


 삶에서 거역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고 지배적인 돈이라는 숫자. 거기에 목숨 걸지 말라는 그의 말은 나에게 내내 안전을 쥐어줬다. 위험함으로는 늘 저승에 한 발 걸치고 안전을 우선하는 그가 결국 배달일을 하고 있다. 그를 일컬어 당신은 과연 돈에 거역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부업이라면 안전을 우선하고 본업이라면 안전을 뒤로한 채 내쳐 달려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당신에겐 지금 이 일이 부업이냐고 본업이냐고 묻고 싶었다.


 내 짧은 판단으로 그의 선택을 그리고 삶을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쉬엄쉬엄하니 벌이도 썩 나쁘지 않다는 그의 본업은 부끄러운 나의 부업이어서, 안전하게 끝났으니 다행이라는 그의 말에 닭꼬치를 따로 두 개 더 포장해 집에 가 드시라고 선물로 건넸다. "부디 안전 운행하세요." 하지 못했던 그때의 대답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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