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도 거점이 있을까

먹지 못하는 음식

by 박하


배달원들이 옮기는 음식은 보통 시급을 한참 웃돈다. 어느 시점부터 내가 일하는 시간의 급여 평균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계산되어 기준이 된 바 이전보다 배달음식을 시키기 훨씬 어려워졌다. 누군가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간편히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일은 값이 셌다. 그러나 보통 가난하기 때문이라거나 한 이유는 아니었다. 배달원들의 벌이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인 게 아니라 이 일의 형태에 있어 돈의 가치를 뚜렷하게 알기 때문에 섣불리 먹지 않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다. 김밥이나 편의점 도시락 같은 류의 식사를 했다. 더러는 픽업을 간 가게가 아주 간단하고 저렴한 음식을 판매할 때 더불어 구매하기도 했다. 주먹밥 같은 걸 파는 가게. 덕분에 돈은 잘 모였다. 적게 쓰고 빨리 먹은 뒤 그 시간을 아껴 한 건이라도 더 배달을 하면 내 끼니 정도야 충분히 웃돌 수 있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문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한참 동안 회사로, 고객으로, 가게로 응대를 하다 보니 이미 전달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규정 탓에 여러 번 거쳐야 통화가 되는 데 짜증이 일 즈음, 회사에서는 상황을 정리하여 내게 설명을 했다. 주문자가 학생인데 본가로 내려간 걸 까먹고 주소를 자취방에서 변경하지 않은 탓이었다. 환불이든 이용수칙상 환불불가를 내세우든 음식은 잘못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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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음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사에서는 번거로우시겠지만 배달원님이 폐기해주십사 부탁을 해왔다. 폐기란 무슨 단어일까. 의미 그대로 하자면 나는 음식물 쓰레기와 포장지를 분리수거하여 배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내용물은 숯불에 구운 불고기와 조리된 볶음밥, 냉면 등 둘 아님 셋이 넉넉히 먹을 양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먹어도 되는 걸까.


직접적으로 묻진 않았지만 회사의 공손한 태도를 보아 폐기라는 단어에 더해 그 번거로움은 '네가 먹어서 해결해도 상관없다.'는 의미였다. 나야 괜찮아도 이로 인해 지금 이 상황에 얽힌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거리가 먼 게 분명한 고객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이 양이라면 자기도 몇 사람과 둘러앉아 식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물며 돈을 각출하여 대표로 주문했다면, 환불을 받지 못할 때의 난감함과 다시 한참 기다려야 하는 저녁식사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 본인의 실수가 분명한 일이니 환불은 아마 안 되겠지.


다행히 배달대행 회사로부터 가게에 환불 요청을 하진 않을 것이다. 허나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좋은 리뷰를 기대하는 입장이라면 이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맛있게 먹더라도 가게에 참 맛있었어요 하기도 어려운 거라서. 반대로 내가 이 음식들을 사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다. 난 애초에 한 번의 식사에 이만큼 많은 돈을 지불할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어쩌지 윤리적으로 내가 이 음식을 죄 버리는 게 맞나.




난 음식을 먹기로 했다. 고객이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서. 그러나 고객이 먹지 못한다고 배달원이 먹지 못하는 음식일 수는 없다. 함부로 남의 음식을 빼앗는 게 아니다. 회사는 폐기해달라고 요청하기보다 어쩔 수 없으니 가져가서 드셔도 된다고 말해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주 정상적인 음식에 대하여, 잘 포장된 식사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자면 당신이 말한 번거로움은 내가 헛걸음을 한 것에 있어서만이었다면 어땠겠냐고. 이런 기분을 들게 만들었어야 했겠느냐고.


늦은 밤이라 마땅히 콜이 많지도 않았다. 오늘 벌이를 마무리하고 친구가 운영하여 다른 친구들 역시 함께 자주 모이는 가게로 향했다. 느닷없이 가져온 음식을 풀어놓고 몇몇 친구와 늦은 저녁을 했다. 아직 따뜻했고 그런대로 맛있었다. 뒤늦게 온 친구 하나는 자신이 일하는 족발집에서 오늘 팔고 남은 폐기라며 자투리 족발 한 접시를 가져왔다. 맛있었다. 오늘은 누구나 먹을 수 있지만 내일은 먹을 수 없는 것들 사이 이제 자정이 가까운 시점이었다. 젓가락질을 하는 손들, 맛있는 폐기를 먹는 얼굴들을 보며 생각한다. 과연 슬픔에도 거점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