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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25. 2023

선의에 호응하는 방법

카르마를 믿는 유대인.


다시금 방콕행 비행기를 예약하고서 카이로에서 사흘간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나는 그저 쉬고 싶었다. 정신적으로 피로했고 전날의 흥분이 가열차게 올랐다 떨어지는 바람에 후폭풍이 심했다. 생각해 보면 이집트는 대단한 역사를 지닌 나라였다. 클레오파트라에서 현재의 시간보다도 이집트가 탄생한 기원전이 더 멀 정도이니, 국가의 형태로 보낸 유구한 시절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본 곳은 기껏 샴엘셰이크와 다합, 시나이 반도 인근이 아닌 수도 카이로에 떨어진 이상 게으를 수 없었다. 생각이 미치자 게스트하우스를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저녁에 다시 날 데리러 온다는 와픽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기 위하여 현금을 얼마쯤 뽑았다. 대단한 관광을 할 각오는 없고, 그저 중심부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과연 이 나라가 내게 남길 인상을 재측정하는 시간이 전부일 것이다. 그래서 딱 그만큼의 금액만. 놀랍게도 저렴한 다합보다도 음식의 값이 훨씬 쌌다. 제대로 된 음식보다 길거리 음식의 기준만이라는 게 웃기긴 해도.


이집트, 카이로 (2022)


도시는 온통 모래빛이었는데 뜨거운 해까지 더해져 발색이 유연하지 못했다. 오직 푸른빛은 심어진 식물뿐이었다. 황무지와 사막에 근접한 도시는 인간이 푸름을 끼얹어야만 푸르를 수 있나 보다. 낯선 얼굴의 동양인은 어딜 가나 주목받았다. 적당히 사람이 많은 가게를 골라 알아볼 수 없는 아랍어를 읽어보려 노력하는데 다른 동양인 여자가 다가와 영어로 물었다. 이 메뉴를 읽을 수 있느냐고. 아니요 저도 몰라요. ‘어떡하지’ 무심결에 혼잣말을 뱉으니 한국인이냐고 다시 말을 걸어온다. 잠시 머리를 굴린 그녀와 나의 결과는 달랐다. 그녀는 직원에게 무작정 영어로 말을 걸어 주문했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메뉴판을 가리키고 엄지를 내세웠다. 잠시 왈가왈부하는 듯하더니 어느 아주머니가 큰 목소리로 ‘이게 최고야!’[-아마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하는 것 아닌가. 반으로 쪼개져 나온 두 개의 샤와르마를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바꾸어 먹었다. 내 것의 맛이 훨씬 좋았다.


카이로의 골목은 그런 일 투성이었다. 언어를 모른다는 것은 선의에 기대는 법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 위험하지 않으려거든 본인의 직감으로 선택하여 해결하는 것뿐이지만 그것도 결코 안전하다 말할 수는 없는 일들 말이다. 그녀와 난 서로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고 인생에서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만 서로가 무언가 깨달을 수는 있었을 것만 같다.


이집트, 카이로 (2022)


하루를 분주히 돌아다니고 온 뒤에 와픽은 한 시간이나 걸리는 본인의 집으로부터 차를 끌고 날 보러 왔다. 카이로에 머무는 사흘을 기꺼이 나와 지내겠노라 했다. 난 선의에 호응하는 방법을 잘 안다. 부담을 갖되 기쁘게 받는 것이다. 그가 말했던 자신의 카르마가 나로 인해 어디까지 쌓일지는 모르겠지만 꽤 넉넉한 양이 아닐까 하며. 그리하여 어디로 가고 싶냐는 말에 나는 피라미드도, 스핑크스도, 최고의 맛집도 아니라 오래되고 시끌벅적한 술집을 외친 것이다. 어느 나라의, 어디서든 볼 법한 아저씨처럼 와픽은 답했다. “최고의 술집을 데려가 줄게!”


음악이 없는 술집에 초대된 나는 시끄러운 공간을 일순 적막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외모였다. 시원한 맥주가 든 궤짝을 들고 다니며 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곧장 병뚜껑을 땄고, 즉시 돈을 받았다. 마치 스포츠구장에 온 것처럼 말이다. “어이! 그 녀석은 어디서 온 놈이야?” 주변 술꾼들이 거는 모든 말은 같은 말이었다. 나는 조금 큼직하게 외쳤다. “나는 한국에서 왔어!” 테이블마다 번갈아가며 건배를 청하는 사내들 탓에 난 얼큰히 취해버리고 말았다. 고양이와 담배와 함께. 최고의 술집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2022) - 자꾸 궁금해해서 냄새만 맡게 해주었다.


마지막 날 향한 한식당은 멀찍이 있었다. 그의 호의가 너무 좋아서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고, 계속 자신이 돈을 내려하기에 이번엔 절대 안 된다며 만류했다. 그래서 메뉴를 훑은 뒤 그가 좋아할 만한 구성으로 음식을 잔뜩 시켰다. 제육볶음과 구워져 나오는 삼겹살, 떡볶이에 돌솥비빔밥까지. 혹시나 먹지 않는 음식이 있을까 걱정하니 그런 게 없다고 한다. 알고 보니 와픽은 유대인이었다. 생각보다 이집트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다면서 이집트의 유대인은 뭔가 더 자유분방하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신실한 면이 있어 이렇듯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미덕이라고.


냉면은 먹어본 적 있어?

차가운 국수. 먹는 나라가 몇 없다고 알려진 차가운 국수는 이미 배부른 와픽에게도 흥미로운 음식이었던 것 같다. 나는 말을 바꾸기 전에 곧장 냉면을 하나 주문했다. 한국에서는 국수를 차갑게도 먹어. 못 믿는 투였지만 살얼음이 동동 뜬 냉면이 나오자 와픽은 사진을 찍느라 분주해졌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음식이라면서 그는 좋아했다. “몇 천년의 역사는 아무 의미도 없어. 어째서 이렇게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그에게 그건 아니라며 마구 웃고 말았다.



끝끝내 그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물담배 카페를 데리고 갔다. 좋은 식사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면서. 나는 이렇게 보답을 주고받다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시원한 물담배를 입에 물었다. 카르마가 어떻게 작용하든 나는 물담배처럼 이 기억을 흐트러뜨리진 않을 테다. 40도가 훌쩍 넘는 더위에 우리는 공항 앞에서 포옹했다. 좋아하는 술이 있다면 기억하고 다음에 반드시 사 오겠다며 강요나 다름없는 약속을 하니 그는 수줍게 조니워커 더블블랙이라고 했다. 어느 면세점에서나 더블블랙을 보면 와픽을 떠올린다.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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