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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l 14. 2023

오리지널 소주 바이브

드라마에서 봤어.


아부다비는 오랜만이었다. 중앙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 몇 번은 거쳐간 기억이 있다. 둥글게 말아 올려진 기둥 아래에서 나는 태국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너는 다시 가는 곳에 실망하는 경향이 있잖아. 아는 형의 연락은 무시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척하면 될 것이다. 몇 년 만에 다시 가는 태국인지, 얼마나 변했을지 알 수 없었다. 갱신하는 건 꼭 필요한 정보만.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방법은 그대로인가, 생활 물가는 얼마나 올랐나, 현지 유심 판매처와 요금제는 달라졌을까, 첫날의 숙소는 익숙한 거리로 딱 이틀만. 그게 전부였다.


비행기를 탈 즈음부터 이상야릇한 내음이 코 끝에 감돌았다. 맡아본 적 있는 특정 향신료의 향은 나라를 가늠케 한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마늘 냄새가 난다는 말도 나는 결코 놀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오래 머물었던 숙소는 그대로 있을까. 매일같이 갔던 식당은? 태국에서 스친 인연들이 꽤 많았다. 방콕에 도착하는 대로 안부를 전해야지. 이윽고 도달한 태국엔 뜨거운 공기가 가득이었다.


방콕, 태국 (2022)


나는 호객꾼 들을 피해 담배를 태웠다. 그맘때까지만 하더라도 태국에는 코로나 백신의 접종 증명서와 여행보험 따위를 요구해서 관광객이 없었다. 앞으로 3개월을 여기서 지내볼까. 관광객이 없는 건 나 같은 여행자에게 좋은 일이다. 간 적 없는 지역을 누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여행을 이어가는 여행자들이 제 몸만 한 배낭을 들고 카오산으로 가는 버스 앞에 진을 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베테랑의 유대감이 흐르고 있었다.


서글프게도 카오산에 사람은 없었다. 배낭여행자들의 메카라 불리던 명성은 코로나로 인해 절멸했다. 그 중심가에 있는 맥도널드가 폐업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나 될까. 하루에 천오백 원짜리 숙소는 지옥 같았다. 더위와 함께 병이 들끓을 것 같은 폐가에 열여섯 명이 차곡차곡 누웠다. 일단 나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와 없어진 옛 숙소와 휑한 거리와 닫힌 구멍가게를 보고 나니 멋쩍은 마음이 되어 허허 웃고 말았다. 새로운 도시에 온 감상이 들어 편의점을 가려다 나는 마침내 반가운 노점을 마주쳤다.



방콕, 태국 (2022)


카오만카이 하나 주세요

푹 끓여진 닭고기를 썰어 얹은 밥에 생강과 고추, 피시소스가 섞인 간장을 익숙하게 뿌린다. 이 음식의 기원은 ‘하이난 라이스’다.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진 이 음식은 단언컨대 태국이 가장 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그리웠던 맛에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니, 옆에 앉은 아저씨가 알아들을 수 없는 태국어로 주인아주머니에게 말을 걸며 빙긋빙긋 웃는다. ‘이 녀석 정말 좋아하네.’ 정도의 말이겠거니 했는데 시원한 음료수가 하나 나온다. 자신이 사는 거라며. 정말 울어버릴 뻔했다. 어떤 음식은 고향이 없는 내게 고향 같은 기운을 가득 뿜어낸다. 팟타이나 끈적 국수, 게살볶음밥 따위가 맛집 검색 순위에 올라있더라도 몇 년간 결코 잊지 않던 태국어 이름의 음식이 있다는 건 그런 일이다.


밥을 먹고 코너를 도니 익숙한 빵집이 열려있다. 노점에서부터 오른 기운이 용기가 되어 이미 소원해진 사이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있지, 우리가 매일같이 가던 빵집이 여전히 있어. 작은 포스트잇은 그대로 있었다. 흔히 보이는 곳에 붙이면 금세 사라질 테니 가장 떼기 힘든 구석에 붙이자고 했었다. ‘여행이 우리를 일으킬 거야.’ 나는 그 응원의 문구를 찍어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방콕, 태국 (2022)


숙소를 옮겼다. 장기여행자에게 최우선 고려대상이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옮긴 이유는, 잠을 자며 회복되어야 하는 몸이 밤새 고성방가와 함께 끈적한 더위로 도리어 체력을 앗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8백 원만 더 보태면 에어컨이 나오는 캡슐 도미토리에서 잘 수 있었다. 카오산이 아닌 쇼핑구역이긴 했지만. 내가 가진 추억을 이틀 만에 회상하고 도심으로 들어가 글을 썼다. 작업을 하고 시장에서 밥을 먹는 날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책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아 한창 출판사와 다투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주를 마시고 싶어.

나의 문자를 받은 형이 말했다. 변한 광경에 실망한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렇담 마셔. 형은 내게 5만 원을 부쳤다. 외국에서 소주를 먹고 싶다고 말한 일이 처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밥을 대충 먹고 매일 소주 한 병씩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자로서는 엄청난 사치였다. 소주 한 병 값이면, 실은 한국의 금액과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태국 노점의 물가로, 또한 나의 식사 비용으로 고려했을 때 두 끼 정도를 해결할 금액이었다. 그래서 안주는 과자 한 봉지 정도였다. 사치는 소주까지였다.



방콕, 태국 (2022)


날씨는 친절하지 않게도 소나기를 뿌렸지만 태국의 사람들은 더없이 친절했다. 대충 길을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오토바이 뒤에 내 몸을 실어줬다. 위치를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는 목적지로 갈 수 있는 최대한을 간 뒤 다시금 누군가의 도움을 얻으라고 했다. 두 번 정도 갈아타면 난 방콕의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좀 처연했다. 외로움에 휩싸인 건 아니었지만 글을 쓰는 일이 좀 버거웠고 이집트에서 마무리한 원고의 수정으로 더없이 지쳤다. 그래, 난 지쳐 있었다.


호스텔 로비에선 어린 여자애들이 많았다.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함께 파는 카페이기도 해서 뭘 하고 있나 살펴보면 모두 한국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태국어로 번역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끊임없이 한국 노래가 들려오는 공간이란. 나는 그 구석에 앉아 편의점 봉투에서 매일 소주 한 병을 꺼냈다. 과자와 초록병을 올려두고 담배까지 물면 지친 정신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매일 초저녁부터 밤이 짙어질 때까지 난 점점 붉어졌다.




너 한국인이야?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저녁으로 파스타와 빵을 먹는 참이었다. 소주병을 가리키며, “드라마에서 봤어. 오리지널 소주 바이브!” 나는 그 말이 무척 우스웠다. 오리지널 소주 바이브라니! 한류로 인해 세계적으로 한식당이 널리 생겼지만 그 분위기 자체는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게 그 분위기가 나온다니 이건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란 말일까. 한국 사람이 풍기는 이상한 처량함, 정서가 있다고 하면 소주 바이브라고 말해도 난 왠지 그녀가 말한 의미를 정확히 알 것만 같다. 마시겠느냐며 한 잔 권하니 냅다 홀짝 마신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나 독하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마시기에 열심히 도전하고 있다면서. 어떻게든 함께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랑일까.


기분이 부쩍 좋아지고 생글생글 혼자 웃었다. 비로소 기분이 풀린 것이었다. 우울한 기분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소주를 들고, 한껏 드러내고 싶은데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태국의 어느 음식을 오래오래 그리워했었다고 말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걸 먹으러 태국에 왔는데 이제야 기운이 났어. 아직 본 적 없는 태국의 모습을 살펴보러 가 볼 용기가 생겼다. 소주 탓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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