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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y 30. 2024

'친구'와 '친구 아님' 사이

길 위라고 모두가 같으랴.


커다란 경험 앞에 우리는 함께 어떤 감정을 누렸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난 사람의 성정이 경험과 교육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하는 편으로, 어느 말 못 할 과거의 기억으로 인하여 개개인의 성품 차이가 나는 바 또한 어쩔 도리가 없다. '저건 내가 책임져주지 못할 인생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연락이 왔다. 이번 산티아고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들, 우스개처럼 만나자고 했으나 그렇게 흘러가듯 잊혀갈 사람들. 허나 반대로 오래된 인연들. 나는 방콕에서 쓸쓸해하던 차였다. 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같다.


태국, 방콕 (2022)


나와요.


김형은 자신이 방콕이라고 했다. 이곳저곳을 뒤엉켜 다니는 사람인만큼 나는 잠깐이라도 그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코로나 증상이 있는 듯하다던 형의 말에 약속을 파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어렵겠죠. 그래도 잠깐 나와요. 그러더니 당신은 봉투에 돈을 담아 가슴팍에 푹 안겼다. 기껏해야 우리가 만난 건 잠시잠깐 스치던 순례길에서의 며칠이었는데도. 자신은 병을 옮길 수도 있으니 다시 호텔방에서 격리를 해야 한다며 부산스레 떠났다. 봉투에는 짤막한 글이 쓰여 있었다. 오래 여행할 사람에게.


사람을 만난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나는 몇 푼 돈 따위보다 그저 몇 초도 안 될 짧은 찰나에 얼굴을 살필 생각으로 나설 마음이 드냐는 것이다. 어쩌면 더 짧은 순간일지라도 나는 형을 보러 나섰을까. 지금의 기분으로도 그럴까.



태국, 방콕 (2022)


우리 방콕이야.


박형과 최를 만난 것 역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우연찮게 만났던 일행으로 방콕을 들러 귀국하는 길이라 했다. 약속은 괜히 일정 같은 기분이었다. 친하다면 친할, 아니라면 아닐 그런 사람들과 그래 식사쯤이야. 그들이 일러준 식당으로 갔다가 다시 야시장으로 이동했다가. 그러더니 태국에서의 밤문화를 즐기러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이집트부터 그런 말을 농담이랍시고 하는 이들이었다.


나는 고고하지 않다. 그렇다고 문란하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면 음지의 영역은 전혀 모른다. 알고 싶기는 하나 경험할 생각은 없다. 그게 전부다. 가뜩이나 불편한 자리는 어색하게 흘러갔다. 뭘 그렇게 점잔 빼고 그래? 박형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자신의 친구가 태국의 직급 높은 경찰이라며 그쪽에 빠삭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변호사라며 검지와 엄지를 붙여 지갑이 넉넉하다고 했다. 그 둘이 오고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한다. 새벽의 야시장이 환락가처럼 바뀌어가는 통에 여성이 무릎에 앉았고 나는 여자를 곧장 밀쳐낸 인사를 했다. 더는 이들과 만날 일이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수중에는 돈이 모자랐다. 그들과 만난 식당은 내게 너무 비쌌고, 야시장에서의 술값도 만만치 않았으며 예상한 비용을 훌쩍 넘었다. 버스가 끊긴 시각이라 외진 곳에서 시내 중심으로 돌아가기는 험난했다. 충분히 어울려주지 않은 탓에 박형과 최에게 돈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세 번쯤,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숙소로 돌아왔다. 오토바이를 두 번 얻어 타고 택시를 한 번 얻어 타고. 돈이 없으니 가는 방향이라면 중간마다 내려달라 사정하며. 자정이 한참 지나 방콕 외곽을 거닐며 받은 호의에 나쁜 기분도 죄다 사라졌다.



태국, 방콕 (2022)


나 방콕에 왔어.


6년 만에 만난 에어와 푸는 그대로였다. 아니 조금 주름이 파였다. 며칠 기운을 못 차린 채 지내다가 먼저 연락을 걸었다. 둘은 6년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만났다. 눈보라가 치던 날 산장으로부터 20분가량을 돌아내려 가 지친 그들의 배낭을 대신 짊어주고 산장까지 이끌고 왔었다. 농담처럼 날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지만, 태국에 갈 때면 식객을 하는 건 되려 나다. 자신의 집에서 머물라는 에어의 말에 나는 배낭까지 짊어지고 나왔다. 애가 둘이나 생겨 안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별장이 따로 있으니 괜찮다는 말에 염치없이 곧장 그랬다.


그간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는데도 둘과의 대화는 누구보다 편했다. 근황을 이야기하고 생활을 나열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나는 마음의 응어리가 모두 풀어졌다. 어떻게 맺혔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친구라는 건 마음이 통하는 것이라 언어의 장벽 앞에서도 고됨이 없다. 한식당에서 근사한 밥을 사주고 싶었는데 그들이 샀다. 나는 질세라 맞은편 한국 마트에 들어가 한국 과자를 무시무시하게 쓸어 담았다. 내가 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 아이들에게 갖다 주라며 안겼다.


에어의 집에서 며칠 머물고, 푸와 더불어 몇 번의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 몸서리치게 기뻤다. 회복을 위한 시간을 애써 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가짐의 차이는 아닐까. 친구와 친구 아님 그 사이에서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 치앙마이로 가는 기차역에 날 바래다준 에어와 긴 포옹을 했다. 언젠가 또 만나. 여정과 여정 사이에 끼어들 틈을 남겨두라는 듯 말하는 그가 작은 봉지에 담은 삼각김밥과 콜라에 웃음이 터지고 만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언제까지고 시간을 되돌릴 힘이 남아있는 것만 같다.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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