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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이해 May 24. 2023

두 갈래 길

[수요일 그림책 스터디] © 기이해

두 갈래 길

글 그림 라울 니에토 구리디

살림출판사


두 갈래 길 | 살림 출판사



전에 분명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언제 읽었을까 곱씹어 보았다.


노들리에의 수요일 그림책 스터디는 202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책 분명 어딘가에서 읽었던 책인데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하면서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 목록에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Humm....

없다. 아니었다.


그러면 난 도대체 이 책을 어디에서 읽었을까?








2018년 3월의 나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약 1년 동안 지내면서 그 해 3월에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 10월에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가는 것이 목표였었다. 볼로냐에 도착 전 중간에 경유지로 잠시 일주일 동안 로마에 갔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로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학부 수업 때 미술 역사 수업에서 화면이나 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이 길을 걷다 보니 계속 나왔다. 한 블록 가면 기념비가 또 나오고 그다음 블록에 유적지, 그다음엔 로마의 휴일 계단, 그다음엔 콜로세움, 그다음엔 판테온 그리고 판테온 앞에 즐비한 젤라또 가게들!
마치 빨간 구두를 신은 것 마냥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늘은 또 어찌나 파랗던지. 한국이나 미국, 독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로마의 하늘은 수채화로 치면 거의 코발트블루(Cobalt Blue; G512) 나 울트라 마린(Ultramarine; G506)급의 색감이었다.


Van Gogh 수채화 물감 506 울트라마린 / 512 코발트블루


적당히 보고 멈췄다면 다음날 또 다른 것들을 실컷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속도조절을 하지 못해서 다음날 바로 몸살에 걸렸다. 책에서만 봐오던 풍경들을 실제로 보니 마냥 신나서 속도조절을 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게 로마에서의 일주일을 아쉽게도 숙소에서만 지낼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서 볼로냐로 일주일간 필요한 짐덩이들과 낮은 덥지만 아침과 저녁은 아직 쌀쌀하여 입을 외투를 들어보니 꽤나 무거웠다. '로마에서는 오렌지가 길가에 주렁주렁 열려있었는데 볼로냐에는 꽃나무들이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네'라고 중얼거리면서. 무거운 짐덩이들과 함께였지만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피로가 좀 덜했다. 그나마 짐덩이에 뽈뽈뽈뽈 움직이는 바퀴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티켓을 사고 체크인을 한 뒤 5유로를 내고 외투와 짐들을 몽땅 맡겨두고 전시회장에 들어갔다. 도착해서 보니 세계 각국에서 온 무명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들이 보인다. 전시장 입구부터 전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artist wall은 볼로냐 아동 국제도서전의 전통이다. 알려지지 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도서전에 초청받은 적은 없지만 출판사에게 눈에 띄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개성 있는 그림들이 마치 "내 그림 좀 봐주세요!"라고 말 하는 것 같았다. 


전시회 장으로 들어서니 2018년에 선정된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 프리마, 올해의 일러스트 등등 볼거리들이 많았다. 그 해 우리나라의 작가 두 명이 볼로냐에서 상을 받았다.


『 벽』의 정진호 작가

『 나무, 춤춘다』의 배유정 작가


거기 가서 익숙한 이름들이 적힌 이 두 작가들만 기억을 했다. 그리고 다른 전시회장을 미친 듯이 보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 두 갈래 길』도 2018년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중 하나였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그림책인데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사실은 이 그림책의 내용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림책을 읽은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두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내 상황에 꼭 맞는 그림책이 나타난다. 2023년 5월 오늘의 나는 이 책이 꼭 필요했다. 


책의 한 문구 중 이런 글이 있다.  


밤처럼 온통 캄캄할 때도 많지만
뜻밖의 재미있는 일들도 많아



2018년의 내 모든 상황은 밤처럼 캄캄했다. 그렇지만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로마와 볼로냐에도 갔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 함부르크에서는 미세먼지로 답답한 공기대신 상쾌한 공기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방이 온통 초록 세상이었던 것도 좋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사는데 어떻게 로마 하늘만 그렇게 파랄까?라는 궁금증도 얻을 수 있었다. 볼로냐에서는 언제 내 그림을 해외에 출판사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artist wall에 나도 내 그림과 명함도 붙이고 왔다. 세계 최대 규모인 프랑크프루트 국제 도서전에서는 유럽의 도서전들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경험치도 쌓을 수 있었다. 


볼로냐 도착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날은 "하! 짜식 여기까지 왔네. 장하다! 준비한 그림이나 붙이고 구경이나 실컷 하다가자!" 했던 마음이 기억이났다. 그림책『두 갈래 길』은 내가 걸어온 길을 기억나게 해 준 그림책이다. 


© 기이해



*수요일 그림책 스터디에 함께 하는 <노들리에> 작가들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같은 주제'로 작업한 <노들리에> 소속 작가님들의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스터 작가  https://brunch.co.kr/@asterchoi

진영 작가     https://brunch.co.kr/@g2in0

영주 작가     https://brunch.co.kr/@leeyoungjoo

암사자 작가  https://brunch.co.kr/@amsaja

가둥 작가     https://brunch.co.kr/@3907k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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