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그림책 스터디] © 기이해
코코의 리틀 블랙 드레스
글 그림 안너마리 반 해링언
출판사 톡
코코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필자가 유럽에서 그림책 유랑을 하던 중 어느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그 뒤 오랫동안 이 그림책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주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에서 샤넬(CHANEL)에 대한 주제를 다루길래 갑자기 이 그림책이 생각나서 한국에도 이 그림책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책으로 [수요일 그림책 스터디]에서 토론을 한다.
명품으로 자리 잡은 샤넬 브랜드
한국에서 샤넬 글로벌 엠베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예인으로 G-Dragon, 블랙핑크의 제니, 배우 김고은이 대표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처음은 1910년 "샤넬 모드(샤넬의 모자가게)"부터이다. 필자는 그림책을 가끔 다큐로 푸는 경향이 있어서 샤넬 브랜드의 역사는 샤넬의 홈페이지 안에 브랜드의 역사가 담겨있는 아래 링크로 대신하려고 한다.
코코의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코코 샤넬(Gabrielle Bonheur Coco Chanel)이며 코코는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우리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샤넬의 블랙 드레스들은 수녀님들과 함께 생활하며 영감을 받은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림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인 샤넬을 고아원 시절부터 코코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가브리엘 샤넬이 '코코'라는 이름으로 불린 시기는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다. 당시는 여성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남자들만 투표권을 가졌던 시기였다. 기숙학교에서 배운 바느질 일거리는 남자들의 1/3 정도밖에 벌지 못하였고 바느질은 임금이 매우 낮아 재정적인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코코는 겸업을 시작했다.
하층민 여성이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가수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물랑의 한 카페에서 마스코트 가수가 되었다. 낮에는 바느질을 하고 밤에는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곳에서 부른 노래는 <코코리고>, <누가 코코를 보았니?>와 같은 노래를 부르며 이를 계기로 사람들에게 코코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코코라는 애칭을 귀여운 강아지에게 쓰거나 코코트(Cocotte)라는 명칭은 매춘부라고 불리기도 해서 처음에 코코는 자신이 코코라고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부자 애인 발상(Étienne Balsan)에게 (✳동심파괴 주의: 코코는 유부남과 불륜)의 초대로 사교계에 입문했지만 그 안에서도 차별은 존재했다. 재빨리 그 안에서 그들만의 취미인 승마를 배워야 했는데 말을 탈 때 조금 더 편안한 복장을 위해 남자들처럼 바지를 입기로 결심했다. 바느질이 익숙했던 코코는 마부의 바지를 빌려 모두 해체한 후 본을 떠 자신만을 위한 승마바지를 만들어 입었다.
코코는 여인들이 머리에 장식으로 쓰는 치렁치렁한 모자가 불편해 보여서 휴대하기 간편하며 아름답고 심플한 자신만의 특별한 모자를 직접 만들어 쓰고 다녔다. 예쁜 모자를 만들어 판다는 입소문으로 1910년 '샤넬 모드' 숍을 파리에 열면서 샤넬의 패션 비즈니스가 시작이 되었다.
당시의 프랑스 여성들은 더욱 가느다란 허리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여 코르셋을 조이는 문제가 매우 심각했는데 그것을 너무 심하게 조이면 여성들의 갈비뼈는 기형으로 변하기도 했다. 코코는 여성들이 코르셋을 조이지 않아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당시 여성복에 최초로 주머니를 만들어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프랑스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코코 샤넬은 여성들에게 복장의 자유를 가져다주며 자신만의 패션 철학으로 사업을 늘렸다.
코코는 자신만의 디자인이 담긴 의복으로 프랑스 도빌에 자리 잡은 샤넬 부티크를 열었다. 코코의 애인인 아서 카펠(Arthur Capel)이 그녀의 비지니스를 위해 투자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도빌에서의 샤넬 부티크는 여러 여건으로 성공궤도에 올라섰다. 첫째는 도빌은 여행지라서 부자들이 많이 휴양을 왔다. 둘째는 당시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옷을 두고 피난을 왔는데 지리적인 요건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빌로 피난을 왔다. 세 번째는 고급화 전략으로 옷의 값을 비싸게 받았다.
홍보 수단으로 스스로 디자인 한 옷을 입고 이 옷이 얼마나 편안한지 보여주며 걸었다고 했다. 부자들은 비싸고 희소성이 있는 의복을 파는 샤넬 부티크 앞에 줄을 서서 옷을 사갔다. 당시에 지위가 낮았던 여성이 운영하는 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곧 스타일이다.
내가 전 세계를 입혔다
와 같은 문장을 이야기 해도 전혀 교만해 보이지 않는 전설적인 인물. 샤넬 브랜드는 현재는 의복, 향수 등 여러 방면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샤넬의 이야기를 오랫만에 정리하면서 문득 우리나라에도 코코 샤넬 같은 역할을 하신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바로 "노라 노(한국이름 노명자)" 라는 분이고 살아계신 한국 패션 계의 거장이시다. 이 분의 삶을 들여다 보면 샤넬과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복이 한복에서 양장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매우 왕성하게 활동하신 분이고 미니스커트를 최초로 모델에게 입혔다. 한국 최초로 미국 뉴욕의 메이시(Macy’s) 백화점에 노라 노의 옷이 입점되었다. 노라노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여성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면서 옷을 착용하기를 바랐는지를 잘 알았다.
노라 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
우리나라 패션 역사를 살펴보면 노라 노는 코코 샤넬 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다. 오랫만에 이 두 인물을 다시 기억하고 글로 정리하게 되어서 즐거웠다.
© 기이해
참고 서적 및 미디어
코코의 리틀 블랙 드레스 | 출판사 톡
tvN 벌거벗은 세계사 110회 | 파란만장한 삶 위에 세운 샤넬 제국
샤넬 홈페이지 official
[수요일 그림책 스터디]는 오는 9월 첫 주 종료 예정입니다. 참여하는 작가님들의 새로운 일정으로 한 챕터를 마무리 하고 작가들 각자 재정비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참여 작가님들이 걷는 길이 반짝반짝 빛이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