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제의 딸 May 26. 2020

착한 아이 콤플렉스

01. 원치 않은 것을 강요받은 기억

우리나라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0년 1.47명, 2010년 1.23명으로 지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여, 현재 우리나라는 ‘초 저출산’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세상에 갓 나온 아이들에게 ‘착함’을 강요하고 있다.


친구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단톡 방은 요란했다. 뽀얀 아이 사진이 여러 장 나열됐다. 아아, 뼛속까지 맑아지는 이 기분. 친구들은 출산한 친구에게 고생했다는 갖가지 말과 덕담을 하기 시작했다. ‘착하고 바르게 잘 자랄 거야.’ 나는 휴대폰 액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메시지를 치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대학교 시절, 영화과였던 나와 동기들은 항상 워크숍으로 정신이 없었다. 이 워크숍이라 함은 갖가지 아이디어로 팀원들과 피 터지는 회의 끝에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떤 작은 씨앗이 발아하여 큰 꽃이 될 수도, 열매가 될 수도 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라, 우선 이 작은 아이디어를 잘 다루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행히 지난 학기부터 준비해온 아이디어가 다음 학기에 잘 진행되어, 다른 팀들보다 여유 있게 후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짬짬이 긴 전화통화를 하며, 기분전환을 할 여유도 있었다. 친한 동기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가볍게 아이디어 얘기를 던지는 나.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다. 얼마 전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발전시키면 재미있지 않겠냐는 둥, 여기서 나는 어떤 것을 느꼈는데, 나는 이런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둥, 이러다 칸 가는 거 아니냐는 둥, 이러다 상 받는 거 아니냐는 둥 정말 별다를 것 없는 대화였다.

 몇 주 뒤, 과방에서 편집 중인 그 동기의 단편 영화를 보았다. 아 익숙한 이 스토리. 내가 말한 별거 없던 그 스토리.


 얼마 전 일이다. 화요일, 목요일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업로드하는 나.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자기만족에 차오른 나. 이 소식을 들은 그때 그 동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동기는 영화 기획 공모전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우리. 최근 겪었던 이런저런 사건들을 재미있게 나누다, 내가 던진 한 마디를 계속해서 곱씹더니 갑자기 메모를 하겠다는 그 동기. 아아 제발. 주여.

 며칠 뒤, 다른 동기에게서 그 동기의 영화 공모전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 동기의 대략적인 영화 스토리를 듣게 된 나. 아 익숙한 이 스토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내가 명확하게 내 아이디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그 동기와 갈등을 빚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있는 수많은 연결고리들은 또 어떡하며, 쿨한 언니에서 쫌생이로 변할 순 없었으니까.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내 감정에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그 동기에게 우유부단하게 착한 사람으로 남으려, 명확하게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겠지, 뭐.


메시지를 치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다시 자판을 누르는 나.

'착하게 자라긴 개뿔! 그냥 멋대로 크게 둬!'



작가의 이전글 막내 짓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