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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의 딸 Jul 23. 2020

부탁을 어려워하지 말자

02. 인생은 디딤돌

같이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이 좋다. 편안함은 안정감을 수반하고, 그것은 곧 ‘나다움’을 수반한다. 요즘 나에게 ‘나다움’을 선사하는 것은 바로 남자 친구다. 남자 친구라는 존재는 참 신기하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황제야, 넌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는 거 같아” 였는데, 작은 농담처럼 여기기엔 심장이 너무 쿵 내려앉는 것이, 어째 찔리는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나는 부탁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에게 부탁을 했을 때 느끼게 될 상대방의 감정, 나를 보는 시선, 또 내가 느낄 감정 등 이 모든 것을 고려하다 보면, 부탁은 다시 공기 중에 사라지고 만다.


요즘 단편영화 편집을 하고 있는 나는 후반 작업이 참 골칫거리였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콘티뉴이티를 위한 색보정과 믹싱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는 나. 가까운 지인에게 색보정 업체를 물어보니, 역시나 생각보다 비용이 훨씬 나갔다.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좌절되고 말 것인가... 색보정 그게 뭐라고! 나는 직접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더해갈 수록, 아 역시 맡겨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나. 색보정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미세한 색 차이를 가늠하기에 내 눈은 덜 예민한, 까막눈이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토로하고자, 평소 자주 연락하고 지내던 선배 A에게 연락을 했다. 선배는 나의 자초지종을 듣자, 우리의 지인, 또 다른 학교 선배 B에게 부탁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아아 그 선배. 학교 다닐 때, 그의 무책임한 태도가 떠올랐다. 아 아니야, 그런 사람에게 맡길 순 없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더니, 선배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그 친구도 이제 월급을 받는 어엿한 사회인이니, 책임감 없이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 역시 나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다시 한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부탁을 어려워하는 나’가 문제였다. 이 본질적인 문제를 말하니, 선배는 “음 넌 좀 그런 경향이 있지” 뭐지? 나 빼고 다 아는 사실이었단 말인가? 어쨌든 선배 A는 부탁이란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부탁이라는 워딩이 거창할 뿐이지, 서로 어려울 때 돕고, 돕는 것일 뿐이라고. 대신 부탁을 들어줬을 때,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언젠가 나도 보답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라고.


눈 딱 감고, 선배 B에게 연락을 했다. 상상 이상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선배. 자조치종을 설명하니,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선배. 더 나아가 내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알려주었다.


부탁을 어려워하지 말자. 상대방의 태도 또한 지레짐작하지 말자.

부탁을 한 후, 생각지도 못한 길로 나아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색보정 비용은 굳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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