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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Jan 02. 2016

#30. 차 한 잔이 행복을 전해줄 거야

[임신을 위한 힐링] #30

오늘도 또 야근을 하게 될 상황이다.

사무실의 막내가 배달전문 중국집 메뉴를 들고 돌아다닌다.

아, 오늘은 정말 이 집 음식을 먹기 싫다.

나는 식사시간을 아껴서 빨리 일 마무리하고 먼저 들어가겠노라고 말했다.


오늘은 아홉시인데도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가 정말 정신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손잡이를 잡고 선 채 눈을 감았다.

오늘 내가 했던 일들...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일이 있었나?

실은 다 남이 시켜서 했던 일 아니던가.


그래도 이번 주 잘 마감했다.

출근 안해도 되는 토요일이 있어 참 좋다.

내일은 정말 푹 쉬어야겠다.


남편은 오늘도 출근했다.

오늘은 아무 것도 안하고 좀 빈둥거리고 싶다.

전기 주전자의 스위치를 누르고 잠시 무슨 음악을 들을지 생각했다.

마이클 호페의 하모니카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멜랑꼴리라는 앨범... 음악이 참 멜랑꼴리하기는 하다. 그래도 오늘은 이런 음악에 잠기며 차 한 잔 하고 싶다.


대초원의 달(Praire Moon)


메일함에 "차 한 잔이 행복을 줄 거야"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이 들어와있다.

어젯밤에 삼촌이 보낸 메일이다.


선영! 한 주 잘 보냈니? 그래도 쉬는 토요일이 있어서 좋지? 삼촌은 토요일에 환자분들이 제일 많이 찾아오시니 제일 바쁜 날이란다.
선영이는 직장일 하기가 어떠니?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제대로 능력 발휘는 하고 있는 건지?
정체된 듯한 기분이 들지 않니? 너무 쫓기면서 살지는 않니?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조용히 혼자 차를 마셔봐.  
커피는 몸을 흥분시키고 각성시키기 위해서 먹지만, 동양의 차는 차분하게 이완이 필요할 때 마셨지.
차를 잘 마시면 몸과 마음에 깊은 이완과 안식을 줄 수 있단다. 휴일을 맞이하는 너에게 차 마시는 기술을 알려주마.


혼자 차마시려고 했는데 삼촌이 마침 차 마시는 기술을 알려주신단다.


자, 차를 마실 때는 오직 차 마시는 것에 집중해보렴. 하던 일을 다 멈추고, 하던 생각도 다 멈추고 차에 푹 빠져보는 거야. 책도 치우고, 컴퓨터를 떠나서 테이블 위에 찻잔을 올려놓고는 그냥 차에만 집중해보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음악과 함께라면 더욱 좋지. 우울한 음악은 말고...


메일 내용에는 차 마시는 기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놀라웠다.

지금껏 숱하게 차를 마셔왔지만 이렇게 차를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당장 삼촌이 가르쳐준 대로 차를 마셔보기로 했다.

오늘의 차는 삼촌이 준 당귀차.


마이클 호페의 하모니카 소리는 coming home 으로 이어진다.

참 좋네.


끓는 물에 당귀차 티백을 넣었다.

물이 좀 식기를 기다리며 의자에 편히 기대 앉았다.



삼촌의 지침대로 우선 찻잔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냥 지긋이, 무심하게 바라본다.

찻 잔의 흰 빛이 참 곱고 아름답다.


차의 색깔도 본다.

땅을 닮은 부드러운 색.


당귀의 향이 느껴진다.

찻잔을 들어 당귀의 향을 더 깊이 느껴본다.

숨을 천천히, 깊이 들여마신다.

눈을 지긋이 감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서 향을 맡는다.


마음 속으로 '아, 좋다'라고 말했다.

정말 좋네.

입가의 미소가 조금 더 커졌다.


삼촌이 알려준대로 마음 속에 그림을 하나 떠올렸다.

구겨져 있던 보자기가 쫙 펼쳐지는 이미지.


삼촌은 차 마시며 빙긋 웃는 그 웃음에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웃음이 마음의 주름을 펴준다는 것이었다.

그래, 빙긋 웃었다.

아, 좋다.


후루룩 한꺼번에 많이 마시지 않고,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신다.


입에 살짝 머금었다가 가만히 삼킨다.

찻물 한모금이 목을 통해 뱃속까지 흘러들어가는

그 느낌을 느껴본다.  


따듯하다.

따듯한 물이 목에서 배로 떨어진다.  


이는 그저 물이 아니라

따듯한 기운이다.

당귀가 품었던 사랑과 감사의 기운이다.     


배에 있던 온기가

아랫배까지 내려가 머무는 것을 상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온기를 발끝까지 퍼트린다.


느낌은 나의 상상을 따른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순간 속에 머문다.


순간에 머물면 과거나 미래는 없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없다.


순간에 머물면

나는 시간을 초월한다.


당귀차의 빛깔, 향, 온기는

나와 하나가 된다.

이 순간의 행복이다.


문득 이 당귀차와 연결된 수 많은 손길을 생각하게 된다.

이 차를 배달한 손길,

이 차를 판매한 손길,  

당귀를 갈아서 티백에 넣은 손길,

당귀를 길러서 수확한 손길,

당귀를 품었던 땅,

당귀를 자라게 한 물과 햇살,

그리고 바람이 떠오른다.

나는 어느새 당귀의 고향으로 와 있다.


그 모든 자연과 사람의 손길을 지금 이 차를 통해서 만나고 있다.

내 몸을 이롭게 만들어주기 위한 그 소중한 손길,

그 손길이 지금 내 몸을 따듯하게 터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소중한 존재들과 나는 기나긴 끈으로 멋지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결코 홀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이 세상에 서로 관계되지 아니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존재에게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온다.

그 모든 존재들의 도움 덕택에

내가 지금 이 순간 차 한 잔의 행복을 누린다.


마음 속으로 다시 되뇌인다.

감사합니다.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마시며 느꼈던 경험을 보고했다.

선영 : 삼촌, 따듯한 차가 목에서 배로 흘러들어가는 것까지 느껴지는 거 있죠. 느낌이 생생해요. 그리고 그게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삼촌 : 이야, 참 잘했구나. 당귀차가 뜨거운 물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우려냈듯이, 너도 수많은 인연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너의 에너지를 세상에 우려냈구나. 고맙다. 네가 우려낸 에너지가 나한테도 이미 전달되었구나. 너의 감사와 너의 평화가 세상에 진동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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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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