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성 Mar 10. 2016

#42. 식사의 효과가  두배가 되는 방법

[임신을 위한 힐링] #42

생리 전이라 그런가? 오늘 신경이 좀 날카로운 것 같다. 또 최팀장과 부딪쳤다. 능력 없고 까칠한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은 참 고달픈 일이다. 육체 노동을 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건만 이리도 피곤하다니.

핸드백 안에 삼촌이 준 약봉지가 들어 있었다. 들어있는 건 약이 아니라 호두, 해바라기씨, 호박씨. 환자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직접 담은 견본이란다.



오메가3지방산을 비롯한 각종 불포화지방산과 항산화성분이 정자의 품질을 좋게 해주고, 난자의 질도 높여줄 수 있으니, 우리 부부도 함께 꾸준히 먹으라고 하셨다.


이놈들을 더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오늘따라 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임신을 해서 배가 나온 여자도 보인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장을 보게 되는 날이 올까? 유모차에 있던 아이가 큰 소리를 내며 운다. 시끄럽다. 듣기 싫다.


이럴 때 내게 필요한 것은? 그래, 마음의 평화.

마트 한 켠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배에 손을 얹었다. 허공을 응시한 채 마음 속에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 둘, 셋, 넷을 세며 코로 들숨을 마시고, 다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을 세며 입으로 날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10번.


잘 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국산을 찾기가 어렵다. 어쩌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박씨 까고 앉아있을 여유가 없는 것을. 그래도 호두나 씨앗류는 그 속에까지 농약을 쳤을 리는 없으니 안심하고 먹기로.



집에 돌아와 남편의 입 속에 견과류를 털어넣어드렸다.


오늘부터 감사 일기를 시작한다. 거창하게 쓰지 않으련다. 잠자기 전에 휴대폰의 노트앱으로 짧게 끄적이련다.

매일 생각나면 매일 적겠지만 못 적고 넘어가는 날이 있으면 또 어떤가. 자꾸 쓰다보면 이것도 습관이 되겠지.


OO년 OO월 OO일

1. 삼촌이 있어서 감사. 감사 일기를 알려주시다니. 덕분에 시작하게 되다니.

2. 오늘 지하철에서 앉아서 올수 있어서 감사.

3. 옆에 남편이 누워있어서 감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함께 침대에 있을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따듯한가.

4. 퇴근후 바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어서 감사. 엄마는 예전에 연탄불로 물 데워서 씻었다고 함. 우리집은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5. 휴대폰으로 알람까지 맞출 수 있어서 감사. 스마트폰 참 위대한 발명품이다. 이런 세상이 펼쳐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스티브 잡스씨에게 감사.


쓰다보니 길게 써졌다. 감사일기 재밌네. 더 생각해보고 싶지만 딱 5개만 적자.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하다가 체할라.

잠이 안오면 양을 세라고 했던가? 이제부터는 복을 세며 잠을 자야 하겠다.



다음 날.

일요일이라도 새벽에 꼭 한 번씩은 깼었는데 모처럼 한 번도 깨지 않고 늦잠을 잤다.

어젯밤 감사일기를 적어서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감사할 일이 생각났다.


내가 오늘도 살아있었다. 오늘 하루가 또 선물로 다가온 거 아닌가.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내 눈이 오늘도 빛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정말 생각해보니 감사할 거리 투성이다.


카톡으로 삼촌에게 어제 쓴 감사일기를 보냈다.

삼촌과 톡이 오갔다.


삼촌 : 오호 감사일기를 시작했네?

선영 : 네 이거 정말 좋은듯요.


삼촌 : 내용 좋네! 니가 쓴 거 보니 나까지 감사해진다.

선영 : 헤헤


삼촌 : 삼촌이 이따 점심 사줄께.

선영 : 우앗 정말요? 감사합니다.



한식당이었다. 점심 정식을 시켰는데 반찬이 정말 여러가지가 나왔다. 만오천 원에 이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니, 이게 어디 스파게티 따위와 비교나 될 법한가.


삼촌 : 나는 진짜 한식당이 좋아. 여봐라, 이거 반찬들 봐.

선영 : 그러게요.


삼촌 : 선영아, 전에 내가 호흡법 알려준 적 있었잖아.

선영 : 네,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알려주셨었죠. 횡격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복식호흡을 하라고 하셨죠.


삼촌 : 음,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근데 음식을 먹는 것도 그렇단다. 무엇을 먹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는가가  무척 중요해.

선영 : 어떻게요? 꼭꼭 씹어먹으라는 얘기하시려는 거죠?


삼촌 : 그래, 그것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게 있어. 우리가 하루에 식사를 3번 정도 하잖아. 되게 중요한 시간이잖아. 여행이라도 가봐. 여행의 핵심이 뭐니? 어디 가서 뭐 먹을까 아니니. 맛집을 중심으로 여행일정을 짜는 사람들도 있잖아.

선영 : 그렇죠. 우리 인생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죠, 먹는 것이.


삼촌 : 만약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 거니. 그저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이 음식들에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식사 시간이 완전 감사예배 시간이 될 수도 있어. 매일, 하루 세 번.

선영 : 삼촌? 밥 다 식겠는데요?


삼촌 : 알았어, 핵심만 빨리 얘기할께. 너 오늘 내 얘기 듣고 밥 먹어봐라. 밥 먹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 그러면 네 인생이 갑자기 두 배로 행복해지게 되는 거야.

선영 : 네네


삼촌 : 첫째, 밥 먹을 땐 음식에만 집중해. 마치 헤드폰을 끼고 음악 감상을 하듯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듯이, 밥 먹을 때는 음식에만 집중해봐. 먹기 전에 우선 생김새를 보고, 색깔을 보고, 질감과 향까지 감상해. 그리고는 입에 넣고 온전히 맛을 느껴봐. 그러려면 한 번에 한 가지 반찬씩만 먹는 것이 좋겠지. 살짝 눈을 감고 씹어도 좋아. 음식에서 즙이 나온다면 그 즙을 느껴. 그 맛을 언어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표현이 안돼. 그냥 느끼면 돼. 의식을 입 속과 혀에 집중시켜.마음의 눈이 입에 가있는 거야. 그러면 그냥 무심코 먹을 때보다 적어도 두 배는 그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어. 그만큼 밥 먹는 행복이 두 배로 커진다.

선영 : 오호...


삼촌 : 둘째, 감사하면서 먹어. 그 음식이 상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손길들이 떠오르면 마음 속 깊이 감사해. 나의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제공되었고,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나에게로 다가왔는지, 그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위대한 시간이야. 음식을 만들어준 손길에게 감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음식 그 자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선영 : 아멘...


삼촌 : 우리는 먹어야만 살 수 있어. 살아 있는 풀을 뜯어야 하고, 시금치, 무, 배추, 당근, 파... 다 뿌리채 뽑아야 하고, 열매를 따야 하고, 물고기와 동물은 잡아서 죽여야 하고... 나는 이 사실 앞에 한 없이 겸손해지고, 한 없이 감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른 생명을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야. 사실 우리는 다른 생물의 생명과 에너지를 빌려쓰고 있는 거야. 내 생명은 오직 나만의 것이 아냐. 특히 나는 육식을 대할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사의 우물을 퍼올린다.


삼촌은 돌판 접시에 나온 제육볶음을 보며 한마디 했다.


삼촌 : 고마워 돼지야. 내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아줄께. 선영아, 나 열심히 살 거야. 고기가 나에게 들어와 내 인생으로 환생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이 남의 생명을 취하고 있다면 그만큼 삶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껴야 하지 않겠니.

선영 : 흠, 어째 기분이 좀 묘해지는데요?


삼촌 : 자, 식사 시간에는 방금 말한 두 가지를 생각해. 음식에 집중하며 을 충분히 감상(感想)하기, 그리고 감사(感謝)하기. 이 두 가지 감을 갖고 식사 예식에 들어가보자. 이 시간은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와 만나는, 그야말로 성스러운 시간이 되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될 거야. 자, 이제부터 밥 다 먹을 때까지 우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밥에만 집중해보자.

선영 :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요?


삼촌 : 그래. 절에 가면 그렇게 하더라. 밥 먹을 때는 묵언. 그러면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삼촌은 눈을 찡끗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미각 뿐 아니라 오감을 열었다. 후각, 시각, 청각, 촉각까지.

당근과 풋고추가 장과 함께 나왔다. 당근의 주황색이 참 신기하다. 땅 속에 박혀서 어떻게 이렇게 예쁜 색이 만들어지는지. 정말 신의 조화다. 그 별명이 홍당무였던가? 이름만 생각해도 유쾌하다. 당근 본연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장에 찍지 않고 바로 씹어보았다. 눈을 감고 씹으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생긴다. 아작아작한 것이 은근 달콤하다. 역시 이름값을 하는구나. 그래서 당근이지.


깻잎을 보니 푸른 들판이 떠오른다. 하우스에서 자란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창공 아래 펼쳐진 푸른 깻잎밭을 생각하련다. 아, 이 초록의 잎사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빛났으며, 하늘은 얼마나 많은 비를 내렸을까. 비타민C와 엽산이 풍부한 이 깻잎이 내게로 오다니, 이걸 키우고, 잎파리를 뜯어내고, 가지런히 묶어서 시장에 팔았던 그 손길이 함께 했겠지. 내가 돈 좀 내고 그 자연의 은혜와 농부들의 노고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감사한가. 깻잎을 씹으니 그 향이 온통 입에 배는 것 같다. 오, 깻잎이 이런 맛이 있구만. 지금껏 깻잎의 향이 오늘처럼 향긋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고등어조림이 눈 앞에 있다. 이 녀석은 어느 바다에서 잡혀왔을까. 노르웨이 앞바다, 그 시원한 바닷속에서 자신의 몸 속에 오메가3를 듬뿍 저장하여 내게로 온 것인가. 고맙다. 네 몫까지 살아주마. 너의 그 귀한 오메가3로 나의 난자를 탱글탱글하게 만들어주렴. 한 점 떼어 내어 씹자 고등어의 육즙이 느껴졌다. 저절로 눈이 감겨졌다. 나의 의식은 오직 입 속에 집중되었다. 그 고소함은 내 온 몸을 채우는 듯 했다.


삼촌의 말대로 밥 한 번에 반찬을 한 가지씩만 먹었고, 그것을 삼켜질 때까지는 아예 젓가락을 내려놓고 충분히 음미했다. 정말 삼촌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오직 음식에만 집중했다. 우리는 그렇게 20분 동안 말 없이 식사에 빠져들었다. 평소보다 3배의 시간이 걸린 듯 했다.


삼촌 : 어땠니, 오늘의 식사가?

선영 : 밥 먹는 시간이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 될 줄은 몰랐어요.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기회가 되면 혼자 나가서 밥을 먹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삼촌 : 식사 시간은 사람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 하지만 혼자서 식사하는 것도 좋아. 만약 상대도 이런 식사의 유익을 안다면 함께 묵언하면서 음식에 몰입하는 것도 좋지. 하여간 이제는 휴대폰 보면서 식사하지 말기.

선영 : 삼촌은 숙모랑 밥 먹을 때 얘기 안해요?


삼촌 : 할 때는 하지. 그러나 가능하면 음식에 집중한단다. 우린 평소에도 얘기 많이 하면서 사니까.

선영 : 음, 저도 이제부터 밥 먹을 때 음식에 더 몰입해봐야겠어요. 완전 신세계네요.


하루에 세 번 규칙적으로 감사할 수 있겠다. 감사 일기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겠다. 먹는 행복, 먹는 유익이 두배가 되고도 남겠다. 그만큼 나의 몸과 마음이 두 배로 건강해지겠구나.


이전 글 보기  | 다음 글 보기  

[임신을 위한 힐링] 목차 보기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연유 - 필독


이재성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41. 감사는 선택하는 것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