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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Sep 25. 2024

조교 인수인계 일지


조교를 하기로 결정한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오후,
나는 친구들의 걱정을 듣고 있었다. 우리 과가 올해부터 다른 학과로 학제 개편되는데 신입생들한테 기 빨리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도 원체 내성적이고 리더십이 없어서 살짝 걱정하던 부분이다. 조교는 가끔 학생들에게 큰소리를 내야 할 때가 있다. 시험이라던가, 시험이라던가... 하지만 일을 너무 못하는 건 아닐까, 그게 더 걱정이다.

혹시나 대학조교를 하고 있는 블로거도 있지 않을까 해서 네이에 '대학조교'를 검색해 봤더니, 평판이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뭐, 대학조교 착하고 좋은 분이라고, 블로그나 지식인에 쓸 사람이 어딨겠어'


대학생한테 조교는 착해봤자(그래, 그걸 친절이라 하자) 당연한 거고, 불만이나 피해가 생기 그건 당연하지 않으니까 블로그나 뭐로 하소연하는 것일 테다.. 이해한다.. 나도

나는 너무 좋은 조교님을 만나서 많은 것이 바뀐 사람이라, 하소연은 하소연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상 해석하진 않았다. 물론 개중에 정말 바보 같은 조교들이 등장하기도 하더라만 조교가 될 예정이니까 그런 글들을 보고 확실히 배우는 건 있었다.

'저렇게 되진 말아야지'

어떤 한심한 짓이었는지 밝힐 수 없지만, 학생이 들고 온 문제가 학생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는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무슨 말단 중에 말단이 주제넘은 얘기를 하나 싶겠지만,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알아야 한다고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배웠다.





조교님은 스스로가, 일도 허둥지둥했고 제대로 한 게 없는 것 같고 힘들기만 했다,라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는 정말, 우리한테 친한 언니가 돼주고
저한테는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조교님이 너무 좋았다고.
스무 살 언저리의 우리들에게 닥쳐왔던
크고 작은 시련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 줬던 조교님이 너무 좋았다고.
그게 지금까지 기억에 있고
떠올릴 때마다 웃음 짓게 만들 만큼,
지금 이 순간까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교님 같은 조교가 되고 싶네요.




무튼...
조교가 되고나서부터 부지런히 쓰려고 했지만, 일기랑 따로 적기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20XX 년의 일기처럼 쓸 요량으로 새벽부터 조교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고백해 봤다. (웃음)







예정대로 라면 이번주 월요일부터 인수인계가 시작되었어야 했다. 근데 금요일인가 그쯤에 (現) 조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월화에 휴가를 가게 돼서 목금부터 하자고. 그래서 또 노는 시간이 늘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예정대로 첫 인수인계를 받았다.
다이어트내기도 진행 중이라 학교를 걸어서 갔다 왔다.

일단! 조교는 잡다한 할 일이 많다.
지금 조교님은 한 학번 위의 선배님이 하고 계시는데
이번에 인수인계 매뉴얼을 만들어주셨다. 그전 조교님이 만들어주신 걸 더 보충셨다고 한다. 학교 시스템이 바뀌면 변경되거나 추가되는 게 더러 있기 때문이다.
열댓 장쯤 되는 매뉴얼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선배님 말씀대로 움직이는 마우스를 보고 있노라면 참 쉬울 것 같으면서도 복잡다. 모니터를 보면서 설명을 들었는데도 직접 해보라고 마우스를 건네받으면 손과 공이 방황을 했다.

오늘 배운 내용은
근로장학생선발 및 관리, 활동비 및 경비 지출결의서 관련, 수업결과물 제출, 단체문자 보내기, 용품신청 및 구입, 그룹웨어, 출장신청서, 공문 쓰기, 학과 홈페이지 관리, 우편물 관리, 세미나실 빌리기, 과 소속강의실 문단속, 기기 고장 시 대처, 교직 이수...

전화 한 통으로 가능한 것들도 있고, 우편물 같은 경우 받으러 갔다 오기만 해도 된다. 그리고 보통 갔다 오기만 하는 일들은 근로장학생에게 부탁한다. 난 처음에 근로할 때, 조교님이 일일이 다 같이 가주셨다.
이번엔 하던 근로학생들이 다 졸업해서 내가 새로 뽑아야 되는데 하고 싶어 하는 애가 있을까... 벌써 걱정이다.

무튼 첫날, 설명도 쉬웠고 매뉴얼도 있지만 벌써 기억이 잘 안나는 부분이 있어서 난감하다. 체크해 뒀다가 금요일 인수인계할 때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선배님이 조교임용신청서랑 이력서를 써오라고 하셨다.

'조교는 보통 대학원생들이 하는 거라는데'라는 말을 좀 많이 들었는데, 나는 그냥 학부졸업생다. 자격요건에도 '학사 졸업'이라고 돼있다. 특별할 것 없이 해당 학과장 교수님의 추천서가 필요한 정도다.
교 회계연도에 맞춰 1년 단위의 계약직이고, 1년 단위로 이 바뀐다. 1년이 지날 즈음 교수님이 새로 조교 할 사람을 구하시는 걸 보면 대부분의 조교님들이 그즈음에 진로를 정하고 그만 둘 의사를 전하는 것 같다. 아니면 정말 오래오래 근속하시거나.

다른 학교는 몰라도 여긴 일일 근무시간이 7시간이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조교 일이 너무 어려워 보여서가 아니라 걸어왔더니 다리 아파서. 1시간 인수인계받기 위해, 왕복 3시간 워킹하는 무모함.. 앞으로 그냥 버스 타고 다녀야겠다.





인수인계 2일 차.


마침 어딘가에 볼일이 있어서 나오던 선배님과 마주쳤다. 그래서 조교실에 먼저 들어가 있었더니, 10초도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이 덜덜 떨렸다. 근로 때도 여러 번 받아봤지만, 안 받아본 지 1년 반 가량이 지나서 너무 긴장다.

"네, ○○과 아니, □□과 행정실입니다!"

그 짧은 순간에 '○○과라고 해야 하나, □□과라고 해야 하나.. 그다음은 뭐라고 말해야 하나, 선배는 어디로 가신거지... 서류제출하러? 본관에? 대학원사무실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수화기 속 남자 선생님은 내가 조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셨는지,

"조교는 어디 갔습니까, 돌아오시면 OOOO으로 연락해 달라고 전해주세요."

라고 용건만 간단히 전한 채 끊으셨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게 무의미하게, "네"라는 대답 외에 다른 말을 덧붙일 시간을 주시지 않았다. 많이 바쁘신가 보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여자선생님이었는데, 아깐 허무하게 지나갔지만 생각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입니다. 지금 조교님은 서류를 내러 잠시 자리를 비우셨어요."

다시 생각해 보니, 부자연스러운가...?
그 여자 선생님도 이 번호로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셨다.
순식간에 두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두 개의 전화번호가 남겨졌다. 나는 미처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통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기억에 의존해 메모를 해뒀는데,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건지, 제대로 들었는지 미심쩍었다. 그래서 학교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모에 덧붙여놓았다. 하나는 교무팀 OOO선생님, 다른 하나는 교수학습지원센터였다. 


3분쯤 지나서 선배가 돌아오셨다. 그 선생님들이 전화를 하셨었다는 사실과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고 조금 있다가 2일 차 인수인계가 시작됐다.
​1일 차엔 매뉴얼을 토대로 세 장 정도 설명을 들었는데
집에 와서 다시 보려니까 다 까먹고 뭐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났다. 공부한 내용의 주어나 목적어, 이유 등 한 가지씩 기억에서 누락되었고,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궁금한 걸 계속 물어보면서 해도 해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2일 차 인수인계에서 느낀 점란... 전화받는 내 목소리가 심히 요동치므로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것.. 리고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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