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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19. 2024

'무당을 의사로 인정하는 나라'

책 <리아의 나라> 에 대해 


나는 여느 의사와 마찬가지로 의학교육의 질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적당히 훼손시켜 면허취득자의 수 자체를 늘리려는 국가의 시도에 반대한다. 의학교육평가원을 무력화시키려는 교육부의 정책은 당연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동영상에서 예로 드는 "무당을 의사라고 인정하는 나라"는 흔히 예상하듯 남반구의 어느 나라가 아니라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다. "몽족의 샤먼의 의학적 권위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관련된 내용을 미국에서 뇌전증으로 치료받는 몽족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료시스템과 민족문화와의 충돌을 그린 <리아의 나라>에서 읽었던 것 같아 찾아보았다.  몽족은 라오스 북서부 고산지대의 소수민족으로서 라오스의 공산화 이후 70년대에 15만명이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상당수가 캘리포니아에 거주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1aFpmd3iD0



캘리포니아 주가 몽족 무당의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전적으로 허용한 것 같지는 않다. 현대의학적 치료의 보완적 부분으로 받아들여 몽족 환자들의 치료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1980년대 중반 프레즈노의 중부 캘리포니아 다민족 서비스 센터는 연방정부의 단기지원금 10만 965달러를 받았다. 몽족치료사들과 서구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통합적인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자금이었다. 이에 따라 여덟명의 치 넹 (몽족 무당)이 자문위원으로 고용되었다. 그들은 250명의 환자를 치료했는데, 대부분 정신건강의 일반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불만을 호소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경과 보고서는 미국 납세자들이 자금 지원을 한 자료 중 가장 놀라운 것 가운데 하나다. 여기엔 '악귀 쫓는 의식'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의식' '큰 전기레인지 위에 사는 신령을 달래는 의식'이 포함된 열여덟가지 치유의식이 기록되었다." 


책에서는 이러한 '의식'만으로 환자의 증상이 호전된 경우도 있었고, '의식'으로는 호전되지 않아 현대의학적 치료를 완강히 거부하던 환자가 받아들이게 된 경우도 기술하고 있다. 즉  현대의학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거나, 환자가 필요한 치료를 받아들이게 하기 어려운 경우 이러한 문화적 접근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앤 패디먼의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것은 2022년 9월이지만 사실 이 책은 매우 오래된 책이다.  1997년에 출판되었고, 이 책을 통해 알려진 몽족 환자들에 대한 오해와 문화충돌을 계기로 머시 메디컬센터 (책에 등장하는 머세드 공립병원의 현재 이름)에서는   "Shaman Certification Program" 을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다. 

 https://www.chcf.org/blog/hmong-community-planted-spiritual-roots-merced-hospital/


물론 미국의 의사들과는 달리 한국의 의사는 그 의학적 권위와 정당성을 인정받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무당을 보완재로 사용하기보다는 무당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환자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한 진료가  '국가의 인정따위는 아무래도 필요 없다'는 예로 사용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지난번 학회다녀오면서 기내에서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감상을 적어둔 것을 찾아서 적어둔다. 


귀국길에 읽은 책은 예전에 언젠가 팟캐스트에서 다룬 내용을 듣고 전자책으로 쟁여두었으나 읽지 않고 있던 의료인류학 책 <리아의 나라>다. 내용도 매혹적이고 번역도 좋아서 책 진도를 잘 못빼는 나로서는 드물게 하루에 다 읽어버렸다.  미국으로 이주한 라오스의 소수민족 몽(Hmong) 족 아이인 리아 리가 뇌전증을 앓으며 질병과 치료에 대한 가족과 민족의 관점이 미국의 현대의학과 부딛치는 지점을 깊이있게 담아냈다.   
책을 읽으며 현대의학을 불신하는 몽족과 우리 환자들이 겹쳐보였지만 그럴수밖에 없는 몽족의 관념과 사상을 얕게나마 이해하고 나니 우리 환자들이라고 다르겠는가 싶었다. 우리 환자들도 분명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사실 같은 문화권에 있는 의사들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어떤 자세로 접근하느냐인데 지금의 한국의 의료인 집단에게는 그런 자세를 고민할 여유조차도 없는 것이 안타깝다. 
저자는 의료인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그들이 리아를 그렇게 치료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서도 이해한다. 다만 그것은 의학의 권위를 인정한다기보다는 마치 병원이라는 환경과 의학의 언어를 공유하는 의료‘민족’ (몽족과 대등한 또 하나의 민족…)으로 보는 듯한 시선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해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왠지 책을 읽는 동안 몇 번 울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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