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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Jul 17. 2020

기다림은 가냘프지 않아

강아지들이 ‘기다려’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본 적 있다. 훈련을 받으면 간단한 명령은 곧잘 따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강아지를 키운 적은 없어도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가르쳐 주는 대로 강아지에게 손! 기다려! 다들 한 번쯤 해보지 않나. 그러나 먹이를 눈 앞에 두고 기다리라는 주인의 말을 따르는 멍멍이의 입에서 그렇게 많은 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건 내가 몰랐던 사실이다. 유튜브 속 강아지는 먹이를 눈 앞에 두고 한참을 헉헉댔다. 침을 한 바가지 흘려대면서. 나는 기다림이 이 정도의 저항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먹고자 하는 동물적인 의지를 꺾고 이 동물은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중이다. 나는 내 어떠한 의지를 꺾고 무언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나? 나는 기다림이라는 걸 해보긴 한 건가?


멍멍이의 침 흘리는 격렬함을 나에게 대입해 본다. 기억 속에서 내 마음이 부들부들 떨리고 고통스러워도 포기할 수 없었던 순간, 그 부들거림 속에서도 꼭 버티고 있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멋대로 하고 싶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다. 지금 내가 행복한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너는 왜 그렇게 못됐냐고 소리 내어 면박 주고 싶다. 당장 이걸 해달라고 떼쓰고 싶다. 안되면 말지 뭐 하고 홱 뒤돌아서고 싶다. 그러나 포기를 선택할 수 없어 붙잡았던 그 무언가가 당신에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어렴풋이 그려왔던 기다림의 모습은  매우 잔잔하고, 수동적이었음을 발견한다. 마치 전래동화 속 아내가 처연하게 남편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생각해보니 그녀도 얼마나 고통과 슬픔의 시간에 몸부림쳤을까). 곱씹어보니 이게 이렇게 살아있는 행위인 줄은 몰랐다. 정적인 껍질 속에 치열한 알맹이가 드글드글 끓고 있는 거였다.


기다림은 용기를 수반한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위한 저돌적이고 꿋꿋 자세다.  안에 부는 바람과 싸우며 변하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마치 닻을 내린 배와 같은 모습이다.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아도 아직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 버티는 것. 그 확신은 스스로에 대한 것일 수도, 대상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확신은 결국 신뢰이지 않을까, 하다가 믿음으로 고쳐 쓴다. 보장된 사실이 가져다주는 예상 아닌 검증된  이상 바라보 마음. 결국  마음이 기적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서른이 된 나에게 부모님은 종종 결혼 이야기를 한다.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거야? 나는 내심 그녀가 따뜻하고 지혜로운 말로 나를 떠보거나 설득하지 않을까 예측했다. 엄마는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내가 말한다고 네가 마음을 바꾸겠니. 나는 너가 결혼을 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재촉할 생각은 없어. 그동안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잔소리 대신 수많은 침묵을 선택해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행동으로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을 떠올린다.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한다. 갈등도 싸움도 눈물도 많은 청소년기가 있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기나긴 대화와 고함을 오가야 했던 때가 있었다. 사실은 엄마와 나 사이는 잔소리보다 더 많은 기다림으로 채워졌음을 이제야 눈치채게 된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본능을 거스른다. 사랑하기에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가냘프지 않다. 단단하게 땅 위에 솟아 있는 지지대이고, 나는 그 지지대를 발판 삼아 자라는 토마토 넝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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