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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Aug 27. 2018

할머니를 웃게 하고 싶다

언젠가부터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어려워졌다. 건강하고 씩씩하던 할머니는 80대에 접어들면서 ‘노인’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달갑지 않아하는 것 같았다. 몇 달에 한번 꼴로 할머니를 찾아가면 할머니는 아픈 무릎, 그래서 맘 같지 않게 집에만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즐겁고 감사한 일도 많은 할머니의 노년이지만, 정작 할머니의 시선은 그곳에 가 있지 않은 것. 나이가 듦에 따라 할머니에게 드리운 까만 밤을 보게 된다.


어린 나를 키워준 건 씩씩한 우리 할머니였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느라 바빴던 그때 할머니는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와 나를 같이 돌봤다. 버스를 타면 아픈 할아버지가 몸서리를 치고, 택시를 타면 갓난쟁이 손녀가 끊임없이 울었다고 했다. 병원에 가는 길 택시를 타자는 할아버지를 “아기가 울잖어”라는 말로 얼러 버스를 태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할머니가 아파트 창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릴 때 대여섯 살 먹은 나는 등 뒤에 업혀 이렇게 말했다고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에 슬퍼서 그래요? 천국 가면 보실 수 있으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할머니는 그때 할아버지를 그리워했던 게 아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고, 할머니가 고되고 지쳐서 노래한다 생각했다고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무쪼록 나는 할머니의 희생적인 돌봄이 사랑의 동의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도 수영이며 등산, 댄스 스포츠에 도전하던 할머니. 모험심 강하고 욕심 있는 할머니는 자기 마음에는 소녀가 있다고 했다. 그런 소녀는 자식을 다 키워놓고도 연이어 손주들을 돌보느라 수년을 더 힘썼다. 나는 할머니가 나와 동생을 볼 때 짓는 표정만으로도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초롱초롱해지는 눈동자. 예쁘게 올라가는 입꼬리. 나는 우리가 할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좋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할머니를 2년에 가까스로 한번 보게 되었다. 곧이어 동생이 미국으로 오게 되고, 그때부터는 우리가 할머니의 그리움이 되었다. 인터넷 전화로, 그것도 자주 하지 못하고 두세 달에 한번 전화하는 것 말고는 소리 내어 할머니를 부를 일이 없게 되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보내주는 사진을 액자에 걸어 놓으며 그것으로 우리의 안부를 확인했다.  5년의 유학생활을 마무리하며 한국에 돌아와 일을 하게 되면서 한 달에 한 번 대구에 내려가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나에게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셨던 할머니는 혼자 멍하니 빈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생겼다. 보기에도 웃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든 할머니의 얼굴이 서울에 와서도 어른거렸다. 내가 할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나를 봐도 전처럼 싱글벙글 미소를 머금고 쳐다봐주지 않으시다니. 순간 할머니에게 다가오는 세월이 덜컥 겁이 났다.


올해 다시 찾아온 할머니의 생신,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평일 저녁이라 서울에서 내려가지 못하는데 또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할머니는 나를 보면 웃는데. 전화할 때면 먼저 사랑해를 외치시는 할머니인데. 어떻게 하면 할머니에게 내 사랑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구름이 드리우고 비가 오는 마음에 다시 햇살 한 조각 선물하고 싶어서. 나 때문에 울고 웃던 그 마음속에.


할머니 마음엔 아직 소녀가 있다는 그 말을 다시 곱씹었다. 소녀를 웃게 하는 건 꽃이지 않을까. 할머니가 본 적 없던 특별한 꽃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존재를 우리가 너무 환영한다고. 그래서 앙금 꽃이 올라간 떡케이크를 골랐다. 꽃 드음뿍 올라간 알록달록 떡케이크로.


생신 날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케이크가 잘 도착했나 싶어 전화를 드리니 할마니가 환하게 대답하셨다. “성은아- 이렇게 예쁜 꽃은 내 처음 본다. 우리 성은이 너무 고마워-. “ 나중에 엄마가 얘기해준 건데 할머니는 꽃을 또 뜯어보고 뜯어보고 곱씹고 곱씹었다고 했다. 사진 속에서도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옅은 미소가 반가웠다. 속에서 잔잔히 우러나오는 그 웃음. 보통 할머니는 사진만 찍으면 얼굴이 더 굳어지는데, 아마 케이크에서 내가 보였던 것 같다. 저 미소는 나를 볼 때 할머니가 짓는 미소이기 때문에. 내가 꽃잎에 실은 마음이 할머니께 고스란히 전해졌을까? 그때마다 나는 이 사진을 꺼내본다. 할머니가 날 바라보듯 꽃 케이크를 바라보는 사진.


나는 할머니를 많이 웃게 할 거다.

할머니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랑 중 가장 하나님과 닮은 사랑을 내게 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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