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일흔이 넘은 아버지.

당신의 굽은 허리를 느끼며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요새는 딸 집을 잘 찾지 못하실 때도 있어요. 한 번은 한 여름 땡볕에 너무 멀리 가셔서 카카오택시를 보낸 적도 있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신 거죠. 저희 집은 망원과 합정 사이 좁은 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헷갈려하기는 해요. 이 일이 몇 번 반복되자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면 '너도 나이 들어봐라' 하시고 그냥 넘어가세요. 우리 아버지, 젊은 시절 한 성깔 하셨는데 말이에요. 왜인지 아버지의 작은 목소리에 슬픈 마음이 들곤 해요. 서로 짜증 날 수 있는 상황을 잘 넘기기는 하지만요. 일흔이 넘은 나이는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이구나 해서요.

아버지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넘나들면서 사셨어요. 젊은 시절 공무원이 될 뻔하다가 일본, 홍콩으로 넘어가 사셨고, 일본 여성이랑 결혼할 뻔도 하셨데요.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유럽 사람들과 일하며 외화도 버셨고요. 한국으로 돌아와 공인중개사를 따셨어요. 1기 합격자이시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시절엔 20채 되는 건물이나 집을 설계부터 시공까지 하시기도 했어요. 마흔이 다 돼서야 아버지의 인생의 서사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어요. 강점코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연히 아버지, 어머니, 동생을 검사해 줬고 깊은 대화를 하게 된 거예요. 그때 저는 처음 아버지의 비밀 아닌 비밀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찬을 가져다주시면서 가족이 읽을 책들을 꼭 몇 권씩 챙겨 오세요. 당신이 읽었는데 좋은 책, 서점 가셨다가 좋은 책, 그런데 거의 헌책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또 핀잔을 주게 됩니다. 힘드니까 안 가져오셔도 돼요. 집에 갈 때 가져갈게 하고요. 얼마 전에 집에 갔더니 열 권이 넘게 현관 입구에 책이 있네요. '거기서 골라봐라' 아버지는 책에 집착하시는 분이에요. 원껏 배우지 못한 한이 있으세요. 아버지의 아버지가 큰 아들인 아버지에게 생계를 위해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데요. 가끔 그 시점으로 돌아가시곤 해요. 산에 가서 혼자 우셨다고요. 일흔을 넘기고 소일거리도 그만두신 후 자전거로 행주산성을 가시고 바둑을 즐기시고 사서삼경을 반복해서 읽으십니다. 지금의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하시는 아버지. 저는 그런 아버지가 좋아요. 그리고 존경합니다.

학벌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아버지를 통해 알았어요. 평생 책을 가까이하신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지혜로운 분이세요.

첫 책에서 꼭 아버지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었습니다.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ESG 코드, 서문, 저자 서욱